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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론과 합리론의 절충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데카르트의 이 말은 서양 근대철학의 화두를 ‘인간의 인식’ 문제로 바꿔놓았다.
『순수이성 비판』 :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이 ‘선험적 틀(형식)’은 세계를 이해하는 인간의 직관과 사유를 결정함으로써 우리가 세계에 대해 객관적 타당성을 가지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틀이다. 그렇다면 '주관(인간)의 인식 형식이 곧 인식 대상자(세계)의 존재형식’이기에, 초월적 인식의
기원은 어느 누구도 아닌 ‘인간’ 스스로가 된다. 이로 인해 그의 사유는 ‘코페르니쿠스(천동설을 뒤엎고 지동설을
주장했던 천문학자)의 전회’라 불리운다.
『실천이성 비판』 : 칸트
도덕법칙
그러나 칸트에 의해 격상되었던 인간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에 의해 한계를 지닌 ‘제약자’로 격하되었다.
왜냐하면 ‘현상계의 자아’는 물자체(모든 가능성과 경험을 넘어선 실재)에 속한 ‘초월적 자아’와 분리된
존재이기에, 우리가 아무리 ‘선험적 종합판단’을 한다 하더라도 이는 결국 인간이 그렇게 봄으로써 구조 지어진 ‘인간의 진리’일
뿐, 완전무결한 의미에서의 ‘절대진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너의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일반적 법칙부여의 원리로 타당하도록
행동하라’
이 유명한 ‘칸트의 도덕법칙’은 현상계에 속한 우리들에게, 매 순간 결단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자아인
‘보편적 초월자’로서 행동하도록 강권하는 의미와 같다.
『판단력 비판』 : 무관심적
취미판단
‘현실 vs 이념’, 혹은 ‘자연 vs 자유’ - 이러한 이중성이 인간의 본질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양자를 넘나들며 현실에서 이념으로, 또한 자연에서 자유로 거듭날 수 있을까? 『판단력 비판』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던 칸트는 그 매개를
인간 감정과 정서로 보았다. 놀랍게도 그는 미적 쾌감을 윤리나 이성으로부터 해방시켜 근대 미학의 발전을 이룬 진보주의자이기도 했다.
인간을 탐구한 철학자, 칸트의 현대적 의미
칸트는 이전과 이후 정신사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헤겔, 피히테, 셸링으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론을 필두로 현상학, 실존주의, 실증주의, 구조주의 등 철학 분야뿐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 언어학까지 그 영향은 실로 광범위하다. 현대 추상 미술의 발전 역시 그의 형식미학에 빚진 바가 크다.
그러나 도대체 어느 누가 인식할 수도 없고 증명할 수도 없는 물자체에 다가갈 수 있을까? 그의 철학은 인간 자율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의
물자체라는 난해한 개념과 무조건적 도덕법칙은 여전한 논쟁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1804]
칸트만큼 자기 검열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행동을 일치시킨 삶을 영위한 사람이 있을까? 평생 독신으로 살며 어떠한 유흥이나 일탈을 거부한 채 고향 쾨니히스베르크를 100마일 이상 벗어나지
않았던 그의 규칙적인 생활이 답답해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인간의 극기를 시험하는 대단한 것이기도 했다. 이 엄격한 철학자는 그 자신의
엄격함으로 인해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전반에 걸쳐 당대의 혁명적인 사상을 내 놓은 후, ‘그것으로 좋다(Es ist gut)’는 말을 남긴
채 조용히 영면하였다.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은 두 가지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내 마음 속 도덕률이지.” (*칸트의
묘비명)
이정일(철학자)
한국 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수료하고, 독일 튀빙겐 대학교(University of Tubingen)에서 수학한 후 서강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충북대, 가톨릭대, 명지대, 남서울대, 한경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하며, 칸트를 주제로 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하였다. 난해한 철학적 사유의 핵심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그는, 강단철학이 가진 실증주의적 경직성과 문헌학적 비생산성에 환멸을 느껴 특정 철학에 얽매이지 않은 개방된 관점에서 ‘대중과 호흡하는 철학’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