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 1976~)는 『사피엔스』(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호모 데우스』(Homo Deus: A Brief History of Tomorrow),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을 통해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거대한 서사를 제시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의 역사학자인 하라리는 특히 『호모 데우스』에서 인류가 어떻게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위험과 가능성이 공존하는지를 예리하게 분석했다.
인류는 무엇을 원하는가
하라리는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세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고 말한다. 기근, 역병, 전쟁이다.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이 세 가지 재앙과 싸우며 살아왔다.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하면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고, 20세기 초까지도 전쟁은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물론 여전히 기아와 질병, 분쟁은 존재하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통제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조차도 중세의 흑사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치명률을 보였다.
그렇다면 인류는 이제 무엇을 추구하는가? 하라리는 세 가지 새로운 목표를 제시한다. 불멸(immortality), 행복(happiness), 신성(divinity)이다. 현대 과학은 노화를 질병으로 간주하고 치료하려 한다.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들은 수백억 원을 투자해 노화 방지 연구를 진행한다. 심리학과 뇌과학은 행복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려 하고, 생명공학과 인공지능은 인간의 능력을 근본적으로 확장시키려 한다. 이것이 바로 '호모 데우스', 즉 신이 된 인간의 프로젝트다.
데이터교라는 새로운 종교
하라리가 제시하는 가장 흥미로운 개념 중 하나는 '데이터교'(Dataism)다. 과거 인류는 신을 믿었고, 근대 이후에는 인간 이성과 자유의지를 믿었다. 하지만 21세기의 새로운 종교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다. 데이터교의 핵심 명제는 간단하다. "우주는 데이터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현상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정도로 결정된다."
이것은 단순한 철학적 사변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데이터교의 신자가 되어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수면의 질은 어땠는지, 오늘 날씨는 어떤지, 출근길 교통 상황은 어떤지 앱이 알려준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면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추천을 받는다. 퇴근 후 넷플릭스를 켜면 알고리즘이 선별한 콘텐츠가 기다린다. 주말에 무엇을 할지, 누구를 만날지, 심지어 누구와 연애할지까지 앱이 조언한다.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의 느낌이나 직관을 신뢰하지 않는다. 데이터가 말해주는 것을 믿는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의존이 단순한 편의성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알고리즘은 실제로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안다. 스포티파이는 당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음악 취향을 파악한다. 유튜브는 당신이 무엇에 관심 있는지 당신보다 먼저 안다. 아마존은 당신이 필요로 할 물건을 당신이 깨닫기 전에 추천한다. 하라리는 이것을 '외부 알고리즘이 내부 알고리즘을 해킹하는 과정'이라고 부른다.
자유의지는 환상인가
데이터교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현대 생명과학이 제시하는 인간관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여겨졌다. 내가 오늘 점심에 파스타를 먹을지 샐러드를 먹을지는 순전히 나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하지만 뇌과학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모든 선택은 뉴런의 전기화학적 반응의 결과다. 당신이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느끼는 순간, 실제로는 뇌에서 이미 0.5초 전에 그 결정이 내려져 있었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하라리는 인간을 '알고리즘의 집합'으로 본다.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생화학적 알고리즘들이 우리의 욕망, 감정, 선택을 결정한다. 달콤한 것을 보면 먹고 싶어지는 것은 당신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생존 확률을 높이도록 설계된 알고리즘의 작동이다. 짝을 선택할 때 특정 신체적 특징에 끌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신이 자유롭다고 믿지만, 실은 유전자와 호르몬, 뉴런의 지배를 받는다.
이러한 관점이 받아들여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간의 느낌과 선택이 알고리즘의 산물에 불과하다면, 더 정교한 외부 알고리즘이 그것을 대체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그 과정을 목격하고 있다. 구글은 당신이 무엇을 검색할지 예측한다. 페이스북은 당신이 어떤 게시물에 반응할지 안다. 틱톡은 당신이 어떤 영상에 중독될지 계산한다. 그리고 이들은 점점 더 정확해진다.
인간의 업그레이드와 계급의 분화
하라리가 경고하는 가장 심각한 미래는 인류의 분화다. 21세기에는 생명공학,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유전자 편집 기술을 통해 인간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유한 엘리트들은 자신의 자녀를 유전자 수준에서 개량하고, 두뇌에 칩을 이식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치료를 받을 것이다. 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그 결과는 단순한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선다. 생물학적으로 다른 종으로 분화될 수 있다. 상위 1%는 더 똑똑하고,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며, 심지어 더 행복한 '초인류'가 된다. 나머지는 쓸모없는 계급(useless class)으로 전락한다.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일자리를 대체하면서, 경제적 가치도 정치적 영향력도 없는 거대한 집단이 생겨난다. 20세기의 대중은 경제적으로는 착취당했지만 적어도 필요한 존재였다. 공장 노동자도, 농민도, 병사도 시스템 유지에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21세기의 무용계급은 아예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
이미 그 조짐은 보인다. 플랫폼 경제에서 승자는 모든 것을 가져가고, 나머지는 불안정 노동과 긱 이코노미에 내몰린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상위 1%가 전체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극소수가 광고 시장을 장악한다. 이것은 디지털 시대의 '승자독식' 구조다. 미래에는 이러한 양극화가 생물학적 차원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의미의 문제
하라리는 기술적 진보가 가져올 또 다른 위기로 의미의 상실을 지적한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은 신화와 종교, 이데올로기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았다. 기독교인은 신의 계획에 참여한다고 믿었고, 공산주의자는 역사 발전에 기여한다고 여겼으며, 자유주의자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확장하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1세기의 데이터교는 어떤 의미도 제공하지 않는다. 데이터 흐름에 기여하는 것이 선이라고? 알고리즘을 최적화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이것은 인간에게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인공지능이 의미의 영역까지 침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예술, 철학, 종교가 인간만의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기계는 계산은 할 수 있어도 창조는 못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AI는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고, 소설을 쓴다. 2024년 출시된 생성형 AI는 인간 수준의 창작물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인간의 고유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하라리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알고리즘이 모든 것을 더 잘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가상현실 게임에 빠져 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의미를 창조할 것인가?
21세기를 위한 선택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하라리는 좀 더 구체적인 현실 문제들을 다룬다. 가짜 뉴스와 진실의 문제, 테러와 전쟁의 새로운 양상, 문명의 충돌과 이민 문제, 교육의 미래 등이다. 그의 진단은 일관되다. 20세기의 해법으로는 21세기의 문제를 풀 수 없다. 민족국가, 자유시장, 민주주의라는 전통적인 제도들은 글로벌 네트워크와 인공지능의 시대에 작동하지 않는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인가? 하라리는 생명공학 혁명, 생태 붕괴, 핵전쟁, 기술적 혼란을 꼽는다. 이 네 가지는 모두 글로벌 협력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포퓰리즘이 부상하고, 민족주의가 강화되며, 국제 협력은 약화된다. 브렉시트, 트럼프의 당선, 각국의 반이민 정서는 모두 같은 맥락이다. 21세기의 도전은 글로벌한데, 우리의 대응은 로컬로 퇴행하고 있다.
하라리는 교육에서 해법을 찾는다. 21세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정보를 다루는 능력이다. 사실을 암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구글이 더 잘한다. 중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 커뮤니케이션, 협력, 창의성, 그리고 무엇보다 유연성이다. 한 가지 직업을 배워 평생 하는 시대는 끝났다. 인생에서 여러 번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30세에 배운 기술이 40세에는 쓸모없어진다. 50세에 또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당신을 해킹하기 전에, 당신 스스로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 당신의 진짜 욕구는 무엇인가? 광고가 주입한 욕망은 무엇인가? SNS에서 받은 '좋아요'가 진짜 만족을 주는가? 하라리는 명상과 성찰을 강조한다. 그는 매년 장기간 명상 수행을 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종교적 실천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관찰하는 과학적 방법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낙관도 비관도 아닌 현실주의
하라리는 낙관론자도 비관론자도 아니다. 그는 가능성을 제시할 뿐이다. 인류는 신이 될 수도 있고, 멸종할 수도 있다.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도 있고, 디스토피아에 빠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어떻게 개발하고 누가 통제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인공지능은 인류를 해방시킬 수도 있고, 새로운 형태의 독재를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생명공학은 질병을 퇴치할 수도 있고, 끔찍한 생물학적 불평등을 만들 수도 있다.
하라리의 저작이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부 팔린 이유는 명확하다. 그는 복잡한 역사와 과학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낸다. 추상적인 철학 논쟁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던지는 질문이 바로 우리 시대의 질문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21세기를 사는 모든 사람이 직면한 질문들이다.
하라리의 전망이 100% 맞을 필요는 없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기술이 인간을 능가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가치를 지킬 것인가? 이것은 정부와 전문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마트폰을 쓰고, SNS를 하고, AI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의 문제다. 그리고 그 답은 아직 열려 있다.
주요인용문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종이다. 우리는 자연을 정복했고, 식량 생산을 늘렸으며, 도시를 건설했고, 제국을 세웠다. 하지만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알고리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게 되면, 사회와 시장이 나를 조종할 수 있게 되고, 나는 점차 나 자신을 알 수 없게 된다.
21세기는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낼 것이다. 무용계급이다. 경제적, 정치적, 심지어 예술적 가치가 전혀 없는 사람들 말이다.
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힘이다. 우리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권력이 무엇을 만들어낼지 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기술은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 낯선 것을 배우는 능력, 그리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인간은 이야기를 말하는 동물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믿는다. 돈, 신, 국가, 인권 - 이 모든 것은 상상 속의 질서다.
자유의지는 환상이다. 우리가 자유롭다고 느낄 때조차, 실은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는다.
21세기 최대의 의문은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이 될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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