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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프랑스의 사상계를 이끈 지성인 -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어떤
야만적인 것에 의해 우리 교육에서 단 하나의 학문만을 남기고 모두 추방돼야 한다면 구제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문학이다" - 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는 당대 현대적인 문학연구의 선구자로 레비스트로스, 푸코, 알튀세르, 라깡 등 걸출한 사상가들과 함께 구조주의 사상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젊은 시절 5년간 폐결핵을 앓은 병력이 있는데, 질병과 싸우던 이 시기에도 요양소에서 엄청난 분량의 서적을 독파하며 자신의 사상체계를 다져간 불굴의 정신으로 유명하다. 다재다능한 팔방미인이기도 했던 그는 악기연주와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하는데, 학문적으로도 계속해서 변모와 쇄신을 거듭하며 지적 영역을 넓혀나갔다.
이 강좌를 이끌어갈 김진영 선생님이 소개하는 바르트의 학문적 변신, 그리고 그 의미를 곱씹어
보자.
김진영 선생님이 말하는 롤랑 바르트의 지적 세계
"끊임없이
변신했던 지적 카멜레온"
바르트는 자신의 지적 이력서를 크게 세단계로 구분하여 말한 바 있다. 우선
‘테러리스트의 시기’가 있다. 이 시기에 바르트는 기호론을 분석의 무기로 삼아 프랑스 쁘디 부르주아 문화의
허위의식 구조를 분석하고 해체하고 야유했다. 대표적인 저술은 르 몽드지(Le monde)에 연재하여 호평과 비난을 함께 얻었던 『신화학』이다.
두 번째 단계는 ‘시스템에 매혹되었던 시기’다. 테러리스트 바르트의 눈에는 적으로 보였던 문화의 기호시스템이
이번에는 매혹의 대상으로 변해서 직접 그 기호시스템을 활용하고 구축해 보는 즐거운 이론 작업의 대상이 된다. 이 시기에 『모드의 언어』와
『S/Z』가 태어났다. 마지막 시기는 소위 후기 바르트로 불리우는 『욕망과 글쓰기의 시기』, 이론적 언어와 표현적 언어 사이의 불편함을 신체적
글쓰기의 실천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시기다. 『텍스트의 즐거움』, 『기호의 천국』, 『바르트가 말하는 바르트』, 『사랑의 단상』 등이 이
시기의 산물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시기가 있다. 그건 『카메라 루시다』와 그 이후의 글쓰기들이 포함되는, 아도르노(T.Adorno)의 용어를
빌리자면, ‘후기 스타일’의 시기이다.
"말하는 것은 언어이지 저자가 아니다.
글쓰기의 공간은 답사하는 것이지 꿰뚫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는 끝없이 의미를 상정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의미를 증발하기 위해서이다. 글쓰기 의미를 체계적으로 비워 나간다. 독자의
탄생은 저자의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 롤랑 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중에서
바르트의 후기
스타일이란 무엇인가
아도르노에 따르면, 예술작품이든 이론서이든 ‘후기 스타일’ 안에서는 그 이전의 작업들과는
구분되는 특별한 무엇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모든 작품들은 비록 도중에 변화가 많아도 결국에는 이 후기 스타일을 기점으로 삼아 크게 두 개의
시기. 즉 전기와 후기로 나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끊임없는 이론의 변신을 통해서 지적 카멜레온이 되고자 했던 바르트의 이론들을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 결정적인 경계의 코드는 무엇일까? 그건 다름 아닌 ’어머니‘이다. 바르트의 구체적인 삶뿐만 아니라 지적인 삶 또한 어머니라는 시니피앙을 통해서 (더 정확히 시니피에 없는 시니피앙) 두 개의 시기로 단호히 구분된다. 어머니가 실재했던 시기와 어머니 부재 이후의 시기 - 이 두 시기는 즐거움의 시기와 사랑의 시기로 대변되며, 그 두 시기를 경계 짓는 또 하나의 시니피앙은 죽음이다.
바르트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남겨진 자신의 삶을 ’비변증법적인 죽음‘ 앞에서의 시간들이라고 불렀다. 그 이전의 시간들이 어머니의 등 뒤에
죽음이 가려 있던 시간들이었다면, 그래서 지적 유희가 가능했던 시간들이었다면, 어머니의 죽음과 더불어 죽음은 이제 그 어떤 변증법적 가면으로도
감출 수없는 헐벗은 얼굴로 바르트 자신과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벌거숭이 죽음과의 만남 속에서 ‘사랑’은 후기 스타일적인 특별함으로
바르트의 지적 세계 안에 자리 잡게 된다.
죽음과 사랑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두 운명이 죽음과 사랑이라면 사진 또한 다르지 않다. 바르트가 말하듯 사진의 아이도스 (eidos)가 죽음이라면 사랑은 또 하나
사진의 본질인 인덱스 (index)다. 사진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죽음의 이미지로, 정지의 이미지로 바꾸지만, 동시에 그
죽음의 이미지는 사랑의 사건 속에서 베로니카의 손수건처럼 보는 이에게 생생하게 부활한다. ‘그때 거기서 그랬었다(that has been
so)'라는 명증성, 즉 빛의 자국들인 사진의 인덱스 이미지는,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용서하지 않으려는 애도의 슬픔과 고통과 만날 때,
죽음에 대한 강력한 사랑의 protest가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의 저항은, 겨울 정원의 소녀 사진 속에서 죽은 어머니와 해후하는 바르트처럼, 죽은 자를 다시 만나게 하는 사진적 (과학적) 마법을 불러일으킨다. 이 사진의 마법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 마법을 통해서 바르트는 정말 죽은 어머니를 다시 만나는가? 사진의 마법을 통해서 사랑은 정말 죽음을 이길 수 있는가? R. 바르트의 지적 세계를 배경으로 삼아 『카메라 루시다』를 면밀히 밀착 독서하면서 본 강의는 이 질문에 답을 얻어 보고자 한다.
김진영(인문학자, 철학아카데미 대표)
고려대 대학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그 대학(University of Freiburg)에서 아도르노와 벤야민, 미학을 전공하였다. 바르트, 카프카, 푸르스트, 벤야민, 아도르노 등을 넘나들며, 문학과 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많은 수강생들로부터 ‘생각을 바꿔주는 강의’, '인문학을 통해 수강생과 호흡하고 감동을 이끌어 내는 현장', ‘재미있는 인문학의 정수’라 극찬 받았다. 또한 텍스트를 재해석하는 독서 강좌로도 지속적인 호평을 받았다. 현재 홍익대, 중앙대, 서울예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사)철학아카데미의 대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