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누구나 브리콜뢰르다. 냉장고 속 남은 재료로 한 끼를 해결하고, 망가진 물건을 임시방편으로 고치며, 주어진 자원으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제시한 '브리콜뢰르(bricoleur)'라는 개념은 단순한 수리공의 이미지를 넘어, 현대적 창의성과 적응력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준다.
손에 닿는 것으로 만드는 창조
브리콜뢰르는 '손에 닿는 것들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들은 미리 계획된 설계도나 전문적인 도구 없이도, 주변에 있는 재료들을 조합해 필요한 것을 창조해낸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러한 브리콜라주를 '야생의 사고'라고 불렀는데, 이는 원시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직관적이고 구체적인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일요일 오후, 갑자기 고장 난 의자를 고치려고 할 때를 생각해보자. 전문 수리점에 맡기거나 새 의자를 사는 대신, 집 안을 뒤져 못과 나무판자, 접착제를 찾아 임시방편으로 고쳐낸다. 이때 우리는 브리콜뢰르가 된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의자의 생명을 연장시킨다.
엔지니어와 브리콜뢰르의 차이
레비스트로스는 브리콜뢰르를 엔지니어와 대비시켜 설명한다. 엔지니어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정확한 재료와 도구를 조달해 체계적으로 작업한다. 반면 브리콜뢰르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의 새로운 조합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좋은 예다. 충분한 자본이나 완벽한 인프라 없이도 기존의 플랫폼과 도구들을 창의적으로 결합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낸다. 에어비앤비는 거대한 호텔 체인을 건설하지 않고도, 기존의 주택과 인터넷 플랫폼을 연결해 숙박 산업을 혁신했다. 이들은 전형적인 브리콜뢰르였다.
디지털 시대의 브리콜라주
디지털 기술은 브리콜라주의 가능성을 폭발적으로 확장시켰다. 유튜버들은 스마트폰 하나로 촬영부터 편집, 배급까지 모든 과정을 처리한다. 이들은 기존 미디어 산업의 거대한 인프라 없이도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한다.
밈(meme) 문화 역시 대표적인 디지털 브리콜라주다. 기존 이미지나 영상 클립에 새로운 텍스트나 음악을 조합해 전혀 다른 의미를 창조해낸다. 한때 유행했던 '무한도전' 밈들은 방송 장면을 재조합해 새로운 웃음과 공감을 만들어냈다. 이는 전문적인 제작진 없이도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창조 활동이다.
브리콜라주의 철학적 의미
브리콜라주는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는 것들로 시작하는 태도다. 이는 완벽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모든 사물은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브리콜뢰르의 기본 전제다. - 『야생의 사고』,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이 말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것들이 얼마나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버려질 뻔한 택배 상자로 아이들의 놀이터를 만들고, 고장 난 컴퓨터 부품으로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모두 브리콜라주의 정신이다.
브리콜뢰르는 현대 사회의 새로운 영웅이다. 자원의 한계와 불확실성 속에서도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기존의 질서를 혁신적으로 재조합한다. 우리 모두는 일상 속에서 브리콜뢰르가 되어 작은 창조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 완벽한 준비보다는 지금 가진 것으로 시작하는 용기, 그것이 브리콜라주의 진정한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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