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7년 2월 21일, 헤이그 근교의 작은 마을 파빌리온. 바루흐 스피노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렌즈를 갈고 있었다. 맑은 아침 햇살이 작업대 위로 스며들어 유리 가루들이 은빛으로 반짝였다. 그러나 오늘 아침의 기침은 유독 거칠었다. 손수건에 묻은 붉은 반점들이 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선생님, 아침식사를 준비했습니다."
하숙집 주인 헨드릭 반 데어 스피크의 아내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스피노자는 렌즈 연마를 멈추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44세의 나이에도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지만, 폐병이 깊어지면서 그 빛에는 어떤 체념 같은 것이 스며들어 있었다.
"고맙습니다, 부인."
그는 작업복을 벗고 간소한 식탁으로 향했다. 빵 한 조각과 맥주 한 잔. 그것이 철학자의 아침 전부였다. 유대인 공동체에서 파문당한 뒤로 그의 삶은 늘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외적인 것들에 의존하지 않는 자유, 그것이야말로 그가 평생 추구해온 지혜였으니까.
식사를 마친 스피노자는 다시 작업대로 돌아왔다. 오늘은 특별한 렌즈를 만들어야 했다. 라이프니츠를 위한 것이었다. 저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가 지난주 편지로 특별한 망원경용 렌즈를 주문했던 것이다. 물론 라이프니츠의 진짜 목적은 렌즈가 아니었다. 스피노자의 철학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했지만, 감히 공개적으로 교류할 수는 없었다. 스피노자는 이미 '무신론자'라는 낙인이 찍힌 인물이었으니까.
렌즈를 갈면서 스피노자는 자신의 철학을 떠올렸다. 모든 것이 하나의 실체라는 생각. 신과 자연이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 데우스 시베 나투라(Deus sive Natura) - 신 즉 자연. 이 명제 하나로 그는 전통적인 종교관을 뒤흔들어놓았다.
"모든 것은 필연성에 따라 일어난다."
그는 중얼거렸다. 자신의 병도, 유대인 공동체로부터의 추방도, 기독교도들의 미움도, 모든 것이 자연의 법칙에 따른 것이었다. 그렇다면 슬퍼할 이유도, 분노할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오후가 되자 예상했던 손님이 찾아왔다. 시몬 요스트 반 데어 스피크, 하숙집 주인의 아들이었다. 젊은 의사로 일하면서도 철학에 깊은 관심을 보이던 그였다.
"선생님, 오늘도 질문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의지에 대해 더 알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필연적이라면 우리의 선택이나 노력은 무의미한 것 아닙니까?"
스피노자는 렌즈 연마를 잠시 멈추고 젊은이를 바라봤다. 이런 질문을 수없이 받아왔다.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문제는 철학의 영원한 난제였다.
"시몬, 자네는 지금 이 방에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물론입니다."
"그럼 나가보게."
시몬은 주저 없이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다시 들어와 앉았다.
"보게, 자네는 방금 자유롭게 나갔다 들어왔다. 하지만 그 행동의 원인을 생각해보게. 자네가 나간 것은 내가 나가라고 했기 때문이고, 다시 들어온 것은 대화를 계속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네의 모든 행동에는 원인이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자유는 없는 것입니까?"
"자유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네. 진정한 자유는 원인 없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의 원인을 아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일어나 창가로 갔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돌이 공중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게. 돌에게 의식이 있어서 '나는 자유롭게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그 돌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믿겠지만, 실제로는 중력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이네."
"그럼 우리 인간도 그 돌과 다르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자신을 움직이는 원인들을 알 수 있다는 것이네. 분노할 때 왜 분노하는지, 사랑할 때 왜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원인들을 이해함으로써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일세."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의문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선생님, 그렇다면 도덕적 책임은 어떻게 됩니까? 모든 것이 필연적이라면 악한 행동을 한 사람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스피노자는 다시 작업대로 돌아가 렌즈를 들어 빛에 비춰보았다. 완벽하게 투명한 렌즈를 통해 세상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비난은 소용없는 일이네. 하지만 교정은 필요하다. 독을 마신 사람을 비난하지는 않겠지만, 독을 토해내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나? 악한 행동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무지에서 나오는 병과 같은 것이니, 치료해야 할 대상이지 비난할 대상이 아니다."
"무지에서 나온다고 하셨는데..."
"그렇다. 모든 악은 무지에서 나온다. 진정으로 선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 누구도 악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독이라는 것을 알면서 독을 마실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스피노자는 잠시 기침을 했다. 이번에는 더 심했다. 시몬이 걱정스럽게 다가왔지만, 스피노자는 손을 저어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선생님, 혹시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스피노자는 미소를 지었다. 젊은이의 걱정이 느껴졌다.
"죽음은 더 이상 생각할 거리가 아니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현명한 사람은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해 명상한다."
"하지만 두렵지 않으십니까?"
"두려움은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해악에 대한 상상에서 나온다. 하지만 죽음은 해악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존재 양식의 변화일 뿐이다. 나를 구성하는 물질들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존재할 것이다."
스피노자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녁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보게, 저 노을을. 아름답지 않나? 하지만 잠시 후면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 노을이 슬퍼하거나 두려워할까? 아니다. 저 노을은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
"그럼 선생님께서는 후회가 없으십니까? 유대인 공동체에서 추방당한 것이나, 세상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것이나..."
스피노자는 고개를 저었다.
"후회는 자신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고 착각할 때 생기는 감정이네. 하지만 그때 그 상황에서 나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내 지식과 성품으로는 다른 선택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후회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럼 행복하십니까?"
이 질문에 스피노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오랫동안 입에 올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행복이라... 만약 행복이란 자신의 본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것이라면, 나는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네. 나는 사유한다. 그것이 내 본성이고, 그것을 방해받지 않고 실현할 수 있으니까."
"사유하는 것이 선생님의 본성이라고 하셨는데..."
"모든 존재는 자신의 존재를 지속시키려고 노력한다. 이것을 코나투스(conatus)라고 부르네. 돌은 돌로서 존재하려 하고, 꽃은 꽃으로서 존재하려 한다.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이므로, 사유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실현한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시몬은 일어나 인사를 드리고 돌아갔다. 혼자 남은 스피노자는 다시 렌즈 연마 작업을 계속했다. 라이프니츠를 위한 렌즈가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며칠 후, 스피노자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약해졌다. 반 데어 스피크 가족이 정성껏 간호했지만,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선생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시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피노자는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두려워하지 말게. 슬퍼하지도 말고. 이 모든 것은 자연의 질서에 따른 것이니까. 그리고 기억하게. 진리는 자신의 기준이다. 진리는 거짓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드러낸다."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1677년 2월 21일 일요일, 바루흐 스피노자는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주인들이 교회에 간 사이에, 조용히 혼자서.
그가 남긴 것은 완성된 렌즈 몇 개와 미완성 원고들,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행복에 대한 전혀 새로운 사유였다. 그는 신을 부정한 무신론자가 아니라, 신과 자연을 하나로 본 범신론자였다. 그는 자유의지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그는 감정을 억압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감정을 이해함으로써 그것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했다.
그의 철학은 당대에는 위험한 사상으로 여겨졌지만, 후에 계몽주의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독일 관념론의 출발점이 되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생태철학과 정신분석학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무엇보다 스피노자가 보여준 것은 철학이 단순한 지적 유희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살았고, 그 철학에 따라 죽었다. 외로움과 가난과 질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의 자유를 보여주었다.
렌즈를 갈며 사유하던 그 조용한 철학자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을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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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 소설은 스피노자의 생애 마지막 시기를 배경으로 하되, 그의 핵심 철학 사상들을 대화와 상황을 통해 풀어내려고 했다. 스피노자가 1677년 2월 21일 헤이그 근교에서 세상을 떠난 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그가 렌즈 연마공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몬 요스트 반 데어 스피크와의 구체적인 대화나 라이프니츠를 위한 렌즈 제작 등은 소설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다만 스피노자의 주요 철학 개념들(코나투스, 데우스 시베 나투라, 자유의지에 대한 견해, 감정론 등)은 그의 주저 『에티카』와 다른 저작들에 나타난 실제 사상을 바탕으로 했다.
특히 "현명한 사람은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해 명상한다"는 『에티카』 4부 명제 67의 유명한 구절이며, "진리는 자신의 기준이다"는 『에티카』 2부 명제 43의 비고에 나오는 실제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