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온라인 어딘가에서 이런 말은 계속 떠돈다. "결국 니체가 히틀러에게 영향을 준 것 아닌가?" 불과 몇 줄의 문장이 한 철학자의 삶 전체를 뒤집어버린다. 그러나 이 오해는 니체 자신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역사적 사건들, 특히 한 여동생의 탐욕과 한 정치 체제의 도용이 빚어낸 결과다.
여동생이 만든 '가짜 니체'
1889년 1월, 니체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거리에서 쓰러졌다. 이후 그는 정신이 완전히 붕괴된 채 세상을 떠날 때까지 11년을 보냈다. 바로 이 공백을 파고든 것이 그의 여동생 엘리자베스 니체였다.
엘리자베스는 광적인 독일 민족주의자이자 반유대주의자였던 베른하르트 푀르스터의 아내였다. 그녀는 니체가 저항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자, 오빠의 미출판 유고와 메모를 자의적으로 편집해 『권력에의 의지』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나치 이데올로기의 핵심 텍스트처럼 유통되었지만, 오늘날 학계는 1960년대 이후 이 책을 니체의 공식 저서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탈리아 학자 콜리와 몬티나리가 주도한 비평판 니체 전집 작업이 그 위조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는 그 위에 한 발을 더 얹었다. 히틀러를 향해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는 바로 당신을 두고 한 말"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철학자는 아무것도 반박할 수 없었다.
니체가 진짜 혐오한 것
그렇다면 니체 자신의 저술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의 입장은 놀랍도록 일관적이다. 니체는 당시 독일인들이 열광하던 비스마르크의 민족주의를 '소국주의(Kleinstaaterei)', 즉 진정한 문화적 위대함을 가로막는 편협한 이기주의로 규정하며 맹렬히 비판했다. 혈통이나 인종에 기반한 집단 연대를 그는 가장 저급한 형태의 정치적 욕망으로 보았으며, 종족 이기주의를 지극히 혐오했다는 것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개념 구분이 필요하다. 니체가 유대 문화나 유대 종교의 특정 측면을 비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문화 비평의 차원이었고, 당시 정치 운동으로서의 반유대주의(Anti-Semitismus), 즉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집단을 박해하자는 이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였다. 한국동서철학회지에 수록된 연구(최순영, 2021)가 지적하듯, 니체는 어떤 민족 전체를 혐오하거나 찬양한 적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언제나 특정 민족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 더 높은 인간 유형의 가능성에 있었다.
바그너와의 결별이 말해주는 것
니체가 반유대주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건은 그가 아버지처럼 흠모하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결별한 일이다. 니체는 한때 바그너의 음악에서 유럽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지만, 바그너가 점차 독일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로 기울어지자 그와 완전히 절교한다. 1888년에 쓰인 글들을 모은 『니체 대 바그너(Nietzsche contra Wagner)』는 이 결별의 기록이다. 이 책에서 니체는, 바그너가 자신이 혐오하는 모든 것을 향해 한 발씩 내려가고 있으며 반유대주의 역시 그 하강의 일부라고 분명히 밝힌다.
이것은 단순한 미학적 실망이 아니었다. 반유대주의는 니체가 용납할 수 없는 퇴보였으며, 그것을 실천하는 인간과는 끝까지 함께할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여동생이 그토록 경멸했던 니체의 절친 파울 레가 유대계 독일인이었다는 사실도, 이 맥락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디테일이다.
철학은 어떻게 도둑맞는가
한 철학자의 사상이 도둑맞는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맥락을 지우고, 가장 도발적인 문장만 발췌하고, 죽거나 무력해진 저자는 반박하지 못하게 만들면 된다. 니체의 '위버멘쉬'와 '힘에의 의지'는 이 방식으로 나치의 언어로 전환됐다. 니체가 가장 혐오한 이념이 니체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유통됐다.
오늘날 우리가 이 역사에서 배울 것은 단순히 니체가 오해받았다는 사실이 아니다. 강력한 언어와 개념은 언제나 그것이 반박하려 했던 바로 그 힘에 의해 도용될 위험이 있다. 철학적 언어가 강렬할수록, 그것이 맥락을 잃고 무기로 변환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한 사상가를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그가 쓴 문장뿐 아니라, 그 문장이 어떻게 살아남았고 또 어떻게 뒤틀렸는가를 함께 추적하는 일이다. 니체를 읽는다는 것은 바로 그 추적을 시작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