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포스터(Hal Foster, 1955-)는 『실재의 귀환』(The Return of the Real, 1996)에서 1960년대 이후 현대미술을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으로 재해석했다. 이 책은 팝아트에서 1980년대 네오-아방가르드에 이르는 현대미술사를 '실재의 귀환'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한 획기적인 비평서다.
라캉의 실재와 미술비평
포스터는 라캉의 핵심 개념인 '실재'(Real)를 미술비평의 중심에 놓았다. 라캉에게 실재란 상징계와 상상계 너머에 있는, 재현 불가능하고 외상적인 차원이다. 그것은 언어로 포착될 수 없고, 이미지로 재현될 수 없으며, 오직 외상적 충격으로만 우리에게 다가온다.
전통적인 미술비평이 재현, 형식, 의미에 집중했다면, 포스터는 재현 불가능한 것, 형식화될 수 없는 것, 의미화를 거부하는 것에 주목했다. 실재는 우리의 상징적 질서를 교란하고, 우리가 구축한 의미의 체계를 뒤흔든다. 현대미술은 바로 이 실재와의 조우를 시도해왔다는 것이 포스터의 주장이다.
워홀의 외상적 리얼리즘
포스터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앤디 워홀을 재해석한 것이다. 기존 비평은 워홀을 팝아트의 냉소적 아이콘, 대중문화의 무비판적 찬양자로 보았다. 그러나 포스터는 워홀의 반복 이미지들에서 '외상적 리얼리즘'(traumatic realism)을 발견했다.
워홀의 《자동차 사고》 연작, 《전기의자》, 《참치 재난》 같은 작품들은 단순한 대중문화의 차용이 아니다. 죽음과 재난의 이미지를 기계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워홀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미디어 이미지의 외상적 본질을 드러낸다. 반복은 무감각을 낳지만, 동시에 그 반복 속에서 억압된 것이 귀환한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소셜미디어에서 끊임없이 재난과 폭력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처럼, 워홀의 이미지들은 재현과 실재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우리는 이미지를 보지만 정작 그것이 담고 있는 외상적 실재는 보지 못한다. 그러나 반복 속에서, 그 억눌린 실재가 증상처럼 회귀한다.
아방가르드의 실패와 반복
포스터는 역사적 아방가르드(1910-1920년대)와 네오-아방가르드(1950-1960년대)의 관계를 재고했다. 기존 비평가 페터 뷔르거는 네오-아방가르드를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실패한 반복, 제도화된 형태로 보았다. 그러나 포스터는 라캉의 '지연된 행동'(deferred action, Nachträglichkeit) 개념을 통해 이를 재해석했다.
라캉에게 외상은 사후적으로만 이해된다. 최초의 사건은 그 자체로는 의미를 갖지 못하고, 이후의 반복을 통해서만 외상적 의미를 획득한다. 마찬가지로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급진성은 당대에는 완전히 이해되지 못했고, 네오-아방가르드의 반복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났다.
따라서 네오-아방가르드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억압된 가능성을 사후적으로 현실화하는 작업이다. 1960년대 미니멀리즘이나 개념미술은 다다와 구축주의의 미완성 프로젝트를 완성한 것이다.
시뮬라크르 이론 비판
포스터는 1980년대를 지배했던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이론을 비판했다. 보드리야르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실재가 완전히 사라지고 이미지의 시뮬라크르만 남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포스터는 실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억압되었을 뿐이며, 억압된 실재는 언제나 외상적 형태로 귀환한다고 반박했다.
시뮬라크르 이론은 너무 쉽게 실재를 포기한다. 모든 것이 이미지이고 시뮬라크르라면, 비판의 근거도 사라진다. 반면 라캉의 실재 개념은 상징적 질서의 균열과 파열 지점을 가리킨다. 실재는 재현될 수 없지만, 바로 그 재현 불가능성 때문에 우리의 재현 체계를 끊임없이 교란한다.
오늘날 딥페이크와 AI 생성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려 한다. 이는 실재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이미지가 범람해도, 몸의 고통, 죽음의 확실성, 욕망의 실재성은 시뮬라크르로 환원되지 않는다.
신체와 정체성의 정치학
포스터는 1980-90년대 정체성 정치와 신체 미술을 분석했다. 페미니즘 미술, 퀴어 미술, 포스트콜로니얼 미술은 억압된 타자의 실재를 가시화하려는 시도다. 신디 셔먼, 바바라 크루거, 레온 골럽 같은 작가들은 주류 재현 체계에서 배제되고 왜곡된 신체와 정체성의 실재를 드러냈다.
그러나 포스터는 정체성 정치의 본질주의적 함정도 경고했다. '진정한 여성성', '진정한 흑인성'을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고정된 정체성을 만들 위험이 있다. 실재는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상징적 질서의 균열에서 나타나는 외상적 차원이다.
오늘날 젠더 정체성과 인종 정의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이 문제는 여전하다. 온라인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커밍아웃'하고 증명해야 하는 압력, 정체성 카테고리를 끊임없이 세분화하는 경향은 정체성의 실재를 포착하려는 필사적 시도이자, 동시에 그것의 불가능성을 보여준다.
아브젝트와 혐오의 미학
포스터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abject) 개념을 미술 분석에 도입했다. 아브젝트는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혐오스럽고 매혹적인 것이다. 신체의 배설물, 피, 상처, 부패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1990년대 신체 미술은 아브젝트를 전면화했다. 신디 셔먼의 후기 작품, 키키 스미스의 신체 조각, 마이크 켈리의 더러운 인형들은 모두 깨끗하고 통합된 주체의 환상을 깨뜨린다. 이들은 우리가 억압하고 배제한 신체의 물질성, 취약성, 죽음성을 직면하게 만든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완벽하게 보정된 이미지들이 지배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일부 예술가들은 의도적으로 '언캐니'하고 불편한 이미지를 생산한다. 이는 디지털 이미지 문화가 배제한 신체의 실재를 환기시키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현대미술의 아카이브 충동
포스터는 200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아카이브 충동'(archival impulse)도 분석했다. 많은 작가들이 역사적 문서, 사진, 기록물을 수집하고 재배치하는 작업을 한다. 이는 단순한 역사주의가 아니라, 공식 역사에서 억압된 기억과 트라우마를 발굴하는 작업이다.
타치타 딘, 토마스 히르쉬혼, 팀 롤린스 같은 작가들은 망각되고 주변화된 역사의 파편들을 모은다. 이들의 아카이브는 박물관의 체계적 아카이브와 다르다. 이것은 불완전하고, 우연적이며, 주관적인 기억의 저장소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모든 것을 아카이브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알고리즘이 선택하고 배치하는 디지털 아카이브는 무엇을 배제하는가? 예술가들의 아카이브 작업은 공식 아카이브의 바깥, 데이터베이스에 포착되지 않는 경험의 실재를 보존하려는 시도다.
비판적 거리의 종말?
포스터는 현대사회에서 비판적 거리가 붕괴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에 아방가르드는 부르주아 사회의 바깥에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는 모든 비판과 저항을 흡수하고 상품화한다.
뱅크시의 그라피티가 수억 원에 거래되고, 반자본주의 슬로건이 티셔츠로 팔린다. 비판 자체가 문화산업의 일부가 되었다. 그렇다면 비판적 미술은 여전히 가능한가?
포스터는 완전한 바깥은 없지만, 내부의 균열과 모순을 드러내는 작업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실재는 자본주의적 재현 체계 안에서도 증상적으로 드러난다. 예술의 과제는 그 증상을 감지하고 증폭시키는 것이다.
21세기 실재의 귀환
2020년대의 관점에서 보면, 포스터의 통찰은 더욱 예언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말 그대로 '실재의 귀환'이었다. 아무리 가상현실과 메타버스를 이야기해도, 바이러스라는 생물학적 실재,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실재가 모든 시뮬라크르를 뚫고 들어왔다.
기후위기, 전쟁, 난민, 팬데믹은 모두 억압되었던 실재의 외상적 귀환이다. 우리는 더 이상 안전한 거리에서 이미지를 소비할 수 없다. 실재는 우리의 일상을 침범하고, 우리의 상징적 질서를 교란한다.
포스터의 책은 바로 이런 시대에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다. 예술은 실재를 재현할 수 없다. 그러나 재현의 한계를 드러내고, 억압된 것의 귀환을 증언하고, 상징적 질서의 균열을 가시화할 수 있다. 『실재의 귀환』은 20세기 후반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필수적 텍스트이자, 21세기 위기의 시대를 사유하는 이론적 도구다.
주요인용문
예술의 역사는 동일한 것의 끝없는 반복이 아니라, 억압된 것의 지연된 회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네오-아방가르드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실패한 반복이 아니라, 그것의 미완성 프로젝트를 사후적으로 완성하는 작업이다.
워홀의 작업에서 이미지의 반복은 단순히 팝적 무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외상적 실재를 스크린하는 동시에 그것을 생산한다. 반복은 외상적 경험을 무디게 만들지만, 바로 그 반복 속에서 억압된 외상이 귀환한다.
실재는 재현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실재는 재현 불가능한 것으로서, 우리의 상징적 질서를 끊임없이 교란한다. 예술의 과제는 이 재현 불가능성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시뮬라크르 이론은 너무 빨리 실재를 포기한다. 모든 것이 이미지라면, 비판의 근거는 무엇인가? 라캉의 실재 개념은 상징계의 바깥이 아니라, 상징계 내부의 균열을 가리킨다.
아방가르드는 부르주아 사회로부터의 완전한 분리를 꿈꾸었지만, 이는 환상이었다. 그러나 완전한 바깥이 없다고 해서 비판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비판은 내부의 모순과 증상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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