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철학자 중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지젝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진지한 듯 진지하지 않은 철학으로 세계 지식계를 '들었다 놨다, 엎었다 뒤집었다'한다. 그의 철학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고 자극을 받는다.
하지만 아무리 지젝의 철학에 경도된 사람이라도 그의 행보를 바짝 쫓기는 어려울 것이다. '철학적 게릴라'라 불리는 그는 1년에 두 세권씩 책을 쏟아낼 뿐 아니라 영화에까지 출현하는 홍길동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권의 책을 읽고 이해했다 싶으면 다음 책에서 손바닥 뒤집듯 이론을 엎어버리니, 지젝의 일관된 생각을 읽어내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까다로운 주체', '논리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는 지젝'을 이해하기란 진정 요원한 일인가? 이 모순적인 인간의 전모를 살필 방법은 없단 말인가?
그간 동·서양, 근·현대의 철학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아우른 철학자 이정우 교수가 이 잡히지 않는 인물을 포획하기 위해 나섰다. 지젝의 바깥 사유에서부터 그의 안쪽 사유까지 파고드는 이정우 교수만의 드넓은 그물망을 만나보자!
지젝은 1989년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을 출간하면서 순식간에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당시의 표준적 분석담론에 싫증을 느낀 독자들에게 그의 책은 가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젝의 이론이 주목 받는 이유는 단순히 이론이 탁월하다는 데에만 있지 않다. 그의 책은 확실히 재미가 있다. 책의 이곳 저곳에 수놓아진 농담은 기존의 '철학이론이 엄격하고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파괴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그의 책을 재미있게만 보지 말자! 재미만 추구하다가 그의 '농담'의 '농'자도 이해 못할지 모르니...
우리는 이 어려우면서도 재밌는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을 읽으며 지젝 사상의 주요 개념들을 익히고, 이후에 이어질 강좌의 기반을 다져 나갈 것이다.
이정우(철학자, 경희사이버대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공학, 미학, 철학을 공부한 후,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교수, 녹색대학 교수,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철학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경희사이버대 교수로, 들뢰즈 <리좀 총서> 편집인으로 활동 중이다. 해박한 지식으로 고대철학과 현대철학,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가로지르며, 철학과 과학을 융합하는 등 ‘새로운 존재론’을 모색해 왔다.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