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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술작품의 근원』인가
『예술작품의 근원』은 하이데거 예술론의 출발점이다. 니체처럼 새로운 독일 정신을 꿈꾸었던 하이데거는 국가사회주의에 경도되었고 그의 이력에 지워지지 않는 오점을 남겼다. 그러나 현실의 국가사회주의가 그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닫고 1930년대부터는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이 시기 하이데거는 횔덜린 읽기에 천착한다. “새로운 대지를 불러 세우기 위한 또 다른 시원으로서의 예술의 가능성”을 횔덜린에서 찾아낸다. 후기 철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하이데거는 휠덜린 독서가 바탕이 된 “예술작품의 근원”이란 주제로 강연을 지속해간다. 이 텍스트는 예술론으로서뿐만 아니라 하이데거의 사상에 대한 입문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철학 텍스트에 대한 모범적인 독해
이선일 교수 강의의 특별함은, 철학적 텍스트를 읽는 모범적인 방식에 있다. 철학 텍스트에 접근하는 방법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한 가지는 우리에게 친숙한 다른 사례들을 끌어들여 유비추리를 통해서 저자와 텍스트에 대해 ‘감’을 잡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대중을 위한 입문으로 종종 이용되는 방식이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다.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개념과 사유의 내적 논리를 체험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선일 교수의 강의는 『예술작품의 근원』 안으로 파고들어 하이데거의 다른 텍스트들을 차근차근 엮어 체계적이고 내재적인 독서법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텍스트 안에서 개념과 표현들이 질서정연하게 재구성되는 과정을 보며 우리는 하이데거의 사유의 길을 함께 걷게 된다.
하이데거 예술론의 제1부
이 강의는 원래 『예술작품의 근원』을 출발점으로 놓고 횔덜린 독해와 현대 예술에 대한 하이데거의 언급을 따라가며 그의 예술론을 총체적으로 정리해보겠다는 계획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난해한 텍스트를 꼼꼼하고 친절하게 다룬 강의 스타일 때문에 그 계획을 나누어 예술론의 제2부에 해당하는 내용은 다른 강의로 개설하고 이번 강좌는 『예술작품의 근원』만을 다루었다. 하이데거가 그의 예술론을 집약한 텍스트를 남겨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강좌는 전반부에 해당한다. 그러나 후반부를 이해하기 위해서 전반부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하이데거 철학으로 열린 문
하이데거의 『예술작품의 근원』은 헤겔의 미학과 대결하는 예술철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의 현존재의 존재론의 확장이기도 하며 후기 철학의 단초이고, 그의 역사철학과 현실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이해할 단서이기도 하다. 『존재와 시간』이 그의 사유 전체의 출발점이라면, 이 『예술작품의 근원』은 하이데거 사상 전반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또 다른 입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술이라는 문제를 다루면서도 하이데거 특유의 사유 방법이 전형적으로 드러나고 그의 철학의 주요 개념들이 곳곳에 맞물려 있기에, 훌륭한 안내자와 함께라면 하이데거를 이해하는 탁월한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선일(철학박사)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지냈으며, 가톨릭대, 세종대, 중앙 승가대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