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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가라』는 한강 문학에서 ‘이정표’적 의미가 있다. 전작인 『채식주의자』가 ‘식물 되기’라는 모티브를 통해 삶의 포기까지 불사하는 인간의 본래적 폭력성과의 결별을 보여줬다면, 『바람이 분다, 가라』는 등장인물의 살고자 하는 단호한 의지와 함께 작품이 마무리된다. 이러한 삶에 대한 강렬한 긍정은 이어지는 『희랍어 시간』과 『노랑무늬영원』에서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상처의 회복 가능성에 대한 탐색으로 주제적으로 연결되면서,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재현될 ‘광주’와 ‘제주’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예비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제의와 위무
한강 작가는 여러 차례 1982년경 광주항쟁에 관한 사진첩을 본 경험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희랍어 시간』에서 실어증 상태의 여자가 작품 말미에 입을 떼듯이, 30여 년이 흘러 작가는 『소년이 온다』(2014)를 통해 ‘광주’에 대해 입을 뗀다. 한강 문학 여정에서 『소년이 온다』는 개인적 트라우마가 구체적, 역사적, 집단적 트라우마로 이행한 작품으로서, 작가가 그간 말할 수 없었던/하지 않았던 사건과 상처에 대해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되는’ 제의적 의미가 있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5·18민주화운동과 제주 4·3 사건의 희생과 학살, 그리고 그 고통을 예술적 역량과 방식으로 위무하려는 한강의 문학적 시도를 보여준다.
세계문학 공간에서 감정을 전이시키는 문학
한강은 이제 가장 유명한 한국 작가일 것이다. 그의 소설들은 세계문학 공간에서 세계문학 독자들과 소통한다. “역사적 상처에 직면”한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스웨덴 한림원의 표현처럼, 한강 소설들은 과거의 고통과 경험을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대신 ‘시적’으로 전이시키며 느끼게 한다. 서정시적인 원리와 주제의식을 산문적 세계에 구현해내며 자신만의 문학을 구축한 한강의 작품들 속에서 광주와 제주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는 상처이자 아픔이며, 무엇보다 ‘살아 있다.’ 본 강좌는 개별 작품들의 의미와 그것들 간의 연결을 따라가며, 한강 문학의 주제적 변화를 알아보고, 그 여정이 한국문학을 넘어 세계문학의 독자들에게 다가가게 된 과정 또한 살피는 시간을 제공한다.이현우(서평가)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비교시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에 서평과 칼럼을 연재해 왔으며, 특히 ‘로쟈’라는 필명으로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http://blog.aladin.co.kr/mramor)을 운영하면서 인터넷 서평꾼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림대학교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대학 안팎에서 러시아문학과 인문학을 주제로 활발히 글을 쓰고 강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