비혼 선택한 35세, 명절마다 듣는 질문의 폭력
올해도 어김없이 명절이 돌아왔다. 35세 직장인 김지영 씨는 친척 모임에서 익숙한 질문들을 마주한다. "아직도 결혼 안 했어? 나이가 몇인데."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줄까?" "여자가 나이 먹으면 늦어." 이 질문들 뒤에는 하나의 전제가 깔려 있다.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정상적인 삶이란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을 꾸리는 것이라는 믿음. 그러나 김 씨는 비혼을 선택했다.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회는 그를 끊임없이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 즉 결혼이라는 정상 궤도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난 사람으로 본다. 비혼은 선택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된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보이지 않는 칼날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1975년 출간한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 사회가 개인을 통제하는 새로운 방식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푸코에 따르면 과거에는 왕의 권력이 공개 처형과 같은 폭력적 방식으로 작동했다면, 근대 이후 권력은 훨씬 정교해졌다. 이제 권력은 사람들에게 '정상'의 기준을 내면화시킨다. 학교는 모범생과 문제 학생을 나누고, 병원은 정상인과 환자를 분류하며, 사회는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을 구별한다. 푸코는 이러한 과정을 정상화라고 불렀다. 정상화는 특정한 규범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그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낙인찍는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도 바로 이런 정상화의 산물이다. 남편이 생계를 책임지고 아내가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며 자녀를 둔 핵가족. 이것이 가족의 '정상' 형태로 규정되면서, 1인 가구나 비혼모, 동거 커플, 무자녀 부부 같은 다양한 삶의 방식은 불완전하거나 문제가 있는 것으로 취급받는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에서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는 2000년 전까지 50% 정도였으나 2019년에는 30% 이하로 떨어졌다. 오히려 1인 가구가 30%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는 소수가 된 가족 형태를 정상으로 규정하고, 그 밖의 모든 삶을 예외나 일탈로 바라본다.
자발적 복종을 만드는 은밀한 권력
푸코가 주목한 것은 이러한 정상화가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 복종을 통해 작동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정상 기준에 맞추려 애쓰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자신을 부족하다고 느낀다. 감옥의 죄수가 감시탑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통제하듯, 비혼 여성은 주변의 시선을 내면화해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게 된다. "나만 이상한 걸까?" "결혼하지 않아서 불행할까?" "나이 들어 혼자 남으면 어떡하지?" 이런 불안은 외부에서 주입된 것이지만 마치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느껴진다.
비혼 선택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더욱 노골적이다. "결혼도 못한 사람", "이기적이다", "책임감이 없다"는 말들이 쏟아진다. 명절 때마다 듣는 질문, 직장에서의 미묘한 차별, 복지 제도에서의 배제. 비혼자들은 일상적으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압력을 받는다. 그런데 이 압력이 교묘한 것은 폭력이 아니라 '관심'과 '걱정'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네 앞날이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라는 친절한 조언 속에 정상화의 권력이 숨어 있다.
다양성을 위한 철학적 저항
비혼 선택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개인의 생활 방식을 넘어선다. 이것은 사회가 무엇을 정상으로 규정할 권리가 있는가, 그리고 개인이 사회의 규범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푸코의 통찰은 여기서 중요한 힌트를 준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정상'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정상가족이라는 개념도 불과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근대적 발명품이다. 과거에는 대가족이 일반적이었고, 다른 문화권에서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비혼을 선택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들은 결혼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가족을 혈연이 아닌 친밀성으로 재정의하려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개인적 선택을 넘어 사회 전체의 규범에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의미의 정상이란 무엇인가? 왜 특정한 삶의 형태만 인정받아야 하는가?
푸코가 말한 정상화의 권력에 저항하는 것은 비정상이 되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 자체를 해체하는 일이다. 35세 비혼 여성이 명절마다 듣는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듯이, 우리 사회도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삶의 방식을 강요할 이유가 없다. 다양한 삶이 공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감시탑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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