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는 20세기 가장 논쟁적인 법학자이자 정치철학자였다. 독일 베스트팔렌주 플레텐베르크의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베를린·뮌헨·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며,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본과 베를린에서 헌법학 교수로 활동했다. 그의 대표 저작 『정치적인 것의 개념』(Der Begriff des Politischen)은 1927년 논문 형태로 처음 발표된 뒤, 1932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한국어 번역은 김효전·정태호 공역으로 법문사(1995)와 살림(2012)에서 나왔다. 100쪽 남짓한 이 짧은 책은, 그러나 정치철학사에서 가장 오래 논쟁의 대상이 된 텍스트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왜 지금 칼 슈미트인가
슈미트라는 이름 앞에는 항상 불편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자 나치당에 입당했고, 국가사회주의 독일법률가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나치 정권의 법적 정당화에 깊이 관여했다. 전후에는 뉘른베르크 재판 과정에서 억류되었다가 풀려났고, 고향 플레텐베르크에서 은둔하며 97세까지 살았다. 탈나치화에 협력하기를 끝내 거부한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슈미트의 저작들은 21세기에 오히려 더 열렬히 읽히고 있다.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동시에 영감을 주는 드문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조르조 아감벤은 슈미트의 '예외상태' 개념을 가져와 현대 민주주의의 숨겨진 폭력을 폭로했고, 벨기에의 샹탈 무페는 슈미트의 적대 개념을 전유하여 '경합적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민주주의론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2024년 12·3 사태 이후 슈미트의 '예외상태'와 '결단주의'가 내란의 사상적 배경을 설명하는 틀로 소환된 바 있다.
슈미트를 읽는 이유는 그의 이론을 추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스스로에게 감추고 있는 것, 즉 정치의 본질에 내재한 갈등과 적대의 차원을 직시하기 위해서이다. 마치 의사가 질병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치료할 수 있듯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사람일수록 민주주의의 취약점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슈미트는 바로 그 취약점을 가장 날카롭게 드러낸 사상가였다.
적과 친구의 구별 — 정치의 고유한 기준
이 책의 첫 문장은 유명하다. "국가의 개념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전제한다." 대부분의 정치학은 국가에서 출발하여 정치를 설명한다. 슈미트는 반대로 간다. 정치적인 것이 먼저 있고, 국가는 그로부터 파생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슈미트의 답은 단순하면서도 충격적이다. 도덕의 고유한 구별이 선과 악이고, 미학의 고유한 구별이 아름다움과 추함이듯이, 정치의 고유한 구별은 '친구와 적(Freund und Feind)'의 구별이라는 것이다. 정치적 행위와 동기를 환원할 수 있는 궁극적인 구별 기준이 바로 이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슈미트가 말하는 '적'은 일상어에서의 적과 다르다. 개인적으로 미워하는 사적인 원수(라틴어로 inimicus)가 아니라, 공적인 적(hostis)이다. 슈미트는 이 구별을 위해 성경의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구절까지 끌어온다. 예수가 사랑하라고 한 것은 사적 원수(inimicus)이지, 공적 적(hostis)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적 적은 도덕적으로 악한 존재도 아니고, 미학적으로 추한 존재도 아니며, 경제적 경쟁자도 아니다. 그는 단지 실존적으로 다른 타자, 낯선 자(der Fremde)일 뿐이다.
이것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보면 이렇다. 우리는 SNS에서 끊임없이 '편 가르기'를 한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의 게시물에 분노하고, 같은 편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다. 슈미트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친구와 적을 구별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이 곧 정치적인 것의 본질이라고. 다만 SNS에서의 편 가르기와 슈미트가 말하는 정치적 적대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슈미트의 적대는 궁극적으로 물리적 충돌의 가능성, 즉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전제한다는 점이다.
정치는 고유한 영역이 아니라 강도의 문제다
슈미트의 정치 개념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정치가 경제·종교·문화처럼 독자적인 내용 영역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것은 특정한 주제나 영역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 집단의 결합과 분리의 '강도(Intensität)'를 가리키는 관계론적 개념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종교 문제가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달으면,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종교 분쟁이 아니라 정치적 갈등이 된다. 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이 극한에 이르면, 그것도 정치적인 것으로 전화된다. 역사 속에서 종교전쟁, 계급투쟁, 민족 갈등이 그러했다. 어떤 대립이든 친구와 적이라는 궁극적 집단 구분에 도달할 만큼 강렬해지면,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이 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 흥미롭다. 기후 위기는 원래 과학적 문제였지만, 찬반 진영이 갈라지면서 정치적 문제가 되었다. 성소수자의 권리는 한때 사적인 영역의 일이었지만, 사회적 대립이 격화되면서 고도로 정치적인 쟁점이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마스크 착용 여부마저 정치적 구분선이 되었던 경험을 떠올려보라. 슈미트의 관점에서 보면, 이 모든 현상은 비정치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으로 전화되는 과정이었다.
자유주의 비판 — 정치를 회피하는 정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후반부는 자유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 슈미트에 따르면 자유주의는 정치적인 것의 핵심, 즉 적대를 체계적으로 부인하는 사상이다. 자유주의는 정치적 갈등을 경제적 경쟁이나 윤리적 토론으로 환원함으로써, 정치의 고유한 차원을 제거하려 한다.
자유주의적 세계관에서 적은 경쟁자(Konkurrent)로, 전쟁은 무역 분쟁으로, 국가는 시장 질서의 관리자로 바뀐다. 모든 것이 토론과 타협, 절차와 규범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슈미트는 이것이 현실에 대한 위험한 눈가림이라고 보았다. 적대를 부인한다고 적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적대를 부인함으로써, 적이 나타났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슈미트의 진단이었다.
이 비판은 오늘날에도 날카롭다. '대화와 타협으로 모든 갈등을 풀 수 있다'는 낙관론이 실패하는 순간들을 우리는 반복적으로 목격하고 있다. 국제 무대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경제적 상호의존이 평화를 보장할 것이라는 자유주의적 믿음이 얼마나 허약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슈미트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적의 존재를 부정한 결과, 적이 실제로 나타났을 때 당신들은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고.
그러나 슈미트의 자유주의 비판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가 비판한 '자유주의의 무능'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이라는 구체적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고, 그 비판의 논리적 귀결은 의회민주주의의 파괴와 독재의 정당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악성 — 정치적 인간학의 전제
슈미트의 정치 개념은 특정한 인간관 위에 서 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진정한 정치이론은 인간이 악하다고 전제한다." 여기서 '악하다'는 것은 도덕적 판단이라기보다, 인간이 '위험한(gefährlich)' 존재라는 인류학적 진단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이므로, 정치라는 영역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이런 인간관은 홉스(Thomas Hobbes)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연상시키고, 기독교 신학의 원죄론과도 맞닿아 있다. 슈미트는 가톨릭 신앙의 인류학적 비관주의를 자신의 정치이론의 기초로 삼았다. 인간이 본래 선하다면 정치는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이므로, 적과 친구를 구별하고 국가라는 정치적 통일체를 유지하는 일은 영원히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이 점에서 슈미트는 계몽주의의 낙관적 인간관에 정면으로 맞선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가 인간의 본래적 선함을 주장하며 사회계약을 통한 진보의 가능성을 열었다면, 슈미트는 그런 낙관주의야말로 정치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보았다. 평화롭고 안전한 시대에 사람들은 낙관적 인간관을 선호하며 정치적 갈등의 가능성을 망각한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이 되면, 인간의 위험한 본성이 다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주권과 예외상태 — 누가 결정하는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슈미트의 다른 핵심 저작인 『정치신학』(Politische Theologie, 1922)의 주권 개념을 함께 읽어야 한다. 『정치신학』의 첫 문장은 더욱 유명하다 —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대해 결정하는 자이다(Souverän ist, wer über den Ausnahmezustand entscheidet)."
평상시에는 법과 제도가 사회를 관리한다. 그러나 기존의 법 체계로는 해결할 수 없는 위기, 즉 '예외상태'가 발생하면 어떻게 되는가? 이 순간 누군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결단을 내리는 자가 바로 주권자이다. 법실증주의는 모든 것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된다고 전제하지만, 슈미트는 법 자체가 작동을 멈추는 상황이 있다고 보았다. 예외상태는 법의 바깥에 있지만 동시에 법에 속하는 역설적 영역이다.
이 개념이 위험한 것은 분명하다. 통치자가 스스로 예외상태를 선포하고 헌법 위에 군림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이마르 헌법 제48조의 긴급권 조항은 슈미트의 이론적 지원 아래 남용되었고, 히틀러의 수권법(Ermächtigungsgesetz)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현대 한국의 맥락에서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의회를 무력화하려 한 시도는 슈미트적 '예외상태'의 논리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탈정치화와 중립화의 시대
슈미트는 근대 유럽의 역사를 '탈정치화(Entpolitisierung)'와 '중립화(Neutralisierung)'의 과정으로 읽었다. 16세기의 신학적 시대에서 17세기의 형이상학적 시대로, 다시 18세기의 인도주의적·도덕적 시대로, 그리고 19세기의 경제적 시대로 이행하면서, 유럽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중립적인 영역으로 이동해왔다. 종교적 대립이 격화되자 형이상학으로, 형이상학적 논쟁이 격화되자 도덕으로, 도덕적 갈등이 심해지자 경제로 도피한 것이다.
슈미트가 보기에 20세기는 기술의 시대였다. 기술은 가장 중립적인 영역처럼 보인다. 자동차와 비행기, 라디오와 전화는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러나 슈미트는 기술의 중립성이야말로 가장 큰 환상이라고 경고했다. 기술은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평화의 도구도 전쟁의 무기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립적 영역으로의 도피는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단지 갈등의 장소를 옮길 뿐이다.
이 분석은 디지털 기술의 시대에 놀라울 정도로 적실하다. 인터넷은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이라는 중립적 이상 위에 건설되었지만, 지금 그것은 가짜뉴스의 전쟁터이자 정치적 양극화의 엔진이 되었다. AI 기술은 그 자체로 중립적이지만, 그것이 감시에 쓰이느냐 해방에 쓰이느냐는 고도로 정치적인 문제이다. 기술적 중립성의 신화가 정치적 갈등을 은폐한다는 슈미트의 진단은, 실리콘밸리의 '기술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낙관론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비판이 될 수 있다.
인류 개념의 정치적 오용
슈미트의 가장 도발적인 주장 가운데 하나는 '인류(Menschheit)'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의 말을 변용하여 "'인류'를 내세우는 자는 속이려 하는 것이다"라고 썼다. 인류 전체를 아우르는 보편적 정치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인류'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전쟁은 오히려 가장 비인간적인 전쟁이 된다는 것이 슈미트의 논지였다.
왜 그런가? 적을 '인류의 적'으로 규정하면, 그 적에게서 인간의 자격 자체를 박탈하게 되기 때문이다. 적이 단순히 다른 정치적 집단의 구성원이 아니라 '인간 이하의 존재'로 선언되면, 그에 대한 폭력에는 어떠한 제한도 없어진다. 슈미트가 보기에, 전통적인 국가 간 전쟁에서는 적도 '정당한 적(justus hostis)'으로 인정되었고, 전쟁에도 규칙이 있었다. 그러나 '인도주의적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수행되는 전쟁에서는, 적이 인간의 범주에서 배제되므로 폭력이 무제한적이 된다.
이 통찰은 탈냉전 시대의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도주의적 개입'이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된 군사 행동들이, 실제로는 국제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새로운 형태의 무제한적 폭력을 낳았다는 비판은 슈미트의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물론 이것이 인도주의적 개입 자체를 부정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보편적 인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정치적 행위에도 권력과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오 스트라우스의 비판 — 자유주의를 넘어서지 못한 슈미트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가장 유명한 비판은 유대계 독일 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 1899~1973)에게서 나왔다. 1932년에 작성된 스트라우스의 주해는 한국어판에도 수록되어 있다. 스트라우스의 핵심 논점은 이것이었다 — 슈미트는 자유주의를 비판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유주의의 지평 안에 머물러 있다.
스트라우스에 따르면 슈미트의 적대 개념은 자유주의가 부정하는 것(갈등, 위험, 인간의 악성)을 긍정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부정의 부정은 아직 독립적인 긍정이 아니다. 슈미트는 자유주의의 타도를 외치면서도, 자유주의 없이는 자기 이론을 전개할 수 없는 역설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 '친구와 적의 구별'이라는 순수한 형식에 머물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갖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 스트라우스의 진단이었다.
이 비판은 슈미트 해석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1927년 초판과 1932년 개정판 사이의 변화가 스트라우스의 비판에 대한 응답이었다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하인리히 마이어(Heinrich Meier)는 슈미트와 스트라우스 사이의 '숨겨진 대화'를 통해 두 사상가의 관계를 재구성하기도 했다.
슈미트의 그림자 — 나치 협력과 사상의 윤리
슈미트의 사상을 다루면서 그의 나치 협력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다. 1933년 5월 나치당에 입당한 슈미트는 프로이센 국가평의회 위원, 국가사회주의 독일법률가협회 회장 등 핵심 직책을 맡았다. 1934년에는 '지도자가 법을 수호한다(Der Führer schützt das Recht)'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장검의 밤' 학살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1936년 나치 친위대(SS)의 견제로 공직에서 밀려났으나, 헤르만 괴링의 비호 아래 베를린 대학 교수직은 유지했다.
슈미트의 나치 협력이 단순한 기회주의였는지, 아니면 그의 사상 체계에 내재한 논리적 귀결이었는지는 지금도 논쟁 중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슈미트의 바이마르 시기 저작들이 나치즘과 분리될 수 있는 독자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연구자들은 슈미트의 주권론, 결단주의, 그리고 친구-적 구별의 논리가 본질적으로 권위주의적 정치를 지향하며, 나치 협력은 그 사상의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본다.
분명한 것은, 슈미트의 사상을 읽을 때 이 어두운 역사적 맥락을 결코 괄호에 넣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추상적으로 아름다운 이론이 현실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슈미트의 사례는 가장 극적인 경고가 된다.
오늘날 읽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
슈미트의 책을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읽는 것은, 일종의 사상적 예방접종과 같다. 그의 이론 자체를 수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이론이 겨냥한 문제 — 정치적 갈등의 불가피성, 자유주의적 중립화의 한계, 예외상태의 위험 — 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의 세계적 확산, 민주주의의 후퇴,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는 모두 슈미트가 진단한 문제의 현대적 변주이다. 트럼프, 오르반, 에르도안 같은 지도자들은 사실상 슈미트적 논리로 통치한다. 국민을 '진정한 국민'과 '적'으로 나누고, 예외적 상황을 선포하며, 기존의 법적 질서를 넘어서는 결단을 내리는 정치 스타일은 슈미트의 이론을 실천 매뉴얼처럼 따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샹탈 무페가 보여주었듯이, 슈미트의 적대 개념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전유될 수 있다. 무페는 적대(antagonism)를 경합(agonism)으로 전환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과제라고 주장했다. 적을 소멸시켜야 할 존재가 아니라 경쟁해야 할 상대로 인정하는 것, 갈등을 부인하지 않되 폭력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 — 이것이 슈미트를 '넘어서면서 통과하는' 방법이다.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불편한 책이다. 읽고 나면 '정치적 올바름'의 안락한 울타리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책의 가치이다. 정치가 무엇인지, 왜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지, 그리고 '적이 없는 세계'라는 꿈이 왜 위험할 수 있는지를 묻게 만들기 때문이다. 슈미트의 대답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의 질문은 여전히 우리의 것이다.
주요인용문
"국가의 개념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전제한다(Der Begriff des Staates setzt den Begriff des Politischen voraus)."
"정치적 행위와 동기를 환원할 수 있는 고유한 정치적 구별은 친구와 적의 구별이다(Die spezifisch politische Unterscheidung, auf welche sich die politischen Handlungen und Motive zurückführen lassen, ist die Unterscheidung von Freund und Feind)."
"정치적 적은 도덕적으로 악할 필요가 없으며 미학적으로 추할 필요도 없다. 그는 경제적 경쟁자로 나타날 필요도 없으며, 오히려 그와 사업 거래를 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자, 낯선 자이며, 특별히 강렬한 의미에서 실존적으로 다른 무엇이다(The political enemy need not be morally evil or aesthetically ugly; he need not appear as an economic competitor, and it may even be advantageous to engage with him in business transactions. But he is, nevertheless, the other, the stranger; and it is sufficient for his nature that he is, in a specially intense way, existentially something different and alien)."
"모든 진정한 정치이론은 인간이 악하다고, 즉 결코 문제없는 존재가 아니라 위험하고 역동적인 존재라고 전제한다(All genuine political theories presuppose man to be evil, i.e., by no means an unproblematic but a dangerous and dynamic being)."
"'인류' 개념은 제국주의적 팽창의 특히 유용한 이념적 도구이다(The concept of humanity is an especially useful ideological instrument of imperialist expansion)."
"정치적인 것은 가장 강렬하고 극단적인 적대이며, 모든 구체적 적대는 그것이 친구-적 집단화라는 가장 극단적 지점에 가까워질수록 그만큼 더 정치적이 된다(The political is the most intense and extreme antagonism, and every concrete antagonism becomes that much more political the closer it approaches the most extreme point, that of the friend-enemy grouping)."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대해 결정하는 자이다(Souverän ist, wer über den Ausnahmezustand entscheidet)." — 『정치신학』(1922)
"어떤 민족이 정치의 영역에서 스스로를 유지할 에너지나 의지를 더 이상 갖지 못한다 해도, 정치적인 것이 세상에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단지 약한 민족이 사라질 뿐이다(If a people no longer possesses the energy or the will to maintain itself in the sphere of politics, the latter will not thereby vanish from the world. Only a weak people will disapp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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