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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널 사랑해 (I love you/ Ich liebe Dich/ Je t'aime)
어느 날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돌연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난 널 사랑해, 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나는 나였고 너는 너였으니까. 그런데 나와 너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그 사이에 ‘사랑해 (to love)’가
들어서면, 예기치 않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어떤 사건들이? R. 바르트에게 그 사건들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몽상’이다. 사랑에 빠진 우리는 모두 몽상가가 된다. 밤이나 낮이나 떠나지 않는 그 몽상들은 그런데 모두가 백일몽, 실현이
불가능한 몽상들이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몽상하는 것일까? 왜 그 몽상들은 모두 실현이 불가능한 것일까? 또 하나의 사건은
‘수다’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모두 수다꾼이 된다. 그러나 이 수다는 침묵의 수다다. 그 사람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머리 속에서만, 마음 속에서만, 침묵 속에서만, 우리는 혼자 수다를 떤다. 그것도 끊임없이, 스스로도 멈출 수 없이, 나중에는 그 수다의 홍수
속으로 침몰할 때까지... 그런데 이 수다의 시니피앙들, 독백의 시니피앙들은 모두 어디로 흐르는 것일까? 그 끝에는 어떤 사랑이 있는 것일까?
그 사랑에 우리는 도착할 수 있는 걸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
사랑에 빠지면 왜 말더듬이가 될까? 사람에 빠진 사람의 말은 어째서 하나의 문장, 하나의 의미 있는 문맥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파편들'로 남을까? 사랑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내 사랑을 '글쓰기' 할 수 있을까? 사랑을 글로 쓴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과연 가능한 일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억지로 언어로 옮겼을 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바르트의 '단상'들을 통해 알아보자.
사랑의 주체
'사랑의 단상', 더
정확히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말들의 파편들 (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 안에는
하나의 특별한 주체가 있다. 이 주체는 그런데 텍스트 안에서 수 없이 이름과 얼굴을 바꾼다. 상상적인 주체, 목소리의 주체, 육체적인 주체,
음악적인 주체, 유아적인 주체, 베르테르, 슈베르트, 슈만, 보들레르, 프루스트, 트리스탄, 소크라테스의 주체 - 그러나 그 주체는 무엇보다
고독한 주체, 시니피에로 도착될 수 없는, 그래서 혼자 떠다니고 돌아다니는 '낭만적' 시니피앙의 주체다.
바르트는
이 고독한 주체, 낭만적 주체를 '사랑의 주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사랑의 주체를 '아주 오래 된' 주체, 너무 오래 되어서
우리는 까맣게 잊었지만, 너도 나도 다 포함되어 있는 모두의 주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주체는 도대체 누구일까? 이 강의는 이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이 강의는 또한 롤랑 바르트의 사유 체계 전반과 『사랑의 단상』에서 얘기되고 있는 '바르트적인 것'을 함께 알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김진영(인문학자, 철학아카데미 대표)
고려대 대학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그 대학(University of Freiburg)에서 아도르노와 벤야민, 미학을 전공하였다. 바르트, 카프카, 푸르스트, 벤야민, 아도르노 등을 넘나들며, 문학과 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많은 수강생들로부터 ‘생각을 바꿔주는 강의’, '인문학을 통해 수강생과 호흡하고 감동을 이끌어 내는 현장', ‘재미있는 인문학의 정수’라 극찬 받았다. 또한 텍스트를 재해석하는 독서 강좌로도 지속적인 호평을 받았다. 현재 홍익대, 중앙대, 서울예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사)철학아카데미의 대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