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페미니즘이 직면한 문제들을 넘어
페미니즘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당연시 여겨왔던 가부장제 하의 억압적 상황들과 불평등에 대해 여성들이 인식하고 목소리를 내게 해주었다. 여성의 권리를 주창했던 페미니즘은 분명 세상을 바꿔왔지만, 주변화된 여성들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고 심지어 더 어려워졌다. 페미니즘이 빈곤의 여성화, 이주의 여성화, 비정규직의 여성화, 성매매 산업의 증가 등 여성들 간의 간극과 차이라는 더욱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에코페미니즘은 이러한 문제들 앞에서 더 소외되고 주변화된 여성과 소수자들을 포괄하려는 노력과 함께 등장했다. 사회 속 가장 주변화된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바라봄으로써 세계에 대한 변혁과 변화의 감성을 열고자 하는 페미니즘의 기치를 이어받아, 에코페미니즘은 그 노력 안에 생태계까지 포함시킨다.
페미니즘과 생태계가 만난 이유
생태계(Ecology)와 페미니즘의 조우, 이것이 에코페미니즘이다. 그런데 페미니즘이 왜 생태계 문제까지 신경 써야할까? 에코페미니즘은 혹시 여성을 자연과 연결시킴으로써 다시 여성을 피동적인 위치에 놓는 건 아닐까? 또는 ‘돌봄’이라는 가치를 재차 강조함으로써 여성을 전통적인 역할의 굴레 속으로 다시 밀어 넣는 건 아닐까? 아니다. 에코페미니즘은 훨씬 더 넓은 시각을 필요로 한다. 에코페미니즘은 여성을 억압하던 구조가 자연과 제3세계를 착취하는 구조로 반복되고 있음을 보고,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병폐가 아시아/제3세계 여성에게서 고스란히 곪아가고 있음을 본다. 1970년대 환경 문제가 여성의 문제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자각은 독일에서의 생태·반핵운동, 케냐에서의 그린벨트운동, 뉴욕에서의 러브커넬 사건, 인도의 칩코운동 등에서처럼 우리 몸과 삶에 맞닿아 있는 아주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운동으로부터 출발했다. 차별을 받아본 자, 억압을 받아본 자는 비폭력적인 관계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여성들이 환경운동에 더 맞닿아 있는 이유다.
에코페미니즘의 관심은
에코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이 여성의 문제뿐 아니라 세계 내 다양한 억압, 폭력의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사고하고 이해하는 운동이자 공부다. 우리와 자연이 함께 호흡함을 이해하고, 세계에 대해 탈이분법·탈위계적으로 깊이 있게 사고하며, 두뇌뿐 아니라 온몸으로 생태계와 대화할 수 있는 노력을 기해나가는 것. 에코페미니즘은 우리에게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시선과 삶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하길 요청하며 아주 급진적인 삶의 변화를 예고한다. 반다나 시바, 마리아 미즈, 레이첼 카슨, 페기 매킨토시, 프리초프 카프라, E. F. 슈마허, 메리 멜러는 가사노동의 주변화, 제3세계 여성의 노동 착취, 환경 파괴 등으로만 포괄할 수 없는 여러 국면의 사회·정치적 문제 앞에서 다양성의 가치를 회복하고, 소비와 성공을 명령하는 자본주의에 저항하며, 생태계 안에서 충만하고 풍요롭게 살아갈 행복한 미래를 위한 대안을 우리에게 설명해준다.
최형미(여성학자)
상명여대 화학과를 중퇴한 뒤 감리교신학대학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조직신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요크대학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 「New way of thinking for the contemporary housewife」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테임사이드 칼리지에서 영문학과 사회학을 공부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에서 「인도네시아 이부 운동에 나타난 여성주의적 함의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아시아 여성학자, 활동가들과 진행한 인터뷰를 신문에 기고했고, 여성신문에 <최형미의 다시 만난 세상> 칼럼을 연재했으며, <길 떠난 세 여자, 에코 페미니스트를 만나다>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