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를 류(流)에, 다닐 행(行) 그리고, 노래 가(歌)를 쓰는 유행가. 하지만 유행가는 그저 시간을 따라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 흘러 다닌다. 우리는 아주 오래된 유행가를 만날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가요집인 『시경』은 그 옛날 고대인들의 유행가에 담긴 마음들이 오늘날 우리의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알려준다. 『시경』의 다채롭고 풍부한 마음의 세계로 시간 여행을 해보자.
옛 사람들의 일상적인 세계『시경』은 기원전 11~6세기까지의 중국 옛 사람들의 노래를 모아놓은 가요집이다. 고대에 노래를 채집하는 관리였던 채시관(採詩官)들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민정과 풍속을 살피고 노래를 기록한 것으로부터 『시경』이 유래한다. 『시경』을 막상 펼쳤을 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시’의 ‘경(전)’이라는 이름 그대로가 갖게 하는 경건함, 무게감보다는 인간의 가슴깊이 우러나오는 진솔하고 일상적인 희로애락의 감정들이다. 『시경』은 고대 동아시아가 유가의 도덕이나 명분의 세계 또는 성인군자의 세계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하고 풍부한 세계라는 걸 알려준다.
경전보다 고전으로서 『시경』
낡은 것은 버리지만 오래된 것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고전은 낡은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이다. 본 강좌는 『시경』을 ‘경전’ 대신 ‘고전’으로 접근하자고 제안한다. 『시경』에는 남녀의 사랑, 부모님을 향한 효심, 멀리 나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 제후의 신하에 대한 걱정, 제사를 준비하는 마음 등의 현대인도 낯설지 않은 ‘오래된’ 마음들이 등장한다. 공자는 『시경』을 읽지 않고는 담장을 마주한 것과 같다고 했다. 즉, 답답하고 캄캄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다. 시를 공부한다는 것은 그 노래들 속의 언어, 풍속, 마음의 풍경이 함축하고 상징하는 내용을 살핌으로써 말과 현상 그 자체를 넘어 인간과 세계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더하는 과정이다.
여전히 흐르는 낡지 않은 노래
『시경』의 초반부인 ‘주남’과 ‘소남’ 편에서의 시 22편을 읽는 본 강좌는 한자를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속학·사회학·문화인류학 등의 성과를 반영한 해석들을 함께 살핌으로써 한 편의 시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법을 소개한다. 팥배나무를 다룬 시에서 느껴지는 나무 신 숭배, 물고기가 등장하는 시에서 보이는 자손 번식과 공동체 번영에 대한 기원 등은 고대의 일상과 생각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종교 관념과 원시 문화의 요소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오늘날 유행가들이 흘러 명곡으로 남는 것처럼 『시경』의 시들도 동아시아인들의 마음에 흘러 우리의 정신세계로 남았을 것이다. 현대인들에게도 흐르고 있을 그 멀지 않은 마음들의 노래를 함께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