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가을, 할레 대학교의 한 연구실. 벽시계가 밤 11시를 알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에드문트 후설은 책상 위에 놓인 수학 논문들을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촛불이 희미하게 흔들리는 가운데, 그의 눈앞에는 지난 십 년간 천착해온 수학 기초론 연구의 결과물들이 펼쳐져 있었다.
『산술의 철학』을 출간한 지 벌써 십여 년이 흘렀다. 당시 그는 수를 심리적 활동의 산물로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프레게의 신랄한 비판 이후 그 접근법에 대한 회의가 깊어져만 갔다. 수학의 객관성을 심리적 과정으로 환원한다면, 결국 상대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수학적 대상들은 과연 어떻게 존재하는가?" 후설은 중얼거렸다. 그의 스승 브렌타노로부터 배운 심리학주의적 접근법으로는 더 이상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수의 의미가 개인의 심리적 체험에 의존한다면, 2+2=4라는 명제가 어떻게 보편적으로 타당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을 향해 걸어갔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눈에 들어왔다. 칸트는 수학적 종합 판단의 선험적 성격을 강조했지만, 그 역시 인식 주체의 형식에 의존하는 구조였다. 후설은 고개를 저었다. 뭔가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창밖으로는 가스등이 거리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할레의 밤거리는 고요했다. 후설은 창가로 걸어가 밤공기를 마셨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 깊숙이 스며들면서 그의 정신이 맑아졌다. 바로 그 순간, 무언가가 번개처럼 그의 마음을 스쳤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가스등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물리학자라면 이것을 전자와 가스의 화학반응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심리학자라면 나의 시각적 자극과 뇌의 반응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것은 그런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 바로 '이 빛나는 것' 자체이다."
그는 다시 한 번 가스등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 객체도, 심리적 표상도 아니었다. 그것은 '빛으로서', '따뜻함으로서', '밤의 안내자로서' 그에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 나타남 자체, 그 현상성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즉자적인 것이었다.
후설은 흥분된 마음으로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펜을 들었다.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철학적 전제들을 의심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자연적 태도를 괄호 안에 넣어야 한다." 그는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 "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 과학적 설명이 참이라는 가정, 모든 것을 일단 '판단 중지'해야 한다. 에포케(epoché)... 그리스인들이 말한 판단 정지 말이다."
그는 계속해서 글을 써내려갔다. "데카르트가 모든 것을 의심했듯이, 나 역시 모든 존재 정립을 괄호 안에 넣어야 한다. 하지만 데카르트와 달리, 나는 회의를 통해 확실한 존재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현상하는 것, 의식에 주어지는 것 그 자체를 탐구하려는 것이다."
밤이 깊어갔다. 후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썼다. "의식은 항상 무언가에 대한 의식이다. 이것이 브렌타노 선생님이 말씀하신 지향성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를 심리학적 사실로만 보셨다. 나는 이 지향성 자체의 구조를 순수하게 기술하고 싶다."
다음날 아침, 철학과 교수 회의실에서 후설은 동료들과 마주앉았다.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가운데, 그는 밤새 정리한 생각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사태 그 자체를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온갖 이론과 가정들이 우리 눈을 가리고 있었어요."
나이 든 교수 하나가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후설 교수, 또 새로운 이론인가요? 자네의 심리학주의도 결국 막다른 길에 부딪혔지 않소?"
후설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바로 그 때문입니다. 심리학주의의 한계를 깨달았기에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존재론적 가정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젊은 조교수 하나가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사태 자체'란 무엇입니까?"
후설은 잠시 침묵했다가 신중하게 대답했다. "그것은 의식에 직접 주어지는 것, 현상하는 것 그 자체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지금 이 책상을 볼 때, 물리학적 나무 분자나 심리학적 감각 자료가 아니라, 바로 '책상으로서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는 일어나서 창가로 걸어갔다. "저 나무를 보십시오. 식물학자는 그것을 세포와 엽록소의 집합체로 설명할 것입니다. 화가는 색채와 형태의 조화로 볼 것이고, 시인은 생명의 상징으로 노래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마주하는 것은 이 모든 해석에 앞서 '나무로서 현상하는 것'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학문이 될 수 있습니까?" 다른 교수가 의구심을 표했다. "객관적 기준도, 검증 가능한 방법도 없어 보이는데요."
후설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차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엄밀한 학문이 될 수 있습니다. 의식의 지향성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의식은 항상 '~에 대한' 의식이에요. 기억은 '~을 기억하는' 것이고, 지각은 '~을 지각하는' 것입니다. 상상은 '~을 상상하는' 것이죠."
그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이 지향적 관계를 순수하게 기술하는 것이 현상학입니다. 노에시스(의식 작용)와 노에마(의식 내용)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어떤 존재론적 전제도 하지 않습니다. 단지 현상하는 것을 현상하는 그대로 기술할 뿐입니다."
한 동료가 반박했다. "하지만 후설 교수, 그렇다면 결국 주관적 관념론에 빠지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후설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세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존재 정립을 괄호 안에 넣고, 세계가 의식에 어떻게 주어지는지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오히려 객관성의 진정한 토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회의는 늦은 오후까지 계속되었다. 후설은 동료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더욱 분명히 해나갔다.
그날 저녁, 후설은 집으로 돌아가 아내 말비네에게 하루의 일을 털어놓았다. 말비네는 언제나 그렇듯 남편의 철학적 고민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여보, 나는 오늘 새로운 철학의 길을 발견한 것 같아요."
말비네는 남편의 들뜬 표정을 보며 미소지었다. "또 새로운 아이디어인가요? 당신은 늘 그러시잖아요."
"아니에요, 이번은 정말 달라요." 후설은 진지했다. "지금까지 모든 철학이 놓친 것을 찾았어요. 바로 의식 그 자체를 연구하는 방법을요. 철학이 진정 엄밀한 학문이 될 수 있는 길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말비네는 남편의 손을 잡았다. "당신이 그렇게 확신한다면 분명 중요한 발견일 거예요. 하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그 후 몇 달 동안, 후설은 새로운 방법론을 체계화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브렌타노의 기술적 심리학과 볼차노의 논리학을 종합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다.
"의미란 무엇인가?" 후설은 자문했다. "그것은 단순한 심리적 현상도, 추상적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의식 작용 속에서 구성되면서도 객관적 타당성을 갖는 이념적 존재이다."
그는 『논리연구』의 초고를 써내려가면서 점점 더 명확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현상학적 방법을 통해 논리학, 수학, 나아가 모든 학문의 기초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1901년 봄, 드디어 『논리연구』가 출간되었다. 후설은 그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철학은 전제 없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태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Zu den Sachen selbst!)."
책이 출간된 후, 반응은 엇갈렸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철학적 방법론의 탄생을 환영했고, 어떤 이들은 여전히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후설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미 더 나아간 연구를 계획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연구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20세기가 시작된 지 이제 겨우 몇 년. 과학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지만, 인간의 의식과 경험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 하지만 그는 확신했다. 현상학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20세기 철학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후설은 아직 자신의 이 방법론이 하이데거에 의해 존재론적으로 전환되고,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를 거쳐 실존주의로 발전하며, 나아가 해석학과 해체철학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철학이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새로운 시작이 바로 '사태 자체로의 복귀'에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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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 소설은 후설이 1900년경 『논리연구』를 집필하면서 현상학의 기본 방법론을 확립하는 과정을 바탕으로 했다. 후설의 브렌타노 사사 관계와 수학 기초론 연구에서 현상학으로의 전환은 역사적 사실이며, "사태 자체로(Zu den Sachen selbst)"라는 현상학의 핵심 슬로건 역시 실제로 『논리연구』에서 제시된 것이다.
다만 후설의 구체적인 깨달음의 순간과 동료들과의 대화, 가족과의 일상적 모습은 소설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힌다. 현상학의 주요 개념들인 판단 중지(에포케), 지향성, 현상학적 환원 등은 후설의 실제 이론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