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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는 첫 시가 아닐 리 없다
수년 전 읽었던 시집을 꺼내 다시 읽을 때의 감응은 이전의 것과 같지 않다. 시가 죽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는 변하고 독자도 변한다. 시와 독자의 변모는 언제나 해석의 새로움을 낳는 ‘첫 시’이다. 이렇듯 시는 굴레와 같은 하루하루와 일상의 무의미함 속에서 변화라는 새로운 장을 열어젖힌다. 본 강좌는 시를 어렵고 멀리하게 만드는 분석이나 통념과는 거리를 두고, 우리네 삶을 공감하고 있는 세계로서의 시에 대한 만남을 주선한다. 한 번도 되돌아온 적 없는 그 순간의 ‘첫 시’ 만나기, 이는 시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을 톹아보는 데서 시작한다.
나의 사유와 존재 양식을 찾아가는 길
시 창작은 어디서 연유하는가? 번뜩이는 영감이나 색다른 경험만이 시작(詩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를 읽을 때 경험이 발생하고, 시를 쓰는 순간 새로운 경험이 탄생할 수 있다. 굴러 떨어질 바위란 걸 알지만 다시 바위로 향하는 ‘능동적 행위자’로서 시시포스의 정신과 태도처럼, 새로운 세계를 발명하는 힘은 모국어를 사랑하며 즐겁게 자신을 발견하는 자기 신뢰의 길을 재밌게 걸어가는 데 있다. 언어가 나의 사유와 정서, 존재의 형식이 될 때, 우리는 시를 쓸 수 있다. 나만의 스타일로 완성된 유기체, 그것이 나의 첫 시가 된다.
함께 호흡한다는 것
삶과 공감하고 호흡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시는 늘 독자의 자리를 비워두며 공명하길 요청한다. 시적 상상력이란 사적인 감상을 공적인 감각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의 거울 속에 상대를 비추며 상대와 함께 호흡한다는 것이다(1강). 시에서의 여백은 침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가능성을 말하기도 한다. 시는 이야기되지 않은 것을 독자의 상상력이 가닿을 자리로 남겨둔다(2강). 읽는 이에게 청유나 권유하는 진술을 전달하려는 강렬한 시들도 있다(4강). 시의 리듬은 시인과 작품에 따라 달라질 뿐 아니라 읽는 독자의 심리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5강). 본 강좌는 시를 이루는 면면들을 살피면서, 시가 비워둔 독자의 자리를 찾아간다.
생명력 있는 유기체, 시
본 강좌는 매 강마다 시적 상상력, 시어, 묘사, 형식, 진술, 이미지, 화자, 리듬, 어조와 분위기 등 시를 이루는 구성 요소들에 대한 설명을 바탕으로, 이것들이 잘 구현된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시들을 함께 읽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통해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시가 결국은 개인의 삶과 세계에 지속적으로 연결되고 관련되는 작동 과정이 환기된다는 점이다. 시의 길은, 나의 사유와 존재 양식을 찾기 위해 내가 걸어가는 어떤 작은 길목의 오솔길에서 만난다.
김경후(시인)
1998년『현대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6년에 현대문학상(61회)을, 2019년에 김현문학패를 받았다. 시집『그날 말이 돌아오지 않는다』(2001, 민음사), 『열두 겹의 자정』(2012, 문학동네),『오르간, 파이프, 선인장』(2017, 창비),『어느 새벽, 나는 리어왕이었지』(2018, 현대문학) 등을 냈고, 청소년소설 『괴테, 악마와 내기를 하다』, 과학그림책 『살았니? 죽었니? 살았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