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9월, 파리.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의 복도는 여전히 여름의 열기를 품고 있었다. 자크 데리다는 자신의 연구실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손에는 방금 출간된 자신의 저서 세 권이 들려 있었다. 『그라마톨로지』, 『글쓰기와 차이』, 『목소리와 현상』. 37세의 철학자는 이 책들이 철학계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알고 있었다.
"자크, 축하해!"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데리다가 돌아섰다. 동료 교수인 피에르 오베르가 다가오고 있었다.
"고마워, 피에르." 데리다는 책들을 들어 보이며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축하보다는 조의를 표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무슨 소리야? 한 해에 세 권의 책을 출간하다니!"
"그게 문제야. 나는 서구 형이상학의 죽음을 선고하고 있어. 플라톤부터 하이데거까지, 우리가 '진리'라고 믿어온 모든 것이 사실은 언어의 놀이에 불과하다는 걸 말하고 있거든."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며 데리다는 책상 위에 책들을 내려놓았다. 창밖으로는 센강이 흘러가고 있었고,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파리의 일상은 평온해 보였지만, 데리다의 머릿속은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피에르, 자네는 '현존'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오베르는 잠시 생각했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
"바로 그거야. 서구 철학은 지난 2천 년 동안 그 '현존'이야말로 진리의 근거라고 믿어왔어. 플라톤의 이데아부터 데카르트의 코기토, 후설의 의식까지 모두 그래. 하지만 나는 그것이 착각이라고 말하고 있어."
데리다는 칠판으로 걸어가 분필을 집어 들었다. 'différance'라고 썼다가 지우고 다시 'différence'라고 썼다.
"봐, 이 두 단어의 차이를 알 수 있어?"
"글쎄, 똑같아 보이는데?"
"맞아. 보기에는 똑같지만 들리기로는 다르지. 하지만 말할 때는 그 차이를 알 수 없어. 이게 바로 내가 말하는 '디페랑스'야. 차이면서 동시에 지연이지."
데리다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발견한 핵심이었다. 언어는 결코 순수한 의미를 담을 수 없다. 모든 기호는 다른 기호와의 차이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 의미는 끊임없이 연기되고 지연된다.
"그렇다면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진리가 없다는 게 아니야.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지. 모든 텍스트, 모든 언어, 모든 의미는 해체될 수 있어. 고정된 중심이란 없어."
오베르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그럼 철학자로서 우리가 할 일이 뭐가 남아?"
데리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센강 위로 관광선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배 안의 사람들은 파리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보는 '파리'는 진짜 파리일까? 아니면 수많은 기호와 상징으로 구성된 텍스트일까?
"해체야, 피에르. 우리는 해체해야 해. 고정되고 견고해 보이는 모든 것을 흔들어야 해. 그래야만 새로운 사유가 가능해져."
"하지만 그렇게 되면 모든 게 상대적이 되는 거 아닌가? 선악도, 진위도?"
데리다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야. 해체는 파괴가 아니야. 오히려 더 세심한 읽기지. 텍스트 안에 숨어있는 모순과 균열을 찾아내는 거야.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거지."
오베르가 떠난 후, 데리다는 홀로 연구실에 남았다. 책상 위의 세 권의 책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그라마톨로지』의 첫 장을 펼쳤다. "문자학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글쓰기는 말하기보다 부차적이다.' 이것이 서구 철학의 근본 가정이었다.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루소도 모두 그렇게 믿었다. 목소리, 즉 음성 언어야말로 사유와 직접 연결된 순수한 매체이고, 글쓰기는 그것을 모방한 이차적인 것일 뿐이라고.
하지만 데리다는 이 위계를 뒤집고 있었다. 글쓰기야말로 언어의 본질이다. 모든 기호는 반복 가능해야 하고, 맥락에서 분리 가능해야 한다. 그래야만 의미가 전달될 수 있다. 목소리도 예외가 아니다.
데리다는 펜을 집어 들고 종이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멈췄다. 자신이 쓰고 있는 이 글자들도 결국 해체의 대상이 아닌가? 그가 '해체'라고 쓸 때, 이 단어는 이미 그 자체로 고정된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데리다의 딜레마였다. 해체를 말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써야 하는데, 언어 자체가 형이상학적 전통에 물들어 있다. 그는 언어 내부에서, 언어를 사용하면서 언어를 해체해야 했다.
밤이 깊어갔다. 연구실의 형광등 불빛 아래서 데리다는 계속 사유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후설의 현상학이 떠올랐다. 후설은 의식의 순수한 현존을 포착하려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의식은 항상 '무언가에 대한' 의식이고, 그 '무언가'는 이미 기호와 차이의 망 속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후설을 존경했다. 하지만 그를 넘어서야 했다. 현상학의 꿈, 즉 순수한 현존에 도달하려는 꿈을 포기해야 했다.
'흔적(trace)'. 이 개념이 데리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모든 현존은 이미 흔적에 의해 오염되어 있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조차 과거와 미래, 타자와 차이의 흔적을 품고 있다. 순수한 현존이란 환상일 뿐이다.
새벽 3시, 데리다는 마침내 펜을 놓았다. 창밖의 파리는 잠들어 있었지만, 그의 사유는 잠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명료해졌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가 분명해졌다.
서구 철학사를 관통해온 로고스 중심주의, 현존의 형이상학을 해체하는 것. 이것이 자신의 사명이었다.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동료들의 비난도 각오해야 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데리다는 첫 번째 강의를 위해 준비했다. 강의실에 들어서자 학생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젊은 얼굴들이 호기심에 차 있었다.
"오늘부터 우리는 읽기에 대해 배울 것이다." 데리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여러분이 지금까지 배운 읽기와는 다른 읽기다. 텍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가 말할 수 없는 것, 억압하고 있는 것을 찾아내는 읽기다."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런 읽기가 과연 가능할까요? 저자의 의도를 무시해도 되는 건가요?"
데리다는 미소를 지었다. "좋은 질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라는 것 자체가 이미 형이상학적 가정이야. 저자가 자신의 의도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그리고 그 의도가 텍스트에 온전히 담길 수 있다고 가정하는 거지. 하지만 언어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아."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학생들은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텍스트는 살아있어. 읽힐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래의 맥락에서 벗어나기도 해. 이것을 나는 '반복가능성(itérabilité)'이라고 불러."
강의가 끝나고 데리다는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다. 책상 위에는 여전히 세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그는 그 책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책들 역시 이제 자신의 손을 떠나 독자들에게 가닿을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책들을 읽고, 해석하고, 오해하고, 변형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데리다가 원하는 바였다. 고정된 의미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 끊임없는 차이와 지연의 놀이 속에서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것.
데리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센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는 다르게 보였다. 강물도 하나의 텍스트였다. 끊임없이 흐르면서 동시에 변화하는, 결코 같은 강물이 아닌 강물.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 옳았다.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
하지만 데리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강도 없고 발을 담그는 사람도 없다. 있는 것은 끊임없는 차이와 지연, 흔적과 반복가능성뿐이다.
저녁이 되어 데리다는 집으로 향했다. 아내 마르그리트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 일상적인 풍경도 데리다에게는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었다. 가족, 사랑, 친밀함이라는 개념들도 모두 해체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데리다는 알고 있었다. 해체는 파괴가 아니다. 오히려 더 세심한 돌봄이다. 텍스트를, 개념을, 관계를 더 주의 깊게 읽어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와 가능성이 열린다.
"어떤 하루였어?" 마르그리트가 물었다.
데리다는 잠시 생각했다. 어떻게 대답할까? 오늘 하루 자신이 한 일을 어떻게 설명할까?
"글쎄, 세상을 조금 흔들어본 것 같아."
마르그리트는 웃었다. "당신은 항상 그러잖아."
그렇다. 데리다는 항상 그래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견고해 보이는 모든 것을 흔들고, 자명해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중심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을 해체하는 것. 그것이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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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 소설은 1967년 데리다의 주요 저서 세 권이 출간된 시점을 배경으로 했다. 『그라마톨로지』, 『글쓰기와 차이』, 『목소리와 현상』이 실제로 같은 해에 출간되었으며, 이는 데리다가 해체철학의 기초를 완성한 결정적 순간이었다.
데리다의 핵심 개념들인 디페랑스(différance), 흔적(trace), 반복가능성(itérabilité), 그라마톨로지(grammatology) 등은 모두 그의 실제 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했다. 또한 서구 형이상학의 로고스 중심주의와 현존의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 역시 데리다 철학의 핵심이다.
다만 동료 교수 피에르 오베르와의 대화, 강의실 장면, 가족과의 일상 등은 소설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데리다의 내적 사유 과정과 철학적 개념들의 형성 과정에 대한 구체적 묘사 또한 작가의 해석에 기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