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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들뢰즈에 관한 책을 두 권을 썼는데, 그 중 하나가 사회철학 책, 「a new philosophy of society」 이고 다른 하나가 「강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이다. 이 책은 주로 「차이와 반복」에 나오는 존재론 이야기에 대해 다룬다.
서론이 Deleuze's world. 들뢰즈의 세계이다. 잘 알다시피 서구철학계는 영미사회권과 유럽대륙이 대립하고 있다. 옛날 영국경험론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구도이다. 마누엘 데란다는 자신이 영미적인 스타일로 들뢰즈를 해설했다고 이야기 한다.
들뢰즈의 작품에 줄곧 등장하는 개념들 중에 어떤 것들은 각각의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게 있고, 일정기간 다루어지다가 사라지는 것도 있다.
다양체(multiplicity)라는 개념은 들뢰즈의 초기 저작에서부터 등장해서 마지막 작품에 이르게까지 줄기차게 나온다는 점에서 그의 전체 사상을 꿰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양체’라는 개념은 과연 어떤 역할을 떠맡고 있는가?
들뢰즈에게서 다양체라는 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라든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monad)처럼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리뷰에서만 할 수 있는 간단한 설명으로 하자면 다양체라고 하는 것은 전통철학에서 말하는 essence를 대체하는 것이다. essence라는 말은 전통철학에서 사물의 동일성을 설명해주는 핵심적인 개념인데, 그것을 들뢰즈는
multiplicity의 다양체 개념으로 바꾸어 설명한다.
마누엘 데란다는 다양체라고 하는 것을 ‘가능성들의 공간들’이라고 일차적 규정을 내린다. 다양체라고 하는 것들은 아주 넓은 의미의 공간이다.
들뢰즈가 말한 다양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공간적 구조인 동시에 이벤트이다. 이벤트라는 규정을 빼버리면 다양체의 절반밖에 이야기하지 않는 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다양체라는 것은 꼭 수학적으로만 접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다양체라는 것은 수학적 맥락과 리만기하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자연과학적인 맥락도 있고, 정치 철학적인(천의 고원에 나오는)맥락도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다양체 역시도 세계를 꿰면서 바라보는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여러 맥락에서 설명을 할 수 있다.
베르그송, 들뢰즈를 비롯한 일부 철학자들은 수학자 리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 이유는 리만이라는 사람이 공간, 직선 등의 개념자체를 아예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들뢰즈를 읽다보면 차원(dimension)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런데 들뢰즈가 말하는 dimension은 순수 수학적 dimension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차이들의 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계(system)가 있고 열이 있고 색깔이 있고 모양이 있으면 들뢰즈에게는 이것이 3인 것이다. 거기에 움직임까지 넣어야 한다면 dimension은 4가 되는 것이고, 거기에 마음을 넣어야한다면 dimension은 5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dimension은 들뢰즈에게 qualitative한 것이다.
meta차원이 없어지기에 이것이 rhizomatic한 것이 될 수 있다. 이 n+1차원이라는 것이 빠진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초월적 레벨에서 정돈해주고 있는 축이 빠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모든 사물이 자체 안에 품고 있는 역능을 통해 내재적으로 관계되어서 움직이게 된다.
마누엘 데란다가 「강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에서 과제로 부여한 것은 본질주의의 극복이다. 본질주의의 극복이라는 것은 꼭 들뢰즈 뿐 만 아니라 그 전에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야기되었다.
니체가 이야기하는 생성의 부제도 그렇고 베르그송도 그렇고. 영미에서 많이 하는 비트겐슈타인 같은 사람도 그런 의미를 많이 부여한다.
들뢰즈는 본질주의의 극복을 상당히 정교하게 행한 사람 중의 한 명인데, 그 단추가 다양체이다. 이 사람이 생각하는 reality가 바로 다양체인 것이다.
앞서 들뢰즈가 다양체를 ‘가능성의 공간 space of possibilities’이라고 규정했다는 것을 보았는데 다양체는 아직 충분히 규정되어있지 않지만 규정이 더해짐으로써 뭔가 나올 수 있는 그런 장(場)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다양체고, 그게 들뢰즈가 생각하는 세계인 것이다. 아주 거칠게 유비시키면 우리 동양의 기(氣) 이론하고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들뢰즈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보는 구도 자체는 몇 개 되지 않는다. 뭔가가 조합된 실처럼 생겼다고 보는 시각이 있고, 기(氣)처럼 풍부한 근원이 있는데 그게 분화되어 이 세상이 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물론 가장 단순한 것은 위대한 존재가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를 어마어마할 정도로 정교하게 이야기 하는 사람이다.
이정우(철학자, 경희사이버대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공학, 미학, 철학을 공부한 후,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교수, 녹색대학 교수,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철학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경희사이버대 교수로, 들뢰즈 <리좀 총서> 편집인으로 활동 중이다. 해박한 지식으로 고대철학과 현대철학,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가로지르며, 철학과 과학을 융합하는 등 ‘새로운 존재론’을 모색해 왔다.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