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늘 오늘 새롭게 재구성되는 어제인 동시에, 그 어제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말하는 작업이다. 예술의 역사도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현대미술의 역사는 통상의 고전적인 미술사와는 경우가 많이 달라 보인다. 죽은 고전들의 목록으로 재구성되는 기존의 미술사와는 달리, 현대미술의 역사는 현재의 이해와 너무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기점을 어떻게 잡느냐부터 전혀 다른 계보를 재구성할 수 있다. 그러니 물어 보자. 최근의 비평적 관점에서 새롭게 쓸 수 있는 현대미술의 역사는 어떤 것이냐고. 여기 그 답이 있다.
그리고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이 강좌는 세잔으로부터 현대미술의 기점을 잡아 그 방법(메소드)의 역동적인 전개를 축으로 현재까지의 미술사를 정리해 보려는 작업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역사를 정리해서 재밌게 들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부분의 미술 이야기에서 간과되는 질문을 끝까지 함께 안고 간다. 그것은 ‘이 이야기들이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이다. 다시 말해 특정한 시대적 배경에서 특별한 개인들이 시도한 새로운 흐름이 한국이란 나라의 미술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 실질적인 연관관계와 의미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강의를 들으며 종종 당시 만들어진 오해와 무지가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져 역사의 풍요로운 디테일들을 놓치게 되었는지 새로운 시야가 트이게 된다.
세잔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현대화’되는 미술
역사에서 배경이 되는 과거는 종종 조악하게 단순화되어 주제까지도 함께 단순해지는 경우가 있다. 현대미술의 기점 역시 종종 그렇게 설명되곤 했다. 재현으로부터의 해방, 색채와 형태의 자유로움 등 요약적 구호 같은 것이 그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미술·디자인 이론가이자 역사연구자인 임근준 강사는 어떻게 통념이 형성되었는지 (혹은 오해가 굳어졌는지) 그 연원을 추적하고, 실제의 미술사가 얼마나 입체적이고 역동적으로 전개되었는지 그 풍부한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작가, 이론가, 비평가들이 메타적으로 시도했던 ‘흐름의 이야기’가 있고, 그 흐름들을 만들고 부수고 저항했던 작가들의 실제 작품들과 그 재평가가 있다. 앞부분의 다섯 강좌는 세잔, 로댕, 칸딘스키, 뒤샹, 폴락, 드 쿠닝, 라우션버그 등 친숙한 이름을 중심으로 그 이름과 결부된 중요한 혁신과 변화를 정리한다. 이 시기는 급격하게 미술이 ‘현대화’되던 시기였고 과거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 전혀 새로운 개념의 미술을 시도하던 때였다. 이렇게 초기의 현대미술을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이것이 결코 종결되지 않는, 진행중인 역사의 시작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임근준(미술•디자인 이론/역사 연구자)
서울대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뒤, 미술이론과정에서 석사학위를, 미술교육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4/1995년부터 2000년까지 미술가/디자이너이자 인권운동가로서 실험기를 보냈다. 1999년부터 2013년까지 디자인 연구자 모임인 DT 네트워그 동인으로 활동했고, 계간 ≪공예와 문화≫ 편집장, 한국미술연구소/시공아트 편집장, 월간 ≪아트인컬처≫ 편집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이후 당대미술이 붕괴-해체되는 과정에서 마땅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통사로서의 현대 한국/아시아 미술사를 작성하는 일'과 '아프로아시아나의 새로운 상호 연결성으로 문화예술의 미래를 창출하기'를 인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과연 미술인가』(가제), 『현대디자인은 어디로 가는가?』, 『메소드: 방법론으로 공부하는 20·21세기 현대미술의 역사』(가제) 등을 순차적으로 발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