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 작은 카페, 담배 연기가 자욱한 197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에서 아트걸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인 미셸 푸코를 만났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과 특유의 대머리가 인상적인 푸코는 차분하면서도 강렬한 목소리로 자신의 사상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아트걸: 교수님, 먼저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용어일 텐데요.
푸코: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는 말 그대로 '다른 장소'를 뜻합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공간과는 완전히 다른 규칙과 질서를 가진 현실의 공간들을 가리킵니다. 1967년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처음 체계적으로 제시한 개념인데, 유토피아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라면, 헤테로토피아는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다른 공간'입니다.
아트걸: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신다면요?
푸코: 가장 쉬운 예가 거울입니다. 거울 속 나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거울이라는 현실의 공간을 통해 내가 존재하는 곳을 다르게 경험하게 만들죠. 또 다른 예로는 묘지가 있습니다. 묘지는 도시 안에 있으면서도 일상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과 공간의 규칙을 따릅니다. 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공간이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이동하는 공간이죠.
헤테로토피아의 여섯 가지 원칙
아트걸: 헤테로토피아를 분석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푸코: 네, 여섯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모든 문화는 헤테로토피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회든 일반적 공간과 구별되는 특별한 공간들이 존재합니다. 둘째, 헤테로토피아는 시대에 따라 기능이 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묘지는 교회 중앙에 있다가 도시 외곽으로 이동했죠.
셋째, 헤테로토피아는 양립할 수 없는 여러 공간을 한 곳에 병치시킵니다. 극장이나 영화관처럼 무대나 스크린 위에 전혀 다른 세계들이 펼쳐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넷째, 헤테로토피아는 특별한 시간성을 가집니다. 박물관이나 도서관처럼 시간을 무한히 축적하려 하거나, 축제처럼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시간을 추구하죠.
아트걸: 나머지 두 원칙은 무엇인가요?
푸코: 다섯째, 헤테로토피아는 특별한 출입 시스템을 가집니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제스처나 허가가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모텔이나 사우나 같은 공간을 생각해보세요. 여섯째, 헤테로토피아는 나머지 모든 공간에 대해 특별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현실 공간의 환상을 폭로하거나(매춘 공간처럼), 완벽한 질서의 공간을 창조하려 합니다(식민지처럼).
현대 사회의 헤테로토피아들
아트걸: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공간들이 헤테로토피아의 특성을 보인다고 보시나요?
푸코: 현대는 특히 헤테로크로니아(시간의 차이)가 중요해졌습니다. 박물관과 도서관은 시간을 끝없이 축적하려는 욕망을 보여주죠. 반면 모든 것이 일시적이고 덧없는 축제나 휴양지는 정반대의 시간성을 가집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기차나 배, 자동차 같은 '이동의 수단'들입니다. 19세기 기차는 사람들에게 전혀 새로운 공간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이동하면서도 하나의 완결된 공간을 유지하는, 그런 모순적 특성 말입니다.
아트걸: 인터넷 공간도 일종의 헤테로토피아로 볼 수 있을까요?
푸코: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물론 제가 살았던 시대에는 인터넷이 없었지만, 헤테로토피아의 개념으로 보면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상공간은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현실과는 전혀 다른 규칙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시간과 공간의 경험이 완전히 달라지고, 접속과 차단이라는 특별한 출입 시스템도 있고요.
헤테로토피아가 던지는 질문들
아트걸: 헤테로토피아 개념이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요?
푸코: 헤테로토피아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공간의 질서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보통 공간을 중립적이고 투명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공간이 권력과 지식, 욕망의 관계 속에서 구성됩니다.
학교나 병원, 감옥 같은 공간들이 어떻게 특정한 주체를 생산하고 통제하는지 생각해보세요. 이런 공간들은 각각 고유한 시간성과 규칙을 가지면서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조형합니다. 헤테로토피아 개념은 이런 공간의 정치학을 드러내는 도구인 셈입니다.
아트걸: 마지막으로, 헤테로토피아와 관련해 앞으로 더 연구해볼 만한 방향이 있다면요?
푸코: 공간에 대한 사유는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는 시간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공간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탐구하지 못했어요. 특히 현대 사회에서 공간이 어떻게 재구성되고 있는지, 새로운 기술들이 어떤 헤테로토피아를 만들어내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조건이니까요.
카페를 나서며 아트걸은 푸코의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우리가 매일 지나다니는 공간들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공간들이 우리를 어떻게 만들어가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