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의 『에티카(Ethica)』는 1677년 그의 사후에 출판된 철학서로,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난해한 저작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 책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방식을 빌려 정의, 공리, 정리, 증명이라는 수학적 구조로 철학적 진리를 논증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렌즈를 갈며 생계를 유지했던 유대계 철학자는 이 책에서 신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범신론적 일원론을 전개하고, 인간의 감정과 자유에 대한 혁명적 통찰을 제시했다.
『에티카』는 당대에는 무신론으로 비난받았지만, 오늘날에는 들뢰즈, 네그리 같은 현대 사상가들에 의해 재조명되며 자본주의, 생태위기, 감정노동 시대를 사유하는 핵심 텍스트로 주목받고 있다. SNS 시대의 감정 경제, 플랫폼 자본주의의 알고리즘, 기후위기 속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스피노자의 사유는 놀라울 정도로 예리한 통찰을 제공한다.
기하학적 방법으로 쓰인 철학: 유클리드를 닮은 『에티카』의 구조
『에티카』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신에 관하여', 제2부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관하여', 제3부 '감정의 기원과 본성에 관하여', 제4부 '인간의 예속 또는 감정의 힘에 관하여', 제5부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에 관하여'. 각 부는 정의(Definitio)로 시작해 공리(Axioma)를 제시하고, 정리(Propositio)를 증명(Demonstratio)하며, 때로 주석(Scholium)과 보충(Corollarium)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예를 들어 제1부 정의3은 "실체란 그 자체 안에 있으며 그 자체에 의해 파악되는 것, 즉 그 개념을 형성하는 데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이어서 정리6은 "하나의 실체가 다른 실체에 의해 산출될 수 없다"를 증명하고, 정리14에 이르러 "신 이외의 어떤 실체도 있을 수 없고 파악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마치 수학 정리를 증명하듯, 스피노자는 철학적 명제들을 논리적으로 연역해나간다.
이런 기하학적 방법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데카르트가 성찰이라는 1인칭 사유의 형식을 택했다면, 스피노자는 인간의 주관성과 감정을 배제한 객관적 진리 체계를 구축하려 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냉정한 기하학적 형식 속에서 그는 인간 감정의 본질과 자유의 가능성에 대해 가장 뜨겁게 사유했다.
신 즉 자연: 범신론적 일원론의 혁명
『에티카』의 가장 유명한 명제는 "신 즉 자연(Deus sive Natura)"이다. 스피노자에게 신은 세계 밖에서 세계를 창조한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신은 자연 그 자체이며, 무한한 속성을 가진 유일한 실체다. 그는 제1부 정리14 주석에서 "신은 만물의 내재적 원인이지 초월적 원인이 아니다"라고 못박는다.
전통적 유대-기독교 신학에서 신은 인격적 존재로 세계를 창조하고 기적을 행하며 인간을 심판한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신은 필연의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자연 그 자체다. 인격도 의지도 없다. 태양이 빛을 내듯, 신은 자신의 본성에 따라 필연적으로 만물을 산출한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당대에 무신론자로 낙인찍힌 이유다.
하지만 스피노자 본인은 자신을 가장 경건한 철학자로 여겼다. 그에게 신에 대한 참된 사랑은 맹목적 복종이 아니라 자연의 필연적 질서를 이성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후위기 시대에 이런 사유는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인간을 자연의 지배자로 보는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의 법칙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통찰은 생태철학의 선구적 비전이다.
실체, 속성, 양태: 존재론의 삼위일체
스피노자 형이상학의 핵심은 실체(substantia), 속성(attributum), 양태(modus)라는 세 개념이다. 실체는 그 자체로 존재하며 그 자체로 파악되는 것으로, 오직 신만이 실체다. 속성은 지성이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인데,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속성은 연장(extensio)과 사유(cogitatio) 두 가지다. 양태는 실체의 변양, 즉 실체 안에 있으면서 실체에 의해 파악되는 것이다. 개별 사물들, 인간의 신체와 정신은 모두 양태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신체를 서로 다른 두 실체로 나누어 심신이원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스피노자에게 실체는 오직 하나, 신뿐이다. 인간의 정신과 신체는 서로 다른 두 실체가 아니라, 동일한 양태를 서로 다른 속성(사유와 연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제2부 정리7 주석에서 그는 "사유하는 실체와 연장하는 실체는 하나이며 동일한 실체"라고 명확히 한다.
이것은 오늘날 마음과 몸, 정신과 물질을 분리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는 통합적 인간 이해의 토대가 된다. 번아웃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 마음의 문제가 곧 몸의 문제이고 몸의 문제가 곧 마음의 문제라는 통찰은 스피노자로부터 온다.
코나투스: 존재하려는 노력, 삶의 원동력
『에티카』 제3부는 감정론으로, 스피노자 철학의 백미다. 그 핵심에 코나투스(conatus) 개념이 있다. 제3부 정리6은 "각각의 사물은 자기 안에 있는 한,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선언한다. 이 자기 보존 노력, 존재하려는 힘이 바로 코나투스다.
인간에게서 이 코나투스는 욕망(cupiditas)으로 나타난다. 욕망은 인간 본질 그 자체다. 스피노자는 욕망을 죄악이나 결핍으로 보는 금욕주의 전통을 거부한다. 욕망은 우리를 움직이는 생명력이며, 존재의 긍정이다. 문제는 욕망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욕망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제3부에서 스피노자는 기쁨(laetitia), 슬픔(tristitia), 욕망이라는 세 가지 기본 감정으로부터 시작해 사랑, 미움, 희망, 두려움, 질투, 자부심 등 수십 가지 감정을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각 감정은 우리의 활동 능력을 증대시키거나 감소시킨다. SNS 좋아요에 일희일비하고,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콘텐츠에 시간을 빼앗기며,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불안과 질투를 느끼는 현대인의 감정 구조를 스피노자는 350년 전에 이미 해부했다.
능동과 수동: 감정의 예속에서 자유로
제4부의 주제는 '인간의 예속'이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대부분 외부 원인에 의해 결정되는 수동감정(passio)에 사로잡혀 산다고 본다. 타인의 시선, 사회적 편견, 우연한 경험들이 우리의 감정을 좌우하고, 우리는 그 원인도 모른 채 기뻐하고 슬퍼하며 욕망한다. 이것이 예속 상태다.
하지만 우리가 감정의 원인을 명석판명하게 인식할 때, 수동감정은 능동감정(actio)으로 전환된다. 능동감정은 우리 본성의 필연성만으로 이해될 수 있는 감정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를 무시했을 때 분노하는 것은 수동감정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내가 왜 상처받았는지를 이해하고, 나아가 그것이 자연의 필연적 인과 사슬의 일부임을 인식할 때, 분노는 수그러들고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제5부 정리3은 "수동감정은 우리가 그것의 명석판명한 관념을 형성하자마자 수동감정이기를 그친다"고 말한다.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현대의 서비스직 노동자, 언제나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플랫폼 경제의 1인 사업자에게 이 통찰은 무엇을 의미할까. 감정을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정확히 이해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원의 상 아래서: 시간을 넘어선 인식
제5부는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를 다룬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최고의 인식은 제3종 인식, 즉 직관지(scientia intuitiva)다. 이것은 신의 무한한 본질에 대한 적합한 관념으로부터 사물의 본질에 대한 적합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인식이다.
제5부 정리29 주석에서 등장하는 "영원의 상 아래서(sub specie aeternitatis)"라는 표현은 스피노자 철학의 정점을 보여준다. 우리가 사물을 영원의 상 아래서 파악할 때, 즉 시간적 연속이 아니라 필연적 진리로서 파악할 때, 우리는 신의 관점에서 세계를 본다. 이때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시적 쾌락에 휘둘리지 않으며, 참된 자유와 지복(beatitudo)에 이른다.
정리67은 "자유로운 인간은 죽음에 대해 가장 적게 생각한다. 그의 지혜는 죽음에 대한 명상이 아니라 삶에 대한 명상이다"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단순한 낙관주의가 아니다. 죽음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자연의 필연적 질서로 이해할 때, 우리는 죽음에 대한 비합리적 공포로부터 해방되어 현재의 삶을 긍정할 수 있다.
신에 대한 지적 사랑: 참된 행복의 길
『에티카』는 "신에 대한 지적 사랑(amor Dei intellectualis)"이라는 개념으로 절정에 이른다. 이것은 맹목적 믿음이나 경건한 복종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이성으로 인식함으로써 얻는 최고의 기쁨이다. 제5부 정리32 보충2는 "제3종 인식으로부터 정신의 최고 만족(acquiescentia)이 생긴다"고 말한다.
스피노자에게 행복은 외부 대상을 소유하거나 타인에게 인정받는 데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본성을 온전히 실현하고, 우리의 활동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자연의 필연성을 이해함으로써 얻는 내적 평온이다. 소비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내고, SNS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불안을 증폭시키는 시대에, 스피노자의 행복론은 근본적 대안을 제시한다.
정리42는 "지복은 덕의 보상이 아니라 덕 그 자체"라고 선언한다. 우리는 보상을 기대해서 선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선하게 사는 것, 즉 우리의 본성을 온전히 실현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결과와 성과로 평가받는 현대 사회에서 과정 그 자체의 가치를 긍정하는 이 통찰은 얼마나 급진적인가.
현재성: 들뢰즈, 네그리, 그리고 21세기의 스피노자
『에티카』는 출판 당시 무신론으로 금서 목록에 올랐지만, 18세기 계몽주의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19세기 독일 관념론을 거쳐 20세기 후반 질 들뢰즈, 안토니오 네그리 같은 사상가들에 의해 부활했다. 들뢰즈는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1968)에서 스피노자를 차이와 생성의 철학자로 재해석했고, 네그리는 『야생의 아노말리』(1981)에서 스피노자를 구성적 권력의 사상가로 읽었다.
21세기 들어 스피노자는 더욱 현재적이다. 정동 이론(affect theory)은 스피노자의 감정론에서 출발해 신자유주의 시대의 감정 정치를 분석한다. 생태철학은 신 즉 자연이라는 일원론에서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설 실마리를 찾는다. 플랫폼 자본주의 비판은 코나투스 개념으로 알고리즘에 의해 조작되는 욕망의 메커니즘을 해부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며, 바이러스를 포함한 모든 존재가 하나의 자연 안에서 상호작용한다는 스피노자적 통찰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는 더 이상 자연을 정복과 착취의 대상으로 볼 수 없다. 우리 자신이 자연이며, 자연의 법칙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어려운 책, 그러나 필독서
『에티카』는 분명 어려운 책이다. 기하학적 형식은 수학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주눅들게 하고, 실체, 양태 같은 형이상학 용어들은 낯설다. 하지만 이 어려움은 넘을 만한 가치가 있다. 스피노자는 우리에게 세계를 보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감정을 이해하는 혁명적 관점을,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실천적 경로를 제시한다.
『에티카』는 단순히 읽어야 할 고전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생생한 철학이다. 좋아요와 팔로워 수에 자존감이 흔들리는가? 스피노자는 우리의 본질적 가치는 외부 평가와 무관하다고 말한다. 끊임없는 욕망 충족에도 만족을 모르는가? 스피노자는 참된 기쁨은 소유가 아니라 인식에서 온다고 가르친다. 죽음과 불확실성 앞에서 불안한가? 스피노자는 영원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라고 권한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렌즈 연마공이 남긴 이 기하학적 명상은 21세기 디지털 자본주의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에게 여전히, 아니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나침반이다.
주요인용문
실체란 그 자체 안에 있으며 그 자체에 의해 파악되는 것, 즉 그 개념을 형성하는 데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제1부 정의3)
신 이외의 어떤 실체도 있을 수 없고 파악될 수 없다. (제1부 정리14)
신은 만물의 내재적 원인이지 초월적 원인이 아니다. (제1부 정리18)
사유하는 실체와 연장하는 실체는 하나이며 동일한 실체인데, 이것이 때로는 이 속성 아래서, 때로는 저 속성 아래서 파악될 뿐이다. (제2부 정리7 주석)
각각의 사물은 자기 안에 있는 한,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제3부 정리6)
욕망은 인간의 본질 그 자체다. (제3부 감정의 정의1)
수동감정은 우리가 그것의 명석판명한 관념을 형성하자마자 수동감정이기를 그친다. (제5부 정리3)
자유로운 인간은 죽음에 대해 가장 적게 생각한다. 그의 지혜는 죽음에 대한 명상이 아니라 삶에 대한 명상이다. (제4부 정리67)
정신이 영원의 상 아래서 사물을 파악하는 한, 그것은 필연성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제5부 정리29)
제3종 인식으로부터 정신의 최고 만족이 생긴다. (제5부 정리32 보충2)
지복은 덕의 보상이 아니라 덕 그 자체다. (제5부 정리42)
© 2025 아트앤스터디 + claude.ai, CC BY 4.0
이 저작물은 카피레프트(Copyleft) 정신을 따르며, 출처 표시만 하면 누구나 복제, 배포가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