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시간은 시계가 아니라 기억 속에 있다 - 20세기 최고의 철학자와 소설가의 운명적 만남
홍차와 마들렌의 시간
1895년 가을, 파리 앙리 베르그송 교수의 서재에는 낙엽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서른셋의 철학자는 책상 앞에서 펜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물질과 기억』의 마지막 장을 써내려가야 했지만, 도무지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베르그송은 중얼거렸다. "물리학자들은 시계 바늘이 가리키는 것이 시간이라 하고, 수학자들은 수직선 위의 점들이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시간은..."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교수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하녀가 들어오더니 명함을 내밀었다. '마르셀 푸르스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어린 작가 지망생이라고 하시는데요.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며 꼭 뵙고 싶다고..."
베르그송은 잠시 망설였다. 젊은 문학도들이 종종 찾아와 철학을 소설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지 묻곤 했다. 대부분 피상적인 호기심이었지만, 때로는 진정성 있는 탐구자들도 있었다.
"들어오시라고 하시오."
문이 열리며 스물네 살의 청년이 들어섰다. 창백한 얼굴에 커다란 눈을 한 그는 어딘가 신경질적이면서도 섬세한 인상이었다. 푸르스트는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갑작스럽게 찾아와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앉으시지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푸르스트는 의자에 앉으며 가방에서 작은 노트를 꺼냈다. 베르그송은 그 노트가 빼곡한 글씨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다.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계속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시간에 대해 말씀하실 때 '순수 지속'이라는 개념을 쓰시는데..."
"네, 듀레(durée)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시계가 재는 시간이 아닌, 우리 의식 속에 흐르는 진짜 시간 말입니다. 저는 소설을 쓰려고 하는데, 그런 시간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베르그송은 흥미를 느꼈다. 대부분의 방문자들과는 다른 질문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으신가요?"
푸르스트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제가 어릴 때 일입니다. 콩브레라는 시골 마을에서 보낸 여름휴가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기억이 늘 똑같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때는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어떤 때는 아예 잊혀져 있다가, 또 어떤 때는 전혀 다른 색깔로 떠오릅니다."
베르그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바로 순수 지속의 특성입니다. 우리의 의식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흐르고 있어요. 과거의 기억도 현재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재구성됩니다."
"하지만 소설은 순서대로 쓰여야 하지 않습니까? 1장, 2장, 3장... 시간의 순서대로요."
"반드시 그래야 할까요?" 베르그송이 반문했다. "시계 시간의 순서를 따르는 것이 진정한 시간의 경험을 담는 것일까요?"
하녀가 차를 가져왔다. 푸르스트는 홍차 잔을 들며 생각에 잠겼다.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 더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럼 소설의 시간은 어떻게 구성해야 할까요?"
베르그송은 자신의 홍차에 설탕을 넣으며 답했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홍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것만인가요?"
푸르스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니요. 홍차의 향을 맡고, 교수님의 서재 분위기를 느끼고, 방금 전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동시에 어린 시절 콩브레에서 마셨던 차 생각도 나고..."
"바로 그겁니다!" 베르그송이 손뼉을 쳤다. "하나의 순간에도 수많은 시간층들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현재의 감각, 과거의 기억, 미래에 대한 기대... 이 모든 것이 의식 속에서 하나로 융합되어 있어요."
푸르스트는 눈을 빛냈다.
"그럼 소설도 그렇게 쓸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하나의 사건을 통해 여러 시간대를 동시에 보여주는..."
"왜 안 되겠습니까? 진정한 예술은 인간 경험의 본질을 담아내는 것 아닙니까?"
푸르스트는 홍차 잔을 내려놓으며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교수님께서는 기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억은 과거에 고정된 것일까요, 아니면 계속 변하는 것일까요?"
베르그송은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미소지었다.
"기억은 고정된 저장고가 아닙니다. 기억은 현재의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그것은 새롭게 창조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푸르스트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소설의 주인공이 어떤 순간에 과거를 회상한다면, 그 회상 자체가 현재의 상황과 섞여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정확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간 의식의 진정한 작동 방식입니다."
푸르스트는 노트에 뭔가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베르그송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 젊은 작가가 뭔가 중요한 것을 발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교수님, 그런데 이런 기억의 경험을 어떻게 촉발시킬 수 있을까요? 소설에서 말이에요."
베르그송은 잠시 생각했다.
"가장 강력한 촉매는 감각적 경험입니다. 냄새, 맛, 촉감... 이런 것들이 우리를 과거로 데려가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지요."
"감각이요?"
"네, 지성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기억의 심층부에 감각이 닿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먹었던 과자의 맛이나, 특별한 장소의 냄새 같은 것들 말입니다."
푸르스트의 눈이 더욱 빛났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무언가를 먹거나 냄새를 맡는 순간에 갑자기 과거가 되살아나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적이기도 하고요."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했다. 푸르스트는 계속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었고, 베르그송은 자신의 이론이 문학적으로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 상상해보고 있었다.
"교수님," 푸르스트가 고개를 들었다. "시간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시간이 지나간다고 느낄까요?"
"흥미로운 질문이군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변화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변하고, 우리 자신도 변하니까요."
베르그송은 감탄했다.
"훌륭한 직관입니다. 만약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시간도 존재하지 않겠지요. 시간은 변화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어떻게 이런 변화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인물의 내면 변화를 통해서요. 외적 사건보다는 의식의 흐름, 감정의 변화, 인식의 전환... 이런 것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것이 진정한 시간의 문학적 표현이 될 것입니다."
푸르스트는 더욱 열심히 메모했다. 베르그송은 이 젊은 작가가 자신의 철학을 단순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의 원리로 내재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될까요?" 푸르스트가 말했다.
"물론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시간을 공간과 구별하여 생각하시는데, 소설에서 공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베르그송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공간은 기억의 극장입니다. 특정한 장소는 특정한 시간과 연결되어 있어요. 어린 시절의 집, 첫사랑과 함께 걸었던 길, 중요한 결정을 내렸던 방... 이런 공간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시간을 불러오는 마법의 상자 같은 것이지요."
"그럼 소설에서 공간 묘사는..."
"기억을 촉발하고 시간을 복원하는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어떤 장소를 다시 찾았을 때, 그곳에 스며있던 과거의 시간이 현재로 흘러나오는 것이지요."
푸르스트는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노트는 이미 빼곡한 글씨로 가득 차 있었다.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대화 덕분에 제가 쓰려는 소설의 방향이 뚜렷해진 것 같습니다."
"어떤 소설인지 궁금하군요."
푸르스트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아직 제목도 정하지 못했지만... 한 남자의 일생을 통해 시간과 기억의 본질을 탐구하는 장편소설을 쓰려고 합니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부터 늙을 때까지의 경험을 통해, 시간이 어떻게 우리를 만들어가는지, 우리가 어떻게 시간을 경험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요."
베르그송의 눈이 반짝였다.
"야심찬 계획이군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데요."
"네, 아마 평생의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교수님과의 대화로 확신을 얻었습니다. 진정한 시간을 문학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두 사람은 일어서서 악수했다. 푸르스트가 문을 향해 걸어가다가 돌아섰다.
"교수님, 혹시 제가 소설을 완성하면 읽어봐 주실 수 있을까요?"
"기꺼이 그러겠습니다. 철학이 문학이 되는 순간을 보는 것은 철학자로서도 흥미로운 일이니까요."
푸르스트가 떠난 후, 베르그송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펜이 막힘없이 움직였다. 젊은 작가와의 대화가 자신의 생각을 더욱 명확하게 만들어준 것 같았다.
그는 『물질과 기억』의 마지막 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시간은 단순한 연속이 아니라 의식의 창조적 활동이라는 자신의 핵심 아이디어가 더욱 선명해졌다.
한편 파리의 거리를 걷고 있던 푸르스트는 노트를 꼭 껴안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소설의 첫 장면이 그려지고 있었다. 주인공이 침대에 누워 잠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밀려오는... 아니면 홍차에 과자를 적셔 먹는 순간 과거가 되살아나는...
그는 걸음을 멈추고 노트에 한 줄을 적었다.
"진정한 시간은 시계가 아니라 기억 속에 있다."
20여 년 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대작이 세상에 나왔을 때, 베르그송은 그 첫 페이지를 읽으며 미소지었다. 젊은 작가가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철학의 시간이 문학의 시간으로 완벽하게 변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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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 소설은 마르셀 푸르스트(1871-1922)와 앙리 베르그송(1859-1941)의 실제 만남을 상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푸르스트는 실제로 베르그송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순수 지속(durée pure)' 개념과 기억론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핵심적 토대가 되었다.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Matière et Mémoire)』(1896)과 푸르스트의 문학적 시간 의식 형성 시기가 겹치는 1895년경을 배경으로 설정했다. 두 인물의 구체적 만남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푸르스트가 베르그송의 강의를 들었다는 사실과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베르그송 철학의 흔적들을 바탕으로 이 만남을 소설적으로 상상해보았다.
베르그송의 시간론(특히 시계 시간과 체험 시간의 구별)과 푸르스트의 '무의지적 기억(mémoire involontaire)' 이론의 연관성, 그리고 홍차와 마들렌 에피소드로 유명한 푸르스트의 기억 복원 장면의 철학적 배경을 이 대화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