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이 난해하다? 도통 이해할 수 없다? 그럼 사회학자(혹은 철학자) 4인의 예술에 대한 시선을 경유해 현대미술의 사례들로 한 발짝 다가가보는 것이 좋겠다. 랑시에르, 바디우, 랏자라또, 루만은 그들이 가진 예술관을 통해 미술이 사회와 관계 맺고 있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현대 미술과 사회학의 만남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사회학자들이 보는 현대미술사회 이론가들의 관심은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 즉 세계의 작동 방식에 관한 것에 있다. 예술에 대한 그들의 관심사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해 대답하는 대신, 예술이 어떻게 작동 되는가에 관심을 둔다. 예술의 작동 방식을 살피는 것은 현재 사회가 존재하고 있는 방식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도래하는 미학
랑시에르는 근대 미학이 온전하게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본다. 그는 엘리트/지배 계급의 감성을 보증하는 기존의 미학 대신 노동자 계급까지 아우르는 감성의 재배치, 재분배가 새로운 미학, “도래하는 미학”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재현불가능하고 결정불가능한(undecidable) 예술 작품이야말로 기존의 미학과는 다른 새로운 미적인 것을 향한 논의로 나아가게끔 할 것이다.
진리를 만들어낼 잠재성
포스트모던 시대에도 진리가 있다고 믿는 바디우에게 예술은 진리를 현시할 잠재성을 가진다. 예술은 정치, 사랑, 과학과 마찬가지로 진리를 생산하는 절차다. 진리를 찾을 때까지 충실성이라는 절차를 밟아가는 실존의 시간들은 계속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예술 작품을 계속해서 만들어야하고, 이 절차는 진리를 찾아가는 현대주체의 존재방식과 다르지 않다.
주체적인 현대적 인간의 탄생
랏자라또가 바라보는 세계관은 주체를 새로 발명해야한다는 생각과 맞닿아 있다. 구성주의적 관점을 견지한 랏자라또는 모든 개인이 각자 앎을 축적하고 발화함으로써 사건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각자 아는 것들로 세계를 산출해낸다는 것, 이것이 랏자라또가 말하는 주체의 발명으로서 전개될 ‘사건의 정치’이기도 하다. 또한 랏자라또는 마르셀 뒤샹을 언급하며 예술가의 기능과 예술창작의 존재론적 확장을 읽어낸다.
예술의 기능은 소통
니클라스 루만이 생각하는 예술의 기능은 소통이다. 그에게 인간 주체나 자유의지는 세계를 파악하거나 판단하는데 중요하지 않다. 대신 루만은 소통을 통해 근대 이후 자동 생산/ 자기 재생산을 해온 ‘체계’에 관심을 가진다. 루만에게 사회적 체계로서의 예술은 행간을 다룰 수 있는 매체, 즉 언어 너머의 것을 표현하며, 언어로만 소통할 수 있었던 것 이상의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