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길을 잘못 들었어, 이제 어떡한담.
아무래도 악령이 우리를 들판으로 내몰아서,
사방을 헤매게 만드나 봅니다요."
"… 악령들은 자기들을 그 돼지들 속으로나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악령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 달려 모두 호수에 빠져죽고 말았다."
(도스토예프스키 저, 『악령 상』, 김연경 역, (열린책들, 2000))
도스토예프스키는 대체 이 '악령'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가장 거친 만큼 가장 사회풍자적인 작품, 『악령』
열렬히 주목받았던 『죄와 벌』에 비해 『백치』에서 싸늘해진 독자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의 현실 문제를 파고드는 데 더욱 몰두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들 중 하나가 바로 『악령』. 『악령』에서 그가 파헤치고자 한 것은 당시 러시아 사회에 팽배해있던 허무주의였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시선에서 서구적 합리주의, 무신론 등으로 민족 정체성이 무너지던 당시의 러시아는 이 작품에서 악령처럼 떠돌다 죽어가는 인물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재현된다.
러시아를 향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사랑
『악령』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은 결국 일련의 배신으로 인해 대부분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남은 인물들로부터 도스토예프스키가 러시아의 정신이 다시 깨어나길 기대하는 것 또한 읽어낼 수 있다. 자신의 어두운 삶 속에서도 굳건히 지녀왔던 긍정과 의지가 러시아를 향한 애정으로도 확장되면서 『악령』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 러시아를 향한 사랑만큼, 무거웠던 그의 고뇌를 역사적 배경과 함께 읽어보자.
이병훈(아주대학교 교수)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국립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같은 대학 의대에서 ‘문학과 의학’을 강의하고 있다. 잡지 『문학과 의학』의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모스크바가 사랑한 예술가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등이 있고, 역서로는 불가코프의 『젊은 의사의 수기/모르핀』, 벨린스키의 『전형성, 파토스, 현실성』공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