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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기서 다시 마르크스인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라는 것은 마르크스를 다시 읽을 이유가 되지 못한다. 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200여 년 전에 태어난 19세기의 사상가를 읽어야 할까. 마르크스의 텍스트에 현재적인 어떤 것이 들어 있지 않다면, 그 텍스트와 더불어 우리가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면 우리가 마르크스를 다시 새롭게 읽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수유너머104의 연구자 고병권, 최진석, 이진경은 바로 현재에서 미래로 향하는 선 위에 마르크스의 텍스트를 끌어오려고 한다. 마르크스가 말하려고 했던 것, 소위 ‘진짜 마르크스’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또는 마르크스가 ‘말했어야 했던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도래할 잠재성과 가능성의 사상을 읽어내는 것이다.
도래할 마르크스적 사건을 기념한다는 것
각 강사들은 자신들의 전공과 관심 분야에 따라, 지금 여기의 문제의식으로 마르크스를 데려와 우리와 대면하게 한다. 우발성과 사건의 철학이 지배적인 시대에 유물론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경제에 대해 『자본』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도그마나 법칙이 아닌 역사의 전환, 새로운 공동체로의 이행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런 문제의식과 함께 만나는 마르크스는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은 마르크스이며, 그의 사상은 이미 전성기를 지나 평가가 끝난 역사적 유물이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 사건의 기념비로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이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예측과 처방이 난무하는 혼돈의 시대라면, 마르크스의 철학은 이에 어울리는 우발성과 해체, 가능성과 잠재성의 사상으로, 탄력적인 이행과 열린 전개의 실천으로 읽힐 수 있다.
6개의 기념비, 3개의 문, 2개의 기둥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 보자면 6개의 강좌는 순서대로 『데모크리투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 『독일 이데올로기』, 『자본』, 『공산주의 선언』, 『프랑스 내전』, 『고타 강령 비판』을 다룬다. 이 텍스트들은 마르크스 사상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기념비인 동시에 현재적인 함의를 가장 크게 담고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와 만나기 위해서는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을 다 모은 셈이다.
이 텍스트를 다루는 3인의 강사는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세 방향의 문을 열어놓는다. 이진경은 현재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 『자본』의 축적 법칙에서 출발해 마르크스의 진단과 예측을 보여준다. 이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마르크스를 불러내는 탁월한 방식이며, 고병권과 최진석 또한 유물론적 철학과 실천에 대해서, 국가를 넘어서는 코뮨의 가능성에 대해서 물으며 마르크스를 불러 온다.
강의의 전반부가 유물론-역사유물론-자본주의의 법칙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후반부는 도래할 공동체로서의 코뮨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코뮨이라는 도래할 공동체의 실천을 위해 유물론적 사고를 불러낸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한 문제의식을 아우르는 하나의 이름이 바로 마르크스이다.
고병권(사회학자)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서유럽에서 근대 화폐구성체의 형성」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오랫동안 학문자율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에서
니체와 들뢰즈 및 민주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철학적, 사회적 문제들을 연구하며 집필, 강연해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제도권 밖에서
마르크스, 니체, 루쉰, 스피노자 등을 함께 읽고 공부하며 살아간다.
노들장애인야학의 철학 교사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