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게오르그 가다머
1900년에 태어나 2002년에 생을 마감한 독일의 철학자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는 한국에서는 덜 유명한 것과는 달리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 명이다. 후설과 하이데거로부터 이어지는 가다머의 철학은 진리란 고정된 실재가 아닌 주체의 인식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설명하고 그것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점임을 강조하였다. 결국 인간이 마주하고 있는 시대의 문제는 개인 각자의 해석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인데, 개별자의 차이점에 가치를 둔 이러한 특징은 이전까지의 인간에게 강요되었던 동일성이란 이름의 폭력을 비판할 수 있는 설득력있는 주장이 되었다.
선입견에 대한 오해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한다.”라는 문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가다머를 만나기 전의 우리들은 선입견에 대하여 부정적인 오해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가다머에게 있어 선입견이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선입견을 바탕으로 인식하고 이해한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며 각자의 역사성을 쌓아왔기 때문에 선입견 그 자체를 제거하는 일은 곧 이 안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입견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갈등을 조장하고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가다머는 선입견을 바탕으로 한 이해를 강조하되 서로 다른 선입견과 이해의 폭을 좁히기 위한 대화의 중요성 또한 강조하였다.
왜 가다머를 알아야 하는가?
가다머는 자신의 선집을 출판하고 직접 교정까지 할 수 있었던 매우 드문 학자 중 한명이다. 물론 그의 3세기에 걸친 기나긴 삶이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성실하고 근면한 스스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온 철학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세와 근대를 지나는 동안 서양의 철학은 실천보다는 이성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고대 철학에 정통하였던 가다머는 다시금 앎=실천이라는 사상을 되살려냈고 스스로 실천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가다머의 철학은 동일성 추구의 이면에서 배제된 각자의 차이점의 중요성을 되새겨 폭력적 전체성을 비판하며 차이의 이해와 그 융합을 이야기한다. 인류 역사의 그 어느 시기보다도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이 공존하는 지금 이 시대에 갈등을 해소하고 나아갈 수 있는 해답을 가다머의 철학 그리고 이번 강의를 통해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박남희(연세대 철학연구소 전임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