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독일 출신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로, 그의 대표작 『자본론』(Das Kapital)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근본부터 분석한 기념비적 저작이다. 1867년 1권이 출간된 이래, 2권(1885)과 3권(1894)은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의 편집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단순한 경제학 저술을 넘어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 원리를 밝히고,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해명한 거대한 지적 성과물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빈부격차가 심화되는지, 노동자들은 왜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월급제, 노동시간, 최저임금 같은 개념들도 사실은 『자본론』이 제기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품의 비밀 - 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자본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경제 단위인 '상품'의 분석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편의점에서 사는 생수 한 병,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하는 스마트폰, 이 모든 것이 상품이다. 마르크스는 상품이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고 봤다. 하나는 '사용가치'로, 그 물건이 실제로 우리에게 유용한 정도를 말한다. 생수는 갈증을 해소하고, 스마트폰은 소통과 정보 검색을 가능하게 한다.
다른 하나는 '교환가치'다. 시장에서 다른 상품과 교환될 수 있는 가치를 의미한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핵심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무엇이 상품의 교환가치를 결정하는가? 왜 생수 한 병은 1000원이고 스마트폰은 100만 원인가?
마르크스의 답은 명쾌하다. 그 안에 투입된 '노동시간'이다. 정확히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 상품의 가치를 결정한다. 생수 한 병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평균 노동시간과 스마트폰 한 대를 만드는 데 필요한 평균 노동시간의 차이가 가격 차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원료 채취부터 가공, 운송, 판매에 이르는 모든 과정의 노동이 포함된다.
화폐의 마법 - 모든 것을 숫자로 바꾸는 힘
노동이 가치를 만든다면, 화폐는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화폐를 '일반적 등가물'이라고 불렀다. 쉽게 말해, 모든 상품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만능 척도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물물교환을 했다. 쌀 한 가마니와 소 반 마리를 바꾼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건 너무 불편하다. 내가 필요한 게 소인데 상대방은 쌀이 필요 없다면? 거래가 성립하지 않는다.
화폐는 이 문제를 해결했다. 모든 상품을 화폐로 환산할 수 있게 되면서 교환이 훨씬 수월해졌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여기서 중요한 변화를 포착한다. 원래 화폐는 상품 교환을 매개하는 도구였다. '상품-화폐-상품'의 순환이었다. 즉, 내가 만든 상품을 팔아 돈을 받고, 그 돈으로 내가 필요한 다른 상품을 산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는 이 순서가 뒤바뀐다. '화폐-상품-화폐'가 된다. 돈으로 상품을 사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된다. 이때 화폐는 '자본'이 된다. 배달 플랫폼 회사를 생각해보자. 투자자들은 돈을 투자해서 배달 서비스라는 '상품'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원래 투자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한다. 이것이 자본의 운동이다.
잉여가치의 비밀 - 자본가는 어떻게 돈을 버는가
그렇다면 자본가는 어떻게 원래 투자한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까? 여기에 『자본론』의 핵심 개념인 '잉여가치론'이 등장한다. 마르크스는 자본가의 이윤이 노동자를 착취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논리는 이렇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산다. 노동자가 하루 8시간 일한다고 하자. 그런데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만큼의 가치를 생산하는 데는 4시간이면 충분하다. 나머지 4시간 동안 노동자가 만들어낸 가치는 누구에게 가는가? 자본가에게 간다. 이 초과 노동시간이 만들어낸 가치를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라고 불렀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생각해보자. 시급이 1만 원이고 하루 8시간 일하면 8만 원을 받는다. 그런데 그 노동자가 8시간 동안 만들어낸 가치(판매액에서 원가를 뺀 금액)는 15만 원이라면? 7만 원의 차이가 바로 잉여가치다. 이것이 편의점 점주의 이윤이 되고, 본부의 수익이 되며, 궁극적으로 자본 축적의 원천이 된다.
마르크스는 이 잉여가치를 늘리는 방법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절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하루 8시간이던 노동을 10시간, 12시간으로 연장하면 잉여가치도 늘어난다. 19세기 영국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하루 14~16시간씩 일했던 것이 이런 경우다.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기계를 도입하거나 작업 방식을 개선해서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상품을 만들어낸다. 그러면 노동자의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를 생산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잉여가치가 늘어난다. 오늘날 자동화, AI 도입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노동일을 둘러싼 투쟁 -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
『자본론』 1권의 상당 부분은 '노동일'의 역사를 다룬다. 마르크스는 영국 공장감독관 보고서를 방대하게 인용하며, 자본가들이 어떻게 노동시간을 극한까지 늘리려 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어린이들이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손가락이 잘리고, 과로로 쓰러지는 참혹한 현실이 기록되어 있다.
자본가들은 왜 이렇게 노동시간을 늘리려 했을까? 잉여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노동자를 하루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하게 하면 그만큼 이윤이 늘어난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반대한다. 자신들의 건강과 생명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노동일을 둘러싼 계급투쟁'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우리가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연차휴가 같은 제도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다. 『자본론』은 이 투쟁의 역사적 배경과 경제적 논리를 명확히 보여준다. 지금도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겪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문제는 19세기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기계와 대공업 - 기술 발전은 노동자를 해방하는가
마르크스는 기계의 도입이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깊이 분석했다. 언뜻 생각하면 기계가 힘든 노동을 대신해주니 노동자의 삶이 나아질 것 같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다.
첫째, 기계 도입으로 숙련노동자가 필요 없어진다. 복잡한 기술이 필요했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작업만 남는다. 이것은 노동자의 교섭력을 약화시킨다. "네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어"라는 말이 힘을 얻는다.
둘째, 기계는 여성과 아동 노동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힘이 덜 필요한 기계 작업은 여성과 어린이도 할 수 있었다. 자본가 입장에서는 저임금 노동력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세기 영국 방직공장에서 여성과 아동이 남성보다 훨씬 낮은 임금을 받으며 장시간 노동했던 것이 그 예다.
셋째, 기계는 노동자를 해고시킨다. 한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면 일자리가 사라진다. 마르크스는 이를 '산업예비군'의 형성이라고 불렀다. 실업자 집단이 존재하면 임금을 낮게 유지할 수 있다. "싫으면 나가, 일할 사람 많아"라는 압박이 가능해진다.
오늘날 AI와 로봇이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상황도 마르크스의 분석과 맥을 같이한다. 자율주행 기술이 발전하면 택시, 버스, 트럭 기사들은 어떻게 되는가? 챗봇이 고객 상담을 대신하면 콜센터 직원들은? 기술 발전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것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종종 부정적이다.
자본의 축적과 일반법칙 - 부익부 빈익빈의 구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체제의 '일반법칙'이라고 주장했다. 자본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계속 자본을 축적해야 한다. 이윤을 다시 투자해서 생산 규모를 키우고, 더 많은 기계를 도입하고,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한다.
이 과정에서 대자본이 중소자본을 흡수하면서 자본의 집중이 일어난다. 중소 상점들이 대형 마트에 밀리고, 대형 마트는 다시 온라인 쇼핑몰에 밀린다. 소수의 거대 플랫폼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는 현상이 바로 이것이다. 네이버, 쿠팡, 아마존 같은 기업들이 점점 더 많은 영역을 지배한다.
한편 노동자들의 처지는 어떻게 되는가?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의 상대적 빈곤화'를 말했다. 절대적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이다. 노동자의 실질소득이 조금 늘어날 수는 있지만, 자본가의 부 증가 속도에 비하면 턱없이 느리다. 격차가 벌어진다는 뜻이다.
한국의 상황을 보자. 1980년대만 해도 대기업 사장 연봉이 평사원의 10배 정도였다면, 지금은 수백 배가 넘는다.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지만 청년들의 임금 상승률은 그에 못 미친다. "아무리 일해도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꾼다"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마르크스가 150년 전에 분석한 자본 축적의 법칙이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공황과 모순 -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파괴하는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주기적으로 경제위기(공황)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봤다. 왜 그럴까? 자본가들은 이윤을 늘리기 위해 노동자 임금을 최대한 낮게 유지한다. 그런데 노동자는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하다. 임금이 낮으면 소비가 줄어든다. 생산은 많이 했는데 팔리지 않는 '과잉생산'이 발생한다. 재고가 쌓이고, 공장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늘어난다. 이것이 공황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떠올려보자.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면서 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했다.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다. 왜? 금융 자본이 무분별하게 팽창했기 때문이다. 집을 살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고, 그 부채를 금융상품으로 만들어 팔았다. 거품이 터지면서 경제 전체가 휘청거렸다. 마르크스라면 "봐라,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이 폭발한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런 모순이 반복되면서 결국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자본가 계급을 타도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이 그가 꿈꾼 '공산주의 사회'였다. 물론 역사는 그의 예측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는 무너졌고, 자본주의는 여전히 건재하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분석 자체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계속 반복되고 있고,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으며, 노동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자본론』은 단순히 과거의 텍스트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경제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도구다.
현대 자본주의를 읽는 렌즈
『자본론』을 읽는다고 해서 당장 혁명가가 될 필요는 없다. 마르크스의 모든 주장에 동의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 원리를 낯설게 바라보게 만든다. 왜 열심히 일해도 부자가 되지 못하는지, 왜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오르는지, 왜 비정규직은 점점 늘어나는지, 왜 플랫폼 노동자들은 사회보험 하나 제대로 못 받는지.
마르크스는 이 모든 현상이 개인의 능력이나 운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말한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통찰은 불편하지만 중요하다. 문제가 구조에 있다면 개인의 자기계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구조를 바꾸려는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자본론』은 쉬운 책이 아니다. 무려 3권에 걸친 방대한 분량에, 19세기 독일식 문체는 현대 독자에게 낯설다. 경제학 개념들도 복잡하다. 하지만 핵심만 추리면 그리 어렵지 않다. 노동이 가치를 만들고, 자본가는 노동자가 만든 잉여가치를 착취하며, 이 과정에서 자본은 축적되고 불평등은 심화된다. 이것이 『자본론』의 골자다.
21세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본론』은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받는 월급은 정당한가? 주 52시간도 많은 건 아닐까? 최저임금은 왜 이렇게 낮은가? 재벌들은 왜 점점 더 부자가 되는가? 부동산은 투기의 대상인가 주거의 권리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려면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한다. 『자본론』은 바로 그 출발점이다.
주요인용문
노동력의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이 특수한 상품의 생산, 따라서 또한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규정된다.
노동일은 일정한 크기를 갖지만 그 한계는 불명확하다. ... 자본가는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의 성질에 의거한 하나의 권리를 주장하고, 노동자는 정상적인 상품 판매자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 여기서는 권리와 권리가 대립하며, 이 두 권리는 모두 상품교환의 법칙에 의해 똑같이 인정된다. 동등한 권리들 사이에서는 힘이 결정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적 경향. ...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를 부정하는 부정이다. 이 부정은 개인적 소유를 재건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자본주의 시대의 성과인 협업과 토지 및 노동 그 자체에 의해 생산된 생산수단의 공동점유를 기초로 하는 것이다.
상품의 수수께끼 같은 성격은 ... 인간 자신의 노동의 사회적 성격이 노동생산물 자체의 물적 성격으로, 이들 물건의 사회적 자연속성으로 나타나며, 따라서 총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도 그들의 외부에 존재하는 물건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로 나타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은 노동일을 연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을 만들어낸다. 기계는 자본이 인간의 자연적 한계를 극복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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