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친 르네상스’를 통해 다시 살펴보는 그의 예술미학론과 사유
한국에서는 문학연구자로 널리 알려진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은 문화연구와 철학적 사유의 영역에서도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바흐친은 소비에트 러시아 출신의 인문학자로서, 거의 말년이라 할 수 있는 1960년대부터 서구에 소개되었고, 그때 마침 유행이던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학자로 널리 소개되어 왔다.
흔히 ‘바흐친 르네상스’라 알려진 바흐친의 유행은 그의 저작들인 『도스토예프스키 시학』과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영어판: 『라블레와 그의 세계』 / 이하 『라블레론』) 등이 스탈린 사후 후학들에게 발굴되어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저작들은 그의 사상이 단지 문학연구에 한정되어 있지 않았음을 잘 보여주며, 1960년대 서구 지성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했다. 바흐친 사상의 핵심은 인문학적 삶 전반에 대한 관심과 통찰에 기반해 있다.
바흐친이 르네상스 시대의 소설가 라블레에 대해 쓴 『라블레론』은 문학연구를 표방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역사와 삶, 존재와 생성의 문제를 광범위하게 제기하고 있다. 『라블레론』을 비롯한 바흐친의 카니발 이론 등은 계몽주의와 엄숙함에 대한 비판으로 ‘웃음’과 ‘민중문학’의 기능을 긍정하는데, 이는 타자성을 강조한 들뢰즈와 데리다, 네그리, 가라타니 고진 등의 현대 사상가들과 대중문화 이론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라블레론』은 르네상스의 수혜를 입지 않은 러시아 출신의 인문학자 바흐친의 비서구적 관점의 통찰이 빛나고 있다. 근대미학과 예술론에 대한 비판의 관점에서 바흐친은 라블레의 소설과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민중문학과 새롭게 생성되는 언어의 탄생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라블레론』에서 빛나는 대목일 것이다. 이 강의에서는 『라블레론』을 제대로 읽기 위한 미학과 예술사적 맥락을 짚어보고자 한다.
최진석(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창과 교수)
수유너머104 회원. 러시아인문학대학교 문화학 박사. 정통을 벗어난 ‘이단의’ 지식, ‘잡종적’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잡학다식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이 공부길에서 수유너머의 친구들이 (불)친절한 동반자들임에 늘 감사해 한다. 그렉 램버트의 『누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두려워하는가?』, 미하일 리클린의 『해체와 파괴』를 번역했고, 『불온한 인문학』 등을 함께 썼다. 이화여자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