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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록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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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개요
영화관을 나서면서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2시간 남짓한 상영시간이 끝났는데도 여운이 사라지지 않아 며칠간 그 장면들을 되새기게 되는 영화 말이다. 누구에게나 '내 인생의 영화' 한 편쯤은 있다. 연인과의 데이트나 힘든 시험이 끝난 후 머리를 식히려 찾았던 영화관에서, 혹은 조용한 새벽 소장하고 있던 DVD를 꺼내 보며 맥주 한 캔을 기울일 때, 우리는 스크린 속 인생역정을 통해 위로받고 생각하게 된다.
이 강의는 『시네필 다이어리』를 통해 영화와 철학이 만나는 지점을 탐색한다. 정여울 강사가 2009년 출간한 『시네필 다이어리』는 영화 속에서 철학적 메시지를 발견하고, 철학자들의 사유를 통해 영화를 더욱 깊이 있게 읽어내는 시도였다. 좋은 영화는 스크린 위에서 상영될 때보다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상영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영화의 기억을 생생한 감동으로 되살려주는 멘토, 그것이 바로 철학의 메시지다.
강의는 우리가 즐겨 보았던 명작 네 편을 선정하여 각각의 철학자와 연결시킨다.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셉 캠벨의 신화적 사유, 〈쇼생크 탈출〉과 니체의 초인 사상, 〈굿 윌 헌팅〉과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 대한 성찰이 그것이다. 익숙한 영화들이지만 철학의 프리즘을 통과하면 전혀 새로운 작품으로 다가온다.
■ 강의특징
이 강의의 가장 큰 특징은 철학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영화라는 친숙한 매개를 통해 철학적 사유로 안내한다는 점이다. 푸코의 '감시와 처벌', 니체의 '초인' 같은 개념들은 추상적이고 난해하게 느껴지기 쉽다. 그러나 제이슨 본이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아가는 과정, 앤디 듀프레인이 쇼생크 감옥에서 자유를 꿈꾸는 여정을 통해 접근하면 이러한 철학적 개념들이 우리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강의는 단순히 영화 줄거리를 나열하거나 철학 이론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영화 속 구체적인 장면들과 철학자들의 핵심 개념을 정교하게 연결하면서, 왜 이 영화가 우리 마음에 오래 남는지, 어떤 보편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를 탐색한다. 예컨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가 겪는 통과의례를 조셉 캠벨의 '영웅의 여정' 구조로 분석하면,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현대인의 성장과 정체성에 관한 깊은 성찰로 확장된다.
정여울 강사는 문학평론가 출身답게 섬세한 문학적 감수성으로 영화를 읽어낸다. 철학 전공자들의 강의가 때로 개념 중심의 무게감을 지닌다면, 이 강의는 문학의 살점 안에서 철학의 뼈대를 발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무겁지 않으나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러면서도 우리 삶에 성큼 다가서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 추천대상
이 강의는 무엇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극장을 자주 찾고, 명작 영화 리스트를 하나씩 체크해가며 보는 재미를 아는 이들이라면, 이 강의를 통해 영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다. 재미와 감동을 넘어 영화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들을 포착하고 싶은 사람, 감상문을 쓰려 할 때 의미의 맥락을 짚어내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철학에 관심은 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이들에게도 좋은 입문 과정이 될 수 있다. 푸코, 니체, 조셉 캠벨 같은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들의 사상이 정확히 무엇인지, 우리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영화라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성찰하고 싶은 사람, 자신의 정체성과 자유, 성장과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유익하다. 영화 속 인물들이 겪는 시련과 선택, 변화의 과정은 결국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강의는 영화를 보며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들이 실은 우리 삶의 중요한 질문들을 담고 있었음을 일깨워준다.
■ 수강팁
강의를 듣기 전에 해당 영화들을 미리 보거나 다시 보는 것을 권한다. 〈본 아이덴티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쇼생크 탈출〉, 〈굿 윌 헌팅〉은 모두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이라 이미 본 사람이 많겠지만, 강의 전에 다시 한번 감상하면 철학적 해석이 훨씬 생생하게 와닿는다. 특정 장면이나 대사가 언급될 때 그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면 이해의 깊이가 달라진다.
강의를 들으면서 자신만의 '시네필 다이어리'를 작성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강사가 제시하는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나는 이 장면을 이렇게 봤는데" 하는 자신만의 시각을 메모하고, 강사의 해석과 비교해보라. 영화 감상은 본질적으로 주관적 경험이며, 철학적 사유 역시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강의는 하나의 길잡이일 뿐, 각자의 삶과 경험에 비추어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능하다면 강의에서 언급되는 철학자들의 원전이나 관련 도서를 찾아 읽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강의는 입문 과정이므로 각 철학자의 사상을 간략히 소개하는 수준이다. 더 깊이 알고 싶다면 푸코의 『감시와 처벌』,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등을 직접 읽어보면 사유의 폭이 넓어진다.
■ 수강후기에서
수강생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철학과 영화의 낯설지 않은 만남"이라고 표현한 수강생은 공감이 가는 부분도,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컨셉의 강의였다고 평가했다. 강의 관련 도서를 살펴보니 아직도 풀어놓을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철학과 영화의 대화 속에 발견되는 나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후기를 남긴 수강생은 철학이 우리 삶 속에서 비로소 빛을 발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철학과 영화의 대화는 우리 삶에 성큼 다가선다는 것이다. 이 수강생은 정여울 강사가 사르트르처럼 문학으로 철학을 하는 분 같다고 평했다. 철학 전공자들의 강의와는 사뭇 다른, 무겁지 않으나 결코 가볍지만도 않은 강의라는 것이다.
〈쇼생크 탈출〉과 니체를 다룬 강의에 대해 "강한 자는 무리지어 다닐 필요가 없다"는 제목으로 후기를 남긴 수강생은 앤디라는 인물을 통해 니체의 초인 사상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썼다. 무죄임에도 종신형을 선고받은 앤디가 감옥에서 보여준 태도, 타인의 이해를 구하지 않고 기꺼이 은둔하며 무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홀로 있음'의 강함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물론 모든 수강생이 만족한 것은 아니다. 일부는 강의 설명이 와닿지 않았고 급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좋아했던 영화들이어서 기대를 했는데 아쉬웠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는 영화와 철학에 대한 각자의 해석과 기대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수강생들은 영화를 보는 마음이 달라졌고, 철학 공부를 시작할 용기를 얻었으며, 깊이 있고 감동적인 강의였다고 평가했다.
■ 마치며
영화는 현대인에게 가장 친숙한 예술 형식이다. 극장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이고, 영화는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완결된 이야기를 통해 삶의 다양한 국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고 난 후 그 의미를 정리하려 하면 쉽지 않다. 재미와 감동은 분명히 있었는데, 그것을 언어로 풀어내기는 어렵다. 이 강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철학이라는 도구를 제공한다.
철학자들의 사상은 추상적이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영화라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접근하면 놀랍도록 생생하게 다가온다. 푸코가 말한 감시와 처벌의 메커니즘은 〈본 아이덴티티〉의 제이슨 본을 통해 현대사회의 통제 시스템으로 이해되고, 니체의 초인은 〈쇼생크 탈출〉의 앤디를 통해 자유를 향한 인간의 의지로 체현된다. 조셉 캠벨의 영웅의 여정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한 소녀의 성장담으로 펼쳐지고,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 대한 성찰은 〈굿 윌 헌팅〉에서 상처받은 청년과 그를 치유하는 심리학자의 관계로 구현된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같은 영화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된 것 같은 느낌, 그것이 영화의 힘이다. 영화는 전혀 다른 우리를 느슨하지만 따스하게 엮어준다. 이 강의를 통해 그 연결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영화와 철학,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의미가 탄생한다. 일상에서 순간을 포착해내는 감수성은 성숙해지고, 미처 몰랐던 다양한 질곡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우리는 수용자에서 창조자로 선회할 수 있다.
다이어리의 목록을 채워갈 명작이 수북히 쌓여 있는 현실, 이는 얼마나 황홀한 행운인가. 영화로 인해 좀 더 친밀해진 철학을, 철학으로 인해 좀 더 풍부해진 영화를 함께 만나보기를 권한다.
정여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