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스마트폰을 켜면 수십 개의 뉴스 알림이 쏟아진다. 그런데 같은 사건을 다룬 기사들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다. 한쪽에서는 정책의 성공을 외치고, 다른 쪽에서는 참담한 실패라고 말한다.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더 큰 문제는 이런 질문 자체가 점점 무의미해진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쪽의 기사만 읽고, 공유하고, 확신에 차서 댓글을 단다.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이 '탈진실'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이유다.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의 감정과 신념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이다.
진실이 패배하는 시대
탈진실 시대에 가짜뉴스가 진실을 이기는 것은 단순히 거짓말이 많아서가 아니다. 문제는 더 근본적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용자가 선호하는 콘텐츠만 계속 추천한다. 진보 성향의 영상을 보면 더 진보적인 영상이, 보수 성향의 영상을 보면 더 보수적인 영상이 추천된다. SNS도 마찬가지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게시물만 타임라인에 뜬다. 이른바 '확증편향'의 디지털 버전이다. 사람들은 점점 자기 생각을 강화하는 정보에만 노출되고, 다른 관점은 아예 접하지 못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진실을 따지는 것보다 내가 믿고 싶은 이야기를 찾는 게 훨씬 쉽다.
더 심각한 건 이제 많은 이들이 진실 자체에 관심을 잃었다는 점이다. 정치인이 거짓말을 해도 그의 지지자들은 개의치 않는다. "저쪽도 거짓말하잖아"라는 식의 상대주의가 횡행한다. 미국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의 지적대로, 탈진실은 단순히 거짓이 난무하는 상황이 아니라 진실을 파악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는 전략이다. 너무 많은 가짜뉴스, 너무 복잡한 진위 여부, 끝없이 반복되는 공방전 속에서 사람들은 지쳐간다. 결국 "뭐가 진실인지 알 수 없으니 그냥 내가 믿고 싶은 걸 믿자"는 결론에 이른다.
사실과 거짓의 구별 자체가 무너진다
20세기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놀라운 통찰을 제시했다. 전체주의가 무서운 이유는 거짓말을 진실처럼 만들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실과 허구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렌트에 따르면 전체주의 통치의 이상적인 신민은 확신에 찬 나치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진실과 거짓을 더 이상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핵심은 '구분하지 못한다'는 표현이다.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는 게 아니라, 애초에 진실과 거짓이라는 범주 자체가 의미를 잃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아렌트의 경고가 얼마나 정확했는지 알 수 있다. 팩트체크 기사가 나와도 사람들은 "그것도 누군가의 의견일 뿐"이라고 반응한다. 통계 자료를 제시해도 "통계는 조작 가능하다"며 무시한다. 전문가의 견해는 "기득권의 목소리"로 치부된다. 진실을 가리는 공통된 기준 자체가 해체되는 것이다.
전체주의는 대중을 필요로 한다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독재자 개인의 야망만으로 탄생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전체주의는 생각 없는 대중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조직되지 않은 채 절망적이고 증오로 가득 찬 개인들, 그들이 자신을 구원해줄 지도자를 원할 때 전체주의가 싹튼다. 20세기 초 독일의 경제 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서사로 설명해주는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모든 문제는 저들 때문"이라는 명쾌한 답을 제시하는 선동가들이 인기를 얻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청년 실업, 부동산 문제, 양극화 같은 복잡한 사회 문제 앞에서 사람들은 불안하다. 이때 누군가 "문제의 원인은 간단해, 저 집단 때문이야"라고 말하면 그게 위안이 된다. SNS와 유튜브는 이런 단순한 서사를 증폭시킨다. 알고리즘은 분노와 혐오를 담은 콘텐츠를 더 많이 노출시킨다. 그런 콘텐츠가 클릭을 더 많이 유도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점점 더 극단적인 목소리에 노출되고, 중간 지대는 사라진다.
아렌트가 경고했듯 전체주의의 핵심은 다양성의 말살이다. 무한히 많고 다양한 인간을 마치 하나의 개인처럼 만드는 것, 그것이 전체주의다. 탈진실 시대의 가짜뉴스도 같은 효과를 낳는다. 사람들을 같은 정보만 소비하는 집단으로 분리하고, 각 집단 내에서는 획일적인 생각만 허용된다.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이 지배한다. 다른 의견은 배신이나 배반으로 간주된다.
사유하는 시민만이 전체주의를 막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렌트의 답은 명확하다. 사유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주어진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팩트체크를 열심히 하라는 말이 아니다. 물론 사실 확인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왜 내가 이 정보를 믿고 싶어 하는지, 왜 저 주장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불편하더라도 의도적으로 다른 관점의 콘텐츠를 찾아봐야 한다. 알고리즘이 만들어준 정보의 감옥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 확신에 찬 목소리가 아니라 의심하고 질문하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시민의 덕목이다. 가짜뉴스가 진실을 이기는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저항은 바로 멈춰서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