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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한국을 넘나드는 철학사의 대모험이 시작된다.
철학은 보편성의 학문이지만, 그 철학을 잉태한 시대적 배경과 조건을 누락할 경우 철학적 사유의 구체성이 사라진다. 때문에 철학적 사유의 명증성은 거세되고, 철학은 더 난해한 모호성의 질곡 속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어떤 철학 사조의 고유한 사유를 이해하려면 그와 같은 철학적 사유를 가능하게 했던 지역의 역사와 배경 이해는 필수적이다.
인도 철학 또한 마찬가지! 삶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해탈에 이르려 한 인도 철학은 난세(亂世)를 올바른 치세(治世)로 극복하려 한 동북아 철학과 완전히 상이하며, 고대 그리스 철학과도 다르다. 이 차이를 정확히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와 인도, 그리고 동북아 철학의 유사성을 다시 종합해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이정우의 철학사는 바로 차이의 긍정으로 재구성되는 철학사다!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진리. 인도 철학, 해탈의 길
인간은 행복을 꿈꾼다. 왜 행복을 꿈꿀까? 일상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고대 인도인들에게도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삶을 단지 ‘고(苦)’로만 여기는 것은 무지와 아둔함이다. 또한 인간의 무지와 아둔함은 우리로 하여금 ‘업’과 ‘윤회’의 굴레 속에 빠지게 하는 원인이다. 그래서 이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지혜(‘다르샤나’)가 필요하다. 그 지혜가 바로 참된 ‘나’를 발견하는 길이다. 즉 ‘범=브라만’과 ‘아=본래적 자아’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길이다. 초기 우파니샤드들로부터 요절한 천재 샹카라까지 해탈에 이르는 이 깨달음의 길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동북아 ‘성리학’에서 ‘근대성’의 문턱으로!
성리학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조선에서 화려하게 꽃 피운다. 이러한 한국철학의 흐름은 18세기까지 지속되다가, 19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다산 정약용과 혜강 최한기에 의해 전환점을 맞게 된다. 反주자학적이고 근대성을 띤 그들의 사유는 또한 각각 근대철학과 근세 자연과학의 영향을 받아 서로 구별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강좌는 다산철학과 혜강철학과 상호작용한 다른 사유들을 함께 살펴보는 비교철학적 관점에서 논의가 진행된다. 강좌의 마지막에 다다를 즈음에는, 근대의 문턱 앞까지 세계 전 지역을 아우르는 세계철학사의 윤곽이 또렷하게 드러날 것이다.
*요절한 천재 시인 샹카라(좌측 사진) , 실학 사상을 전개한 다산 정약용(우측 사진)
이정우(철학자, 경희사이버대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공학, 미학, 철학을 공부한 후,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교수, 녹색대학 교수,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철학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경희사이버대 교수로, 들뢰즈 <리좀 총서> 편집인으로 활동 중이다. 해박한 지식으로 고대철학과 현대철학,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가로지르며, 철학과 과학을 융합하는 등 ‘새로운 존재론’을 모색해 왔다.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