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나는 나다"라고 확인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같은 존재라고 믿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이런 고정된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우리 존재의 본질을 '강도(intensité)'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강도는 단순히 물리학에서 말하는 세기나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역동적 힘 자체를 의미한다.
현대인들이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 관계의 복잡성, 그리고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의 적응 문제들을 이해하는 데 들뢰즈의 강도 개념은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고정된 자아나 본질에 집착하는 대신, 우리 존재의 역동적 변화 과정 자체에 주목할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도란 무엇인가: 차이를 만드는 힘
들뢰즈에게 강도는 '차이 자체(différence en soi)'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예를 들어, 물이 얼음이 되고 다시 수증기가 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얼음, 물, 수증기라는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그 변화를 추동하는 온도라는 강도적 차이다. 마찬가지로 인간 존재도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끊임없는 강도의 변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의 변화를 생각해보자. 슬픔에서 기쁨으로, 분노에서 평온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에서 중요한 것은 각각의 감정 상태가 아니라 그 변화를 만드는 강도적 힘이다. 사랑에 빠진 순간의 떨림, 창작의 영감이 스치는 찰나, 깊은 사유에 잠길 때의 집중력 - 이런 것들이 바로 강도의 현현이다.
재현을 넘어서: 생성의 철학
전통 철학은 존재를 고정된 본질이나 형식으로 파악하려 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이 그 대표적 예다. 하지만 들뢰즈는 이런 '재현의 철학'을 거부하고 '생성의 철학'을 제시한다. 강도는 바로 이 생성 과정의 핵심 동력이다.
현대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바로 이런 고정된 재현적 사고에서 비롯된다. 성별, 인종, 계급, 국적 등으로 사람을 분류하고 고정시키려는 시도들이 그렇다. 들뢰즈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은 이런 범주들로 환원될 수 없는 독특한 강도적 구성체다.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묻지, 무엇인가를 묻지 않는다. - 『천 개의 고원』,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SNS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생각해보자. 프로필 사진과 간단한 소개글로 자신을 표현해야 하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하지만 강도의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것은 완성된 자아상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롭게 생성되는 관계들과 경험들이다.
강도적 삶의 실천: 차이를 긍정하기
그렇다면 강도적 사유는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까? 무엇보다 차이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기존의 사고방식은 차이를 부정적인 것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하지만 강도적 사유에서 차이는 긍정되어야 할 창조의 원동력이다.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예로 들어보자. 일반적으로는 서로의 차이를 문제로 보고 하나로 통합시키려 한다. 하지만 들뢰즈적 관점에서는 그 차이 자체가 관계를 풍부하게 만드는 강도적 힘이다. 중요한 것은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차이들이 서로 접속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도록 하는 것이다.
직장에서의 창의적 업무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틀에 맞추려 하지 말고, 각자의 다른 경험과 관점이 만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성하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이때 개인은 고정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접속을 만들어내는 강도적 존재가 된다.
미래를 향한 열림: 생성-되기의 윤리학
들뢰즈의 강도 개념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생성-되기(devenir)'의 윤리학이다. 이는 무엇인가 고정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운 가능성에 열려 있는 삶의 자세를 의미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기존의 일상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생활 방식, 새로운 관계 맺기, 새로운 일의 형태들이 등장했다. 이런 변화를 단순히 위기나 혼란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강도적 구성체들이 생성되는 기회로 바라볼 수 있다.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인간 고유의 본질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기보다는, 인공지능과의 새로운 접속을 통해 어떤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릴 수 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강도적 사유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와 창조적 열정을 갖게 한다.
결국 들뢰즈의 강도 개념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은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이다.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이며, 이 과정 자체가 우리 삶의 의미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대신, "나는 오늘 무엇이 될 수 있을까?"라고 물어보자. 그 순간 우리는 진정한 강도적 삶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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