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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의 언어
불안, 계절, 독서, 죽음, 사랑 등의 릴케 시 세계를 이해할 핵심 주제어들로 구성된 본 강좌는 그를 대표하는 「표범」, 「가을날」과 같은 시를 비롯해 「두이노의 비가」나 「오르페우스에게 부치는 소네트」의 발췌 부분까지 함께 읽는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릴케의 시 세계 전반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사물시가 무엇인지, 어떤 단어와 부사를 자주 사용했는지(가령, ‘침묵’이나 ‘천천히’), 모순되는 개념들(가령, ‘뜨거운 얼음’, ‘흩어진다’와 ‘묶는다’를 같은 리듬으로 사용)이 어떤 효과를 자아내는지 등 예민한 시인이 자신만의 시적 언어로 일구고 구축한 작품들을 만난다.
극복과 변화를 이야기하는 시인
“머무름 속에 스스로를 가둔 것, 그것은 이미 굳은 것이다.” 릴케의 시 중 한 구절이다. 우리는 릴케의 시들로부터 극복의 모티브를 발견할 수 있다. 어머니의 삐뚤어진 사랑, 급격히 산업화되던 도시의 슬픈 풍경, 세기말의 불안 속에서도 릴케는 노래한다. 머무르지 말고 스스로를 가두지 마라. 외면하지 말고 직면하라. 끊임없이 변화에 돌입하라. 그의 시에 자주 발견할 수 있는 명령문들은 우리 존재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반추하게 한다.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나무가 나이테와 아름다운 무늬를 가질 수 있듯이, 릴케의 시들은 우리네 삶에 대한 극복과 변화의 힘을 북돋아 준다.
표범과 장미
릴케의 대표적인 사물시 「표범」에는 창살 속의 갇힌 표범이 등장한다. 표범은 지친 채 갇혀있지만, 결코 갇혀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원을 그리는 표범의 발걸음과 행보는 오히려 커다란 의지를 내포한다. 존재의 형식을 벗어던지고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힘을 보여준다. 릴케의 묘비명에 등장하는 장미도 마찬가지다. 절대 수술을 보여주지 않는 이 꽃은 현상과 본질을 공유하고 있는 상징체다. 릴케는 현상 이면의 본질을 볼 것을 말한다. 이동용 선생님은 릴케의 시들을 통해 외부의 사물들이 사지를 관통해 심장까지 관통하는 그 짜릿함과 무아지경에 이르는 경험에 대해 질문하고 안내한다.
릴케에게 영향, 릴케의 영향
본 강좌가 릴케의 시 세계 파악과 함께 주목하는 것은 당대 지성인들과의 관계성이다. 릴케는 조각가 로댕의 비서로 일하며 ‘사물’에 대해 배웠다. 니체의 철학이 릴케의 언어로 전환된 증거가 시들의 면면에서 발견되며, 무엇보다 그들 사이에 루 살로메가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하이데거는 릴케의 시를 통해 내적세계공간 또는 내적세계존재 등에 대한 개념을 얻어냈고, 가다머는 그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법칙과 구조를 알아냈다. 릴케를 당대와 여러 관계성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시를 읽어가는 본 강좌는 시인의 작품 세계에 대한 풍성한 이해를 돕는다.
ⓒSéeberger frères/ Centre des monuments nationaux
이동용(인문학자)
건국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독일 바이로이트 대학에서 「릴케의 작품 속에 나타난 나르시스와 거울」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철학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2015년 9월에는 『한국산문』 제113회 신인수필상 공모에 「오백원」이 당선되어 수필가로 등단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극히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 『쇼펜하우어, 돌이 별이 되는 철학』, 『니체와 함께 춤을』,『나르시스, 그리고 나르시시즘』, 『바그너의 혁명과 사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