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파리의 한 카페. 창밖으로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방금 현상한 흑백사진들이 흩어져 있다. 미국에서 온 날카로운 눈빛의 여성 비평가와 프랑스의 온화하지만 예리한 기호학자가 마주 앉아 있다.)
"바르트 씨, 당신의 『카메라 루시다』를 읽었습니다. 사진에 대한 개인적 체험을 그토록 섬세하게 분석한 글은 처음이었어요." 손택이 테이블 위의 사진 한 장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바르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사진에 관하여』도 충격적이었습니다. 특히 고통받는 타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사진을 바라보는 방식은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손택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당신은 사진을 '이것은-존재했다(ça-a-été)'의 증거로 보시죠. 사진이 과거의 실재를 증명한다고."
"맞습니다. 사진은 지시대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빛이 실제 대상에서 반사되어 필름에 닿는 물리적 과정을 거치니까요." 바르트가 설명했다. "그래서 사진은 다른 재현 매체와 달리 '그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듭니다."
손택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사진의 함정 아닐까요? 사진은 현실의 한 순간을 잘라낸 파편일 뿐입니다. 맥락을 제거하고, 선택적으로 프레임을 씌운 채로 말이죠."
"흥미로운 지적이군요. 계속해보세요."
"베트남 전쟁의 참혹한 사진들을 생각해보세요. 그 사진들이 보여주는 건 분명 '있었던' 일이지만, 동시에 그 사진들이 만들어내는 감정이나 의미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손택의 목소리에 열기가 실렸다. "우리는 고통받는 타인의 이미지를 소비하면서 동정심을 느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고통을 구경거리로 만들 뿐이에요."
바르트는 잠시 침묵했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보려 합니다. 사진을 보는 체험에는 두 가지 층위가 있어요.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이죠."
"그 개념들을 설명해주시겠어요?"
"스투디움은 사진에 대한 일반적이고 문화적인 관심입니다. 우리가 사진을 보면서 '아, 이건 1950년대 파리구나' 하고 정보를 읽어내는 차원이죠. 하지만 푼크툼은 전혀 다릅니다. 그것은 사진 속의 어떤 디테일이 나를 찌르는 듯한 개인적 체험이에요."
손택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제 어머니의 어린 시절 사진에서 발견한 작은 목걸이 같은 것이죠. 그 목걸이는 사진의 '의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저에게는 어머니의 실존을 가장 강렬하게 느끼게 해주는 지점이었습니다." 바르트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사진의 '진실'은 객관적 정보가 아니라 주관적 체험에 있다는 건가요?"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주관적이지만은 않아요. 사진의 물질적 토대, 즉 빛의 흔적이라는 측면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요."
손택이 테이블의 사진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그 '흔적'을 어떻게 읽느냐는 거죠. 사진기자가 찍은 기아로 고통받는 아이의 사진을 봅시다. 그 아이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건 분명해요. 하지만 그 사진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촬영자의 의도, 편집자의 선택, 그리고 보는 이의 해석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맞습니다. 사진은 중성적이지 않죠."
"더 나아가 사진은 우리의 도덕적 감수성을 마비시킬 수도 있어요." 손택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지만, 비슷한 이미지들을 계속 보다 보면 무감각해집니다. 고통이 일상화되는 거죠."
바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의 역설이군요. 기억하게 해주지만 동시에 망각하게도 만든다는."
"정확해요. 그리고 더 심각한 건, 사진이 행동을 대체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사진을 보고 '알게' 됐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착각하는 거죠."
"하지만 사진이 갖는 증언의 힘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바르트가 반문했다. "홀로코스트의 사진들, 민권운동의 기록들... 이런 이미지들이 없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기억되었을까요?"
손택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조차 조심스러운 문제입니다. 사진은 선택된 순간만을 보여주니까요. 홀로코스트 사진들이 참혹함을 전달하지만, 동시에 그 참혹함을 '재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해요."
"재현 가능하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사진으로 기록된 순간, 그 고통은 이미지가 됩니다. 그리고 이미지는 복제되고, 유통되고, 소비되죠. 실제 고통을 당한 사람들의 경험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는 거예요."
바르트는 찻잔을 돌리며 말했다. "결국 사진의 윤리학적 문제군요. 우리가 어떻게 타인의 고통을 바라볼 것인가의."
"맞아요.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사진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보는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손택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사진은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실을 만들어가는 거죠."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 속에서 테이블 위의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같은 이미지를 보면서도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