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피타고라스는 다시 그 꿈을 꾸었다. 수많은 숫자들이 공중에 떠다니며 춤을 추는 꿈. 1과 2가 만나 3을 낳고, 정사각형과 정삼각형이 서로 얽히며 기묘한 문양을 만들어내는 꿈. 그는 평생 이 수의 비밀을 풀기 위해 살아왔다. 이집트에서 20년, 바빌론에서 12년을 보내며 수학과 기하학을 배웠고, 이제 크로톤에 정착한 지 15년째였다.
"만물은 수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지만, 정작 자신도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가 세계의 본질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제자들과 함께 기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직각삼각형의 세 변의 관계에 관한 정리를 설명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피타고라스의 집중을 깨뜨렸다.
땅! 땅땅! 땅! 땅땅!
대장간에서 들려오는 망치 소리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 소리가 이상했다. 무질서한 소음이 아니라 일종의 리듬, 아니 선율처럼 들렸다. 어떤 소리들은 서로 어울려 귓속 깊이 파고들었고, 어떤 소리들은 거슬렸다.
"잠시 쉬도록 하자." 피타고라스가 말했다.
제자들은 선생이 갑자기 수업을 중단한 것에 놀랐지만, 그가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히파수스와 테아노, 그리고 몇몇 제자들이 선생을 따라 대장간으로 향했다.
대장간 안은 후텁지근했다. 화덕의 열기가 얼굴을 때렸다. 네 명의 대장장이가 각자의 모루 앞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같은 리듬으로 망치를 내리치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소리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냈다.
피타고라스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가장 큰 망치와 중간 크기 망치의 소리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반면 어떤 망치들의 조합은 불협화음을 냈다.
"이거 놀라운 일이군." 그가 중얼거렸다.
그는 대장장이 우두머리에게 다가가 정중히 부탁했다. "제게 당신네 망치들을 잠시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장장이는 의아한 얼굴로 피타고라스를 쳐다보았지만, 크로톤에서 가장 존경받는 현자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피타고라스는 네 개의 망치를 하나씩 들어보며 무게를 가늠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지시했다. "저울을 가져오너라. 정확한 무게를 재야겠다."
한참 후, 결과가 나왔다. 가장 무거운 망치는 12리브라, 다음은 9리브라, 그다음은 8리브라, 마지막은 6리브라였다.
"흥미롭군. 12, 9, 8, 6..." 피타고라스는 숫자들을 되뇌었다.
그는 대장장이에게 12리브라 망치와 6리브라 망치를 동시에 치게 했다. 완벽한 조화였다. 귀가 편안했다.
"12와 6... 2 대 1의 비다." 그의 눈이 빛났다.
이번에는 12리브라와 8리브라를 쳤다. 역시 아름다운 화음이었다. "3 대 2로군."
12리브라와 9리브라는? "4 대 3이다!"
반대로 9리브라와 8리브라를 쳤을 때는 어색한 소리가 났다. 9와 8... 간단한 정수비로 떨어지지 않는 관계였다.
피타고라스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떨리는 손으로 제자들을 돌아보았다. "보았느냐? 조화로운 소리는 모두 간단한 수의 비율로 이루어져 있다! 2:1, 3:2, 4:3!"
테아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 조화란 혼돈의 반대가 아니라 질서다. 그리고 그 질서는 수의 비율에 근거하고 있다!"
그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피타고라스는 즉시 리라를 꺼내 실험을 시작했다. 같은 굵기와 장력을 가진 현 두 개를 준비했다. 하나는 전체 길이를 울리게 하고, 다른 하나는 정확히 절반 지점을 손가락으로 눌러 반만 진동하게 했다.
띵! 띵!
두 소리가 완벽한 옥타브를 이루었다. 길이 비는 2:1이었다.
"맞았어!" 피타고라스가 소리쳤다.
이번에는 현의 3분의 2 지점을 눌렀다. 3:2의 비율. 완전 5도 음정이 울려 퍼졌다. 4분의 3 지점은 4:3의 비율로 완전 4도를 만들어냈다.
"신들이시여! 음악이 수학이었습니다!" 그는 거의 기도하듯 외쳤다.
제자들은 선생이 계속해서 현을 튕기며 소리와 비율을 측정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해가 지고 밤이 깊어갔지만 피타고라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온갖 비율을 시험했고, 그 결과를 꼼꼼히 기록했다.
밤이 깊어지자 제자들은 하나둘 자리를 떴다. 하지만 히파수스만은 남아 선생을 지켜보았다.
"선생님." 한참 만에 히파수스가 입을 열었다. "이 발견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피타고라스는 창밖의 별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내가 평생 추구해온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느냐? 겉보기에 혼란스러워 보이는 이 세계 뒤에 숨겨진 질서를 찾는 것이었다. 오늘 우리는 그 질서의 한 모습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것은 음악에 관한 것 아닙니까?"
"음악?" 피타고라스가 빙그레 웃었다. "음악은 시작에 불과하다. 생각해보거라. 만약 소리의 조화가 수의 비율로 설명된다면, 다른 것들은 어떠하겠느냐? 건축의 아름다움은? 인간 신체의 균형은? 천체의 운행은?"
히파수스는 선생의 말을 곱씹었다. "그렇다면 우주 전체가..."
"그렇다. 우주 전체가 거대한 수학적 질서로 이루어져 있다. 행성들이 움직이는 궤도에도 분명 어떤 비율이 있을 것이다. 계절이 바뀌는 주기에도, 조수가 밀려오는 리듬에도 말이다."
피타고라스는 일어나 천천히 방을 거닐었다. "생각해보거라. 지금 이 순간에도 행성들은 각자의 궤도에서 움직이며 소리를 내고 있을 것이다. 달은 달의 음을, 태양은 태양의 음을, 다른 떠돌이별들은 각자의 음을 내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소리가 합쳐져 우주의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을 것이다."
"천체의 음악이라..." 히파수스가 황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태어날 때부터 그 속에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학을 통해 우리는 그 화음을 이해할 수 있다. 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수는 변하지 않는 진리다."
다음 날부터 피타고라스의 학교는 음향 연구에 몰두했다. 그들은 각종 악기를 가져와 소리와 비율의 관계를 측정했다. 관악기에서도 같은 법칙이 적용되는지 확인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모든 조화로운 소리는 간단한 정수비로 표현되었다.
어느 날 저녁, 피타고라스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우리는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아름다움은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것이다. 어떤 화음이 아름답게 들리는 이유는 우리의 기분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우주의 근본 질서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테아노가 질문했다. "그렇다면 예술도 과학처럼 배울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물론이다.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은 영감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수학적 질서를 이해해야 한다. 건축가가 아름다운 신전을 짓기 위해서는 황금비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히파수스가 한 걸음 나섰다. "선생님, 그렇다면 우리 인간도 이 우주적 조화의 일부입니까?"
피타고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 우리의 영혼도 수학적 질서를 따른다. 영혼이 건강할 때는 조화롭고, 병들었을 때는 불협화음을 낸다. 그래서 음악으로 영혼을 치유할 수 있다. 적절한 비율의 화음은 어긋난 영혼을 다시 균형 잡힌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총총히 떠 있었다. "우리는 지금 우주의 언어를 배우고 있다. 그 언어는 그리스어도 이집트어도 아닌 수학이다. 그리고 그 언어를 이해하는 자만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 철학자가 될 수 있다."
그날 밤 피타고라스는 다시 꿈을 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과 달랐다. 숫자들이 단순히 춤추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불렀다. 1, 2, 3, 4가 조화를 이루어 테트락티스를 만들었고, 그 신성한 도형에서 완벽한 화음이 울려 퍼졌다. 그는 잠결에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자신이 평생 찾던 것을 발견한 것 같았다. 만물의 근원, 우주의 질서, 그것은 바로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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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 소설은 기원전 6세기경 남부 이탈리아의 크로톤에서 활동한 피타고라스(기원전 570~495년경)가 음향학의 수학적 기초를 발견한 일화를 바탕으로 창작했다. 대장간의 망치 소리에서 화음의 비밀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는 고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일화로, 6세기 철학자 보에티우스의 『음악론(De institutione musica)』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피타고라스학파는 음향학에서 현의 길이와 음높이의 관계를 처음으로 수학적으로 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옥타브(2:1), 완전 5도(3:2), 완전 4도(4:3) 등의 음정이 간단한 정수비로 표현된다는 발견은 실제로 피타고라스학파의 업적이다. 다만 망치의 무게와 음높이의 직접적 상관관계는 물리학적으로 정확하지 않으며, 실제로는 현의 장력과 길이가 중요한 변수다.
'천체의 음악(Musica universalis)' 개념과 '만물은 수'라는 피타고라스의 핵심 사상은 역사적 기록으로 확인되며,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도 언급되어 있다. 이 사상은 이후 서양 철학과 과학, 음악 이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소설 속 대화와 피타고라스의 내적 사유 과정, 제자들과의 구체적인 상호작용은 역사적 기록이 불완전한 부분을 소설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힌다. 특히 제자 히파수스와 테아노(피타고라스의 제자이자 후에 아내가 된 것으로 전해지는 인물)는 실존 인물이지만, 이들과의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창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