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3월의 파리는 여전히 겨울의 냉기를 품고 있었다. 미셸 푸코는 생트안느 정신병원의 회색빛 복도를 걸으며, 발걸음 소리가 차갑게 울리는 것을 들었다. 서른다섯 살의 그는 이미 철학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었지만, 여전히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푸코 선생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병원 원장 드뵈르의 목소리가 복도 끝에서 들려왔다. 푸코는 손에 든 노트를 꽉 쥐었다. 『광기의 역사』를 위한 자료 수집이 벌써 2년째 계속되고 있었다.
정신병동의 문이 열리자, 푸코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환자들은 가운을 입고 조용히 앉아 있었고, 간병인들은 친절하게 그들을 돌보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질서정연하고 인도적인 공간이었다.
"우리 병원은 프랑스에서 가장 진보적인 치료 시설입니다." 드뵈르 원장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18세기의 야만적인 수용소와는 차원이 다르지요."
푸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다른 곳에 머물러 있었다. 환자들의 표정에서, 간병인들의 움직임에서, 그리고 이 공간 전체에서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에서.
"저 환자는 어떤 병을 앓고 있습니까?" 푸코가 창가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중년 남성을 가리키며 물었다.
"조현병입니다. 하지만 약물 치료로 상당히 안정된 상태죠." 원장의 답변은 전문적이고 확신에 차 있었다.
푸코는 그 남성에게 다가갔다. 환자는 푸코를 보더니 갑자기 웃었다.
"당신도 여기 갇힌 건가요?" 그가 물었다.
"아니요, 저는 방문객입니다."
"그럼 언제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요? 저는 벌써 5년째 여기 있어요. 처음엔 6개월이면 된다고 했는데."
푸코는 답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노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누가 미쳤다고 결정하는가? 그 결정의 기준은 무엇인가?'
오후가 되어서야 푸코는 병원을 떠날 수 있었다. 그는 세느강변을 걸으며 오늘 본 것들을 정리해보려 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카페 드 플로르에서 푸코는 동료 철학자 지유 들뢰즈와 만나기로 했다. 들뢰즈는 이미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떻게 됐나?" 들뢰즈가 물었다.
"이상해." 푸코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분명히 인도적이고 과학적인 치료가 이뤄지고 있어.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어."
"뭐가?"
푸코는 잠시 생각했다. "광인과 정상인을 구분하는 그 경계선이 너무 명확하다는 거야. 마치 자연법칙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어. 하지만 정말 그럴까?"
들뢰즈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계속해봐."
"17세기만 해도 광인들은 사회 안에서 살았어. 물론 배제되긴 했지만, 그래도 보이는 곳에 있었지. 그런데 18세기부터 갑자기 그들을 격리하기 시작했어. 왜일까?"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서겠지."
"그런데 그게 정말 치료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일까?" 푸코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서렸다. "내가 보기엔 광기라는 개념 자체가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 같아. 누군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범주 말이야."
들뢰즈가 담배를 끄며 말했다. "흥미롭네. 그럼 지금의 정신의학도 마찬가지라는 얘기인가?"
"그럴 수도 있어." 푸코는 커피 잔을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 만난 환자가 내게 물었어. 언제 나갈 수 있느냐고. 원장은 그가 안정되었다고 했는데, 왜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
"치료가 더 필요해서겠지."
"정말 그럴까?" 푸코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아니면 그가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의 기준에 아직 맞지 않아서일까?"
이때 카페 문이 열리며 한 남성이 들어왔다. 그는 얼굴에 상처가 있었고 옷차림도 남루했다. 카페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몰렸고, 그는 곧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봐." 푸코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이 정신병원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여기서는 '부적절한' 존재가 되지."
들뢰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간이 사람을 규정한다는 얘기네."
"바로 그거야!" 푸코가 흥분하며 말했다. "광기는 정신병원 안에서만 광기가 되는 거야. 그 공간, 그 제도, 그 담론이 광기를 만들어내는 거지.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보편적 구조 같은 건 없어. 모든 건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거야."
푸코는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권력은 단순히 억압하지 않는다. 권력은 만들어낸다. 정상인을 만들어내고, 광인을 만들어내고, 그들 사이의 경계를 만들어낸다.'
"그럼 진리란 무엇인가?" 들뢰즈가 물었다.
푸코는 펜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봤다. 거리에는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정상적인' 시민들이었다.
"진리도 마찬가지야. 누군가 진리라고 규정한 것이 진리가 되는 거지. 의학이 광기에 대한 진리를 독점하고, 법이 범죄에 대한 진리를 독점하고, 교육이 지식에 대한 진리를 독점해."
"그럼 우리가 하는 철학도?"
푸코는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야. 진리 게임의 참가자들이지."
그날 밤, 푸코는 자신의 서재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책장에는 니체, 하이데거, 바슐라르의 저서들이 꽂혀 있었다. 하지만 오늘 하루 동안의 경험은 그 모든 책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타자기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성의 역사는 광기를 배제함으로써 자신을 구성해왔다. 하지만 이 배제의 과정에서 이성은 무엇을 잃었을까?"
푸코는 오늘 만난 환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의 눈빛에는 분명 이성이 있었다. 다만 그것이 사회가 인정하는 형태의 이성이 아니었을 뿐이다.
"권력과 지식은 분리될 수 없다. 정신의학적 지식은 정신병원이라는 권력 장치 안에서 작동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그어진다."
창밖으로 파리의 야경이 보였다. 불빛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푸코는 문득 궁금했다. 저 불빛들 사이사이 어둠 속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의 경계 바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푸코는 계속 글을 썼다. "주체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권력의 그물망 속에서, 담론의 장 안에서, 제도의 틀 속에서 주체는 구성된다."
다음날 아침, 푸코는 다시 생트안느 정신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환자가 아닌 의료진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의사들이 환자를 대하는 방식, 간병인들의 움직임, 병원 전체를 지배하는 규율과 질서.
"여기서는 모든 것이 보인다." 푸코가 혼자 중얼거렸다. "감시하는 눈이 모든 곳에 있어. 벤담의 판옵티콘이 바로 여기에 구현되어 있군."
점심시간에 푸코는 한 의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젊고 열정적인 의사였다.
"우리는 과학적 방법으로 환자들을 치료합니다." 의사가 자신 있게 말했다. "중세의 미신이나 편견과는 차원이 다르죠."
"과학적 방법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푸코가 물었다.
"관찰, 분류, 진단, 치료죠. 모든 것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이뤄집니다."
푸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다른 생각이 돌고 있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라는 것도 결국 누군가 만들어낸 기준이 아닌가?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사람을 분류하고 배치하는 것이 정말 과학일까?'
오후에 푸코는 병원 도서관에서 18세기 정신의학 문헌들을 살펴봤다. 피넬, 에스키롤 같은 선구자들의 저작을 읽으며 그는 하나의 패턴을 발견했다.
"인도주의적 개혁이라고 하지만, 결국 더 정교한 통제 시스템을 만들어낸 거네." 푸코가 노트에 적었다. "사슬에서 해방시켰지만, 대신 규율과 감시라는 보이지 않는 사슬을 채웠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푸코는 센강변을 천천히 걸었다. 강물은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고, 강변에는 연인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푸코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저 연인들도 사회가 정해놓은 '정상적인' 관계의 형태 안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몸짓, 표정, 대화 방식까지도 어떤 보이지 않는 규범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날 밤, 푸코는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하고 혼자 작업실에 머물렀다. 그는 지난 며칠간의 경험을 정리하며 새로운 인식의 틀을 구성해나가고 있었다.
"역사는 진보의 과정이 아니다." 그가 적었다. "각 시대는 나름의 진리 체제를 가지고 있고, 그 안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규정한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진리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하는 것이다."
푸코는 니체의 말을 떠올렸다. "진리 뒤에는 권력에의 의지가 있다." 이제 그는 이 말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진리는 중립적이지 않다. 진리는 항상 누군가의 이해관계와 연결되어 있고, 누군가를 배제하고 누군가를 포함시키는 기능을 한다.
창밖으로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푸코는 마지막 문장을 썼다. "권력은 모든 곳에 있다. 그것은 압제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는 것이다. 지식을 생산하고, 담론을 생산하고, 주체를 생산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이 권력의 그물망 안에서 살아간다."
푸코는 펜을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는 자신이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들의 변증법적 운동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 권력과 지식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철학.
며칠 후, 푸코는 자신의 지도교수 루이 알튀세르를 찾아갔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로서 이데올로기 문제에 천착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는 이제 구조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푸코가 말했다.
"무슨 뜻인가?" 알튀세르가 물었다.
"레비스트로스나 라캉이 말하는 구조는 너무 정적이에요. 실제 역사는 더 복잡하고 역동적입니다. 권력과 저항, 담론과 침묵, 포함과 배제의 끊임없는 투쟁이 있어요."
알튀세르는 관심 있는 표정을 지었다. "계속해보게."
"권력은 단순히 상부구조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 전체에 스며들어 있는 관계의 망이에요. 그리고 주체는 그 관계 속에서 구성됩니다."
푸코는 자신의 노트를 펼쳤다. "예를 들어 정신병원을 보세요. 거기서 의사는 의사로 구성되고, 환자는 환자로 구성됩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다른 공간에서 만난다면? 카페에서 만난다면? 그때도 같은 관계일까요?"
"흥미로운 관점이군." 알튀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이것을 계보학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현재의 진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역사를 추적하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무엇이 배제되었고, 무엇이 선택되었는지."
푸코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모두 역사의 산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이기도 해요.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자각하고 있느냐는 것이죠."
그 후 몇 년 동안 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완성해나갔다. 그는 도서관과 아카이브를 뒤지며 광기 개념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추적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철학적 방법론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갔다.
1961년 가을, 마침내 『광기의 역사』가 출간되었다. 책은 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기존의 정신의학사가 진보의 서사로 서술되던 것과 달리, 푸코는 그것을 권력과 배제의 역사로 읽어냈다.
출간 기념 강연에서 푸코는 말했다. "우리는 늘 진리와 오류, 이성과 비이성을 구분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 구분 자체가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가 혜택을 받고 누가 배제되었는지 물어야 합니다."
청중들은 숨죽이며 그의 말을 들었다. 푸코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서렸다.
"철학의 과제는 이제 바뀌었습니다. 영원한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동하는지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열어나가는 것입니다."
강연이 끝난 후, 한 학생이 질문했다. "그럼 선생님의 이론도 하나의 권력 효과 아닌가요?"
푸코는 잠시 침묵했다가 미소를 지었다. "물론입니다. 저 역시 진리 게임의 참가자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그 게임의 규칙을 드러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날 밤, 푸코는 다시 센강변을 걸었다. 파리의 불빛들이 강물에 반사되어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시작한 작업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깨달았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이군." 그가 혼자 중얼거렸다. "이제 권력이 어떻게 우리의 몸과 영혼을 만들어가는지 보여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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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 소설은 미셸 푸코가 1961년 『광기의 역사』를 출간하기까지의 과정을 바탕으로 했다. 푸코가 정신병원을 방문하며 광기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형성해나간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의 권력-지식 이론과 담론 분석, 계보학적 방법론 역시 실제 그의 학술적 성과를 소설 속에서 쉽게 풀어낸 것이다.
다만 구체적인 병원 방문 장면이나 들뢰즈, 알튀세르와의 대화는 소설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힌다. 푸코의 구조주의 비판과 권력의 미시정치학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여러 자료를 종합하여 추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