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은 독일 태생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로, 프로이트 정신분석과 마르크스 사회이론을 결합하여 현대 사회의 인간 조건을 탐구했다. 1941년 미국에서 출간된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는 나치즘의 등장이라는 충격적 현실 앞에서 인간과 자유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사고한 저작이다. 이 책은 단순히 파시즘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민주사회에서 자유를 획득한 인간이 왜 오히려 자유로부터 도망치려 하는지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했다.
시대적 배경과 집필 동기
1930년대 후반 유럽에서 전개된 파시즘의 물결은 계몽주의 이후 인류가 쌓아온 이성과 자유의 성과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독재자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은 당대 지식인들에게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왜 사람들은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권위주의 체제에 복종하려 했는가?
프롬은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34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고국에서 벌어진 비극을 단순히 광신적 선동가나 경제 위기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근대화 과정 자체가 인간에게 가져온 심리적 변화에 주목했다. 중세 봉건사회에서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은 개인에게 전례 없는 자유를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견딜 수 없는 고독과 불안도 함께 가져왔다는 것이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구분
프롬은 자유를 두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는 '~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즉 외부의 구속이나 강제로부터 벗어나는 소극적 자유다. 중세 농노가 영주의 지배에서 해방되고, 종교개혁으로 교회의 권위에서 벗어나며, 시민혁명으로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것이 이에 해당한다. 근대인은 이런 소극적 자유를 획득했다.
그러나 문제는 둘째 자유, 즉 '~을 위한 자유'(freedom to), 적극적 자유를 실현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적극적 자유란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고, 자율적으로 사고하며,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자유다. 오늘날로 치면, 학교와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립한 20대 청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방황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외부의 구속은 사라졌지만,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근대화와 개인의 탄생
중세 봉건사회에서 개인은 출생과 동시에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결정되었다. 농노의 아들은 농노가 되고, 기사의 아들은 기사가 되었다. 이는 억압적이었지만 동시에 안정감을 주었다. 개인은 공동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르네상스, 종교개혁, 자본주의의 발달은 이런 구조를 해체했다. 개인은 신분제에서 해방되었고,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개인을 공동체로부터 고립시켰다. 더 이상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전통이나 공동체가 알려주지 않았다.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이자 책임이 되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SNS에서 수백 명의 '친구'와 연결되어 있지만 진정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지만,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연애와 결혼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그만큼 선택의 책임도 무겁다.
자유의 무게와 고독의 공포
프롬은 이렇게 획득된 자유가 인간에게 양면적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다. 자유는 개성의 발달과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동시에 고독과 무력감, 불안을 가져온다. 중세인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안정감을 느꼈지만, 근대인은 광대한 우주 속의 고립된 원자처럼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책임지는 것이 너무나 버겁다. 마치 갑자기 부모 없이 혼자 살게 된 아이처럼, 자유는 해방감보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가져온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각자가 자율적으로 판단해 행동해야 할 때 오히려 정부의 강력한 지침을 원했던 심리와 비슷하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 세 가지 메커니즘
프롬은 자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세 가지 주요 방식을 제시했다.
첫째는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다. 이는 자신을 더 강한 힘에 복종시킴으로써 자아를 포기하는 것이다. 개인은 독재자나 지도자, 국가나 신과 같은 외부의 권위와 일체감을 느끼면서 자신의 고립과 무력감을 극복하려 한다. 나치 치하의 독일인들이 히틀러에게 열광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현대 사회에서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자신의 판단을 포기하고 지도자의 판단에 복종함으로써 결정의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둘째는 파괴성(destructiveness)다. 견딜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는 개인은 외부 세계를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 한다. 자신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면 더 이상 무력하거나 고립되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현대의 테러리즘, 온라인 공간의 극단적 혐오 표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구축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을 공격함으로써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다.
셋째는 자동인형적 순응(automaton conformity)이다. 이는 가장 교묘하고 현대적인 도피 방식이다. 개인은 자신의 개성을 포기하고 문화가 제공하는 인간형을 완전히 받아들인다. 마치 보호색을 띠는 동물처럼, 주변 환경과 완전히 동일해짐으로써 자신의 정체성 문제를 '해결'한다.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한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순응은 매우 광범위하다. 유행하는 패션, 인기 있는 취미, 표준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따르는 것이다. 대학생이 모두 같은 스펙을 쌓으려 하고, 직장인이 모두 비슷한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부모들이 모두 같은 육아법을 추구하는 현상을 생각해보라. SNS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을 만한 삶을 연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원할 만한 것을 추구한다.
현대 민주사회의 함정
프롬의 통찰이 예리한 것은 이런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독재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도 자동인형적 순응을 조장한다.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중매체와 광고, 교육 시스템이 표준화된 인간형을 생산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사람들을 소비자로 만들고, 광고는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주입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시장이 제공하는 한정된 옵션 안에서 '선택'할 뿐이다. 배달앱에서 수백 개의 음식점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것이 진정한 자유일까? 오히려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결정 장애를 겪거나,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대로 주문하지 않는가?
진정한 자유를 향하여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자유로의 전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진정한 자유는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활동을 통해서만 실현된다. 이는 사랑, 노동, 사고의 자발적 표현을 의미한다.
사랑은 타인과의 진정한 결합이다. 자신을 포기하지도, 타인을 지배하지도 않으면서 타인과 연결되는 것이다. 현대인이 느끼는 고립감은 진정한 사랑의 경험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 여기서 사랑은 단순한 낭만적 감정이 아니라, 타인의 성장과 행복을 돌보는 생산적 관계다.
노동은 창조적 활동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종종 소외된 활동이 되었다. 노동자는 자신이 만드는 제품과 분리되고, 노동 과정을 통제하지 못한다. 그러나 창조적이고 의미 있는 노동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고 세계와 능동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다.
사고는 비판적이고 독립적인 이성의 사용이다. 여론이나 권위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이다.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디지털 시대에 비판적 사고는 더욱 중요해졌다.
21세기, 새로운 자유로부터의 도피
프롬이 이 책을 쓴 지 80여 년이 지났지만, 그의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어쩌면 더욱 절실해졌다. 현대인은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선택의 자유를 누리지만, 동시에 더욱 깊은 고립감과 불안에 시달린다.
소셜미디어는 우리를 연결하지만 동시에 고립시킨다. 끊임없이 타인의 '완벽한' 삶과 비교하며 자신을 검열한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를 필터 버블 속에 가둔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복잡한 현실을 사유하기보다 진영 논리에 안주한다. 이 모든 것이 자동인형적 순응의 현대판이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우리를 끊임없이 일하게 만든다. 프리랜서, 긱 워커,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불안정한 노동 조건과 자기착취가 만연하다. '라이프스타일'로 포장된 이런 노동 형태는 개인에게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환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구조적 강제다.
권위주의의 부활도 목격된다. 세계 곳곳에서 강력한 지도자를 갈망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민주주의가 후퇴한다. 복잡한 사회 문제에 단순한 해답을 제시하는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득세한다. 경제적 불안정과 사회적 변화에 직면한 사람들이 자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권위에 복종하려는 것이다.
맺음말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자유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자유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자유는 단순히 외부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고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는 능력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유혹에 직면한다. 알고리즘에 선택을 맡기고, 여론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구성하려는 유혹 말이다. 프롬의 책은 이런 유혹에 저항하고 진정한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함을 일깨운다.
자유는 두려운 것이지만, 도피할 대상이 아니라 실현해야 할 가치다. 고립과 불안을 견디면서도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사랑하며, 창조적으로 일하는 것. 이것이 프롬이 제시한 진정한 자유로 가는 길이다. 80년 전에 쓰인 이 책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혀야 하는 이유다.
주요인용문
"근대인의 역사는 교회나 국가의 외적 권위로부터의 해방의 역사이다. 그런데 개인이 이러한 외적 권위로부터 해방되는 동안, 그는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권위를 부여받지 못했다."
"자유는 인간에게 독립과 합리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그를 고립시키고 그로 하여금 불안과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권위주의적 성격은 자아의 독립성을 포기함으로써 고독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러한 성격의 사람은 자신을 외부의 힘과 융합시킴으로써 자신이 잃어버린 힘을 획득하고자 한다."
"자동인형적 순응에서 개인은 자기 자신이기를 그만두고, 그의 문화적 유형이 그에게 제공하는 성격을 완전히 채택하며, 따라서 모든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같아지고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바와 정확히 같아진다."
"현대인은 자유롭지만, 이 자유는 그에게 독립과 합리성을 가져다주었을 뿐, 그를 고립시키고 그로 하여금 불안과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적극적 자유는 개인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자아실현에 있다. 자유는 모든 외부 세계와의 일차적 유대를 잃어버린 고립된 개인이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및 타인과의 새로운 관계에서 인간 자신을 실현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유에 대한 욕구뿐만 아니라 복종에 대한 욕구도 가지고 있다. 그는 독립에 대한 소망뿐만 아니라 제약받고 싶어 하는 소망도 가지고 있다."
"권위에 대한 열광적 추종은 개인의 자아를 포기함으로써 얻어지는 해결책이다. 이것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이다."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인간의 진정한 본성과는 거리가 먼, 사회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진정한 자유는 사랑하고 생각하고 일하는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행위에 있다. 이것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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