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아랍어 이름, Falsafa
Falsafa(فلسفة). 이 단어는 그리스어 'philosophia(φιλοσοφία)'의 아랍어 음사다.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의 그리스어가 8세기 바그다드의 번역가들 손을 거쳐 아랍어 음운 체계로 옮겨졌다. Ph 발음이 F로, 장모음들이 아랍어의 삼자음 체계에 맞춰 재구성되면서 탄생한 이 단어는 단순한 음역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리스어 'philosophia'가 '사랑하다(philein)'와 '지혜(sophia)'의 결합이라면, falsafa는 그 어원적 투명성을 상실한 채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기능했다. 아랍어 사용자들에게 falsafa는 분석 가능한 합성어가 아니라 '그리스인들의 학문'을 지칭하는 외래 개념이었다. 이는 중요한 문화적 함의를 지닌다. Falsafa는 처음부터 '우리의 것'이 아닌 '그들로부터 온 것'이라는 인식과 함께 출발했다.
바그다드 지혜의 집과 번역 운동
8세기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만수르와 하룬 알라시드, 그리고 알마문은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Bayt al-Hikma)'을 설립했다. 이곳에서 시리아어,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 그리스어 문헌들이 아랍어로 대규모 번역되었다. 후나인 이븐 이스하크를 비롯한 번역가들은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플로티노스의 『엔네아데스』를 아랍어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 저작이 『아리스토텔레스 신학(Theology of Aristotle)』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면서, 중세 이슬람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신비주의적 형이상학자로 이해하게 되었다. 번역 과정의 오인과 혼동이 오히려 독특한 철학적 종합을 낳은 것이다.
Falsafa와 Kalam - 두 사유 방식의 긴장
이슬람 사상사에서 falsafa는 kalam(علم الكلام)과 구별되었다. Kalam은 '말', '담론'을 뜻하는 아랍어로, 이슬람 신학을 지칭한다. Kalam은 꾸란과 하디스에서 출발하여 신앙의 합리적 방어를 목표로 했다. 반면 falsafa는 계시와 무관하게 이성만으로 진리에 도달하려는 그리스 전통의 사유 방식이었다.
알킨디(Al-Kindi, 801-873)는 최초의 아랍 철학자로서 falsafa와 이슬람 신앙의 조화를 시도했다. 그는 "진리의 원천이 무엇이든, 진리는 하나"라고 선언하며 그리스 철학과 꾸란의 양립 가능성을 주장했다. 알파라비(Al-Farabi, 872-950)는 더 나아가 이성적 탐구를 통해 도달한 진리와 예언자들이 전한 계시가 동일한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븐 시나(Avicenna, 980-1037)는 falsafa의 정점을 구현했다. 그의 『치유의 서(Kitab al-Shifa)』는 논리학, 자연학, 수학, 형이상학을 아우르는 거대한 철학 체계였다. 그는 '필연적 존재(wajib al-wujud)'와 '가능적 존재(mumkin al-wujud)'의 구별을 통해 신의 존재를 논증했다. 신은 자신의 본질로부터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존재이며, 모든 다른 존재는 신으로부터 유출(emanation)된다.
알가잘리의 비판과 Falsafa의 위기
그러나 falsafa는 강력한 반론에 직면했다. 알가잘리(Al-Ghazali, 1058-1111)는 『철학자들의 모순(Tahafut al-Falasifa)』에서 falasifa(철학자들)의 핵심 주장 스무 가지를 공격했다. 특히 세 가지 - 세계의 영원성, 신의 개별자 인식 불가능, 육체 부활 부정 - 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알가잘리의 비판은 예리했다. 그는 철학자들이 필연적 인과율을 주장하지만, 이는 단순히 습관적 연접일 뿐 논리적 필연성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불이 솜을 태우는 것은 불의 본성 때문이 아니라 신이 그렇게 작용하도록 창조했기 때문이다. 신은 언제든 기적을 통해 이 연접을 끊을 수 있다. 이는 후일 데이비드 흄의 인과론 비판을 500년 앞서 제시한 통찰이었다.
이븐 루쉬드의 반격 - Falsafa의 재건
이븐 루쉬드(Averroes, 1126-1198)는 『모순의 모순(Tahafut al-Tahafut)』에서 알가잘리에 반박했다. 그는 철학과 종교가 동일한 진리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고 주장했다. 『결정적 논고(Fasl al-Maqal)』에서 그는 꾸란이 이성적 탐구를 명령한다고 해석했다. "성찰하라", "사유하라"는 꾸란의 구절들이 바로 철학을 하라는 신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이븐 루쉬드는 진리의 세 가지 표현 방식을 구별했다. 수사적(rhetorical) 표현은 대중을 위한 것이고, 변증론적(dialectical) 표현은 신학자들을 위한 것이며, 논증적(demonstrative) 표현은 철학자들을 위한 것이다. 같은 진리가 청중의 능력에 따라 다르게 전달될 뿐이다.
그러나 이븐 루쉬드의 변호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세계에서 falsafa는 점차 주변화되었다. 13세기 이후 madrasa(신학교) 교육 과정에서 falsafa는 배제되고, kalam과 법학(fiqh), 꾸란 해석(tafsir)이 중심이 되었다.
Falsafa에서 Philosophia로 - 라틴 번역 운동
역설적이게도 falsafa는 이슬람 세계에서 쇠퇴하면서 동시에 라틴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12-13세기 톨레도와 시칠리아에서 아랍어 철학 텍스트들이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이븐 시나는 Avicenna로, 이븐 루쉬드는 Averroes로 알려지며 중세 유럽 대학의 필수 교재가 되었다.
제라르 크레모나(Gerard of Cremona)는 톨레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후분석론』, 『자연학』, 『천체론』을 이븐 루쉬드의 주석과 함께 번역했다. 이븐 시나의 『의학정전(Canon of Medicine)』은 17세기까지 유럽 의과대학의 표준 교과서였다.
파리 대학의 스콜라 철학자들은 falsafa의 유산을 놓고 격렬히 논쟁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븐 시나와 이븐 루쉬드의 아리스토텔레스 해석을 기독교 신학과 종합하려 했다. 그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은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명제 아래 이성과 계시의 조화를 추구했다. 이는 알파라비와 이븐 루쉬드가 시도했던 바로 그 기획이었다.
반면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은 이븐 루쉬드의 '이중 진리론'을 급진적으로 해석했다. 철학적으로 참인 것이 신학적으로는 거짓일 수 있다는 주장은 1277년 파리 대주교 에티엔 탕피에에 의해 단죄되었다. 219개 명제가 이단으로 규정되었고, 그 중 상당수가 falsafa의 핵심 주장들이었다.
언어의 여정이 사유의 여정이 될 때
Philosophia → Falsafa → Philosophia. 이 순환적 여정은 단순한 번역사가 아니다. 그리스어 철학 용어가 아랍어로 옮겨지면서 이슬람 신앙과의 긴장 속에서 재해석되었고, 다시 라틴어로 옮겨지면서 기독교 신학의 맥락에서 새롭게 이해되었다. 같은 단어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통과하면서 의미의 변주를 거듭했다.
Falsafa의 역사는 사유가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을 때 무엇이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음역된 단어는 원래의 어원적 의미를 잃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적 맥락 속에서 재창조된다. Falsafa는 '이방의 학문'이라는 인식과 함께 출발했지만, 그 이방성이야말로 이슬람 사상을 풍부하게 만든 원천이었다.
오늘날 영어의 philosophy, 프랑스어의 philosophie, 독일어의 Philosophie는 모두 그리스어 어원을 투명하게 유지한다. 반면 아랍어 falsafa는 그 이질성을 보존한 채 지적 전통 속에 남아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언어학적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문명이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면서도 각자의 특수성을 유지하려 했던 역사적 긴장을 담고 있다.
중세 이슬람 falasifa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으면서도 꾸란을 잊지 않았고, 스콜라 철학자들은 이븐 시나를 연구하면서도 성서를 기준으로 삼았다. 이 생산적 긴장이야말로 falsafa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일지 모른다. 진리는 하나지만, 그것에 이르는 길은 언어와 문화의 수만큼 다양하다는 깨달음.
© 2025 아트앤스터디 + claude.ai, CC BY 4.0
이 저작물은 카피레프트(Copyleft) 정신을 따르며, 출처 표시만 하면 누구나 복제, 배포가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