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상대담은 20세기 초 미술의 혁명적 변화를 상징하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과 미술비평가 아서 단토(Arthur Danto)의 만남을 상상한 대화이다. 이 대담의 중심에는 뒤샹의 문제작 '샘'(Fountain, 1917)이 자리한다. 기성품 변기에 단순히 서명('R. Mutt')만 하고 예술작품으로 선언한 이 작품은 당시 독립미술가협회 전시에서 거부되었지만, 이후 20세기 미술사에 혁명적 전환점을 가져온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장소: 1917년 파리의 한 카페, 독립미술가협회 전시회 개막식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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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토: 뒤샹 씨, 당신의 '샘'이라는 작품에 관해 이야기해 봅시다. 당신은 정말로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변기에 서명만 하고 이것을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겁니까?
뒤샹: (담배를 피우며) 단토 씨, 그건 정확히 제가 하고자 했던 일입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모든 전통적 관념에 도전하고 싶었죠. 왜 붓으로 그린 것만 예술이어야 합니까? 왜 대리석으로 조각한 것만 예술이어야 합니까?
단토: 하지만 예술은 기술, 노력, 창의성을 필요로 합니다. 당신은 그저 기성품을 가져와서 서명했을 뿐입니다.
뒤샹: (웃으며) 그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저는 '망막적' 예술, 즉 단순히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예술을 넘어서고자 했습니다. 예술은 관념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변기를 선택하고, 그것을 새로운 맥락에 배치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 행위 자체가 예술적 과정이었습니다.
단토: 그렇다면 당신은 예술의 정의를 완전히 바꾸려는 겁니까?
뒤샹: 저는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샘'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이것은 예술인가?" 관객들이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드는 순간, 그 작품은 이미 예술로서 기능하고 있는 겁니다.
단토: 흥미롭군요. 그렇다면 당신의 작품은 물리적 대상보다는 개념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겠네요.
뒤샹: 정확합니다. 저는 '레디메이드'라는 개념을 통해 예술이 반드시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도전합니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 제작이 아니라 선택, 의도, 맥락입니다.
단토: 그렇다면 예술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뒤샹: (생각에 잠겨) 예술가의 의도와 그것을 예술로 선언하는 행위, 그리고 그것을 예술계가 수용하는 과정이 결합될 때 예술이 탄생합니다. 제가 변기를 갤러리에 전시함으로써,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위생 기구가 아니라 관념을 담은 매체가 됩니다.
단토: 그렇다면 누구나 일상적인 물건을 가져와서 "이것은 예술이다"라고 선언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뒤샹: 원칙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술계에서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려면, 그 행위가 어떤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가 중요합니다. 제 '샘'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단토: 그럼 예술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더 이상 기술이나 아름다움에서 오는 게 아니라면?
뒤샹: 예술의 가치는 이제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생각, 질문, 대화에서 옵니다. '샘'은 예술의 정의, 예술가의 역할, 제도의 권위에 관한 대화를 촉발시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추구하는 예술의 가치입니다.
단토: 당신의 관점은 예술을 철학적 활동으로 보는 것 같군요.
뒤샹: 그렇습니다. 가장 훌륭한 예술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관객이 수동적 감상자가 아니라 적극적 참여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단토: 그렇다면 당신의 '샘'은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 예술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탐구인 셈이군요.
뒤샹: (미소 지으며) 정확합니다. 저는 예술가들이 단순히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것에서 벗어나, 세상을 새롭게 보는 방식을 제안하기를 바랍니다. 예술의 혁명은 캔버스 위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단토: 마지막으로, 뒤샹 씨, 당신의 '샘'이 거부당했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뒤샹: (웃음) 예상했던 일입니다. 혁명은 항상 저항에 부딪힙니다. 하지만 거부 자체가 저의 논점을 증명했죠. 예술계의 경계와 규칙이 얼마나 임의적인지를 보여주었으니까요. 때로는 '아니오'라는 대답이 가장 중요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단토: 뒤샹 씨, 당신과의 대화는 정말 흥미롭습니다. 당신의 작품은 예술의 정의에 관한 대화를 계속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될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