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 순간 살아있다. 숨을 쉬고, 생각하고, 느끼며, 무언가를 추구한다. 이 당연해 보이는 사실 뒤에는 놀라운 철학적 통찰이 숨어있다.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가 발견한 '코나투스(conatus)'라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코나투스는 모든 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완성시키려는 근본적인 노력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생존 본능을 넘어서, 우리 삶의 모든 활동을 관통하는 근본 원리다.
존재의 본질로서의 코나투스
스피노자에게 코나투스는 모든 개체의 본질이자 존재 이유다. 그는 "모든 사물은 자기 안에 있는 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 『에티카』"고 말했다.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 심지어 무기물까지도 포함하는 우주적 원리다.
꽃이 햇빛을 향해 자라나고, 고양이가 위험으로부터 도망치며, 우리가 매일 아침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코나투스의 발현이다. 이는 의식적 선택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내재된 충동이다. 마치 심장이 의식적 명령 없이도 뛰는 것처럼, 코나투스는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층에서 작동하는 자동적 힘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코나투스의 얼굴들
코나투스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구체적 경험들 속에 살아 숨쉰다. 시험 기간에 밤을 새워 공부하는 학생의 모습에서 우리는 코나투스를 본다. 이는 단순히 좋은 성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실현하고 발전시키려는 근본적 충동의 표현이다.
직장에서 승진을 위해 노력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는 시도, 심지어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며 감정적 만족을 얻으려는 행위까지도 모두 코나투스의 다양한 형태다.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려는 노력, 친구들과의 관계를 지속하려는 시도, 취미 활동을 통한 자기실현 등은 모두 자신의 존재를 보다 완전하고 풍요롭게 만들려는 코나투스의 발현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는 힘이다. 실연의 아픔 속에서도 다시 사랑할 용기를 찾고, 실패 후에도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것은 바로 코나투스가 우리 내면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쁨과 슬픔: 코나투스의 증감
스피노자는 코나투스의 증가와 감소에 따라 우리의 감정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우리의 존재력이 증진될 때 우리는 기쁨을 느끼고, 그것이 억제될 때 슬픔을 경험한다. 이는 감정에 대한 혁명적 관점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워 외국인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기쁨, 오랫동안 연습한 악기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만족감은 모두 코나투스의 증진에서 오는 기쁨이다. 반대로 질병으로 몸이 약해지거나, 실직으로 사회적 역할을 잃었을 때의 좌절감은 코나투스의 억제에서 비롯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진정한 행복은 외부의 조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 힘을 충분히 발휘할 때 찾아온다. 남들과의 비교나 사회적 기준보다는 자신만의 고유한 능력과 가능성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코나투스와 현대적 삶의 의미
현대 사회에서 코나투스의 개념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개인의 자아실현과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대에, 코나투스는 진정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단순한 쾌락 추구나 외적 성공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 힘을 계발하고 실현하는 것이 참된 삶의 목표가 된다.
또한 코나투스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다른 사람의 코나투스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우리는 진정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각자의 고유한 존재력이 서로를 억압하지 않고 상호 증진시킬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꿈꾼 이상적 사회의 모습이다.
결국 코나투스는 우리 각자가 가진 가장 근본적이고 소중한 힘이다. 이 힘을 인식하고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