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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은 어렵다. 미학을 쉽고 편안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없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것을 사유한다는 것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철학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이다. 철학은, 그리고 쉽게 갈 수도 있을 삶의 길에 대한 회의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현실 속에 놓여 있는 이른 바 성공적인 인생으로 통하는 안전하고 편한 길에 대한 의혹에서, 모두가 옳다고 여기는 확실한 삶의 의미나 가치 또는 방식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물론, 플라톤에 의하면, 동굴(이미 닦여진 길)을 떠났던(회의했던) 철학자는 다시 동굴로 돌아오며, 따라서 철학에서 길어낼 수 있는 교훈은 속견(doxa)이 제공해주는 교훈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은 미학을 모르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방식으로, 즉 일상적 현실 속에서 대개 통용되는 방식으로 수용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철학자는 동굴을, 속견의 세계를 적어도 한 번은 떠났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를 사유하고자 하는 이는 아름다움에 대한 속견을, 때때로 아름답게 보이기조차 하는 안락한 현실을 떠나야만 한다. 그리고 철학이, 미학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러한 ‘떠남’ 때문이다. 이 강의는 본격적인 미학적 ‘떠남’을 개념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예비 과정으로서 기획되었다. 이러한 준비 과정을 우리는 ‘입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며, 요구되는 준비물은 미학의 주요 개념들이다.
미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기 위해 우리는 먼저 미적(aesthetic) 경험에 대해 물어야만 한다. 어떠한 이유에서 미적 경험이 다른 종류의 경험들과 구분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미적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단초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적 경험이 여타의 경험들과 다른 이유는 무엇보다도 경험에 임하는 자세 혹은 태도의 차이 속에서 찾아질 수 있다. 따라서 미적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적 태도에 주목해야만 한다. 그런데 미적 태도를 결정짓는 핵심적 요인은 바로 무관심성(Interesselogigkeit)이다.
무관심성에서 시뮬라크르까지, 미학 개념과 논쟁들을 소개한다
우리는 제1강에서 미적 경험, 미적 태도, 무관심성이라는 세 가지의 개념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
제2강은 근대 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칸트의 무관심성 개념을 집중적으로 검토하는 가운데, 예술의 자율성(예술의 비-실재성)이라는 문제와 미적 대상(ästhetischer Gegenstand)이라는 문제를 조망하는 것에 할애된다. 미적 경험에 대한 이러한 논의들을 통해서 우리는 미적인 것(das ästhetische)에 이르게 되는 미 개념의 역사성에 대한 물음과 특히 미가 객관적인가 주관적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될 것이다.
제3강에서 우리는 기독교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의 미에 대한 정의나 중세 스콜라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에 대한 정의를 살펴봄으로써 미가 사물의 객관적인 속성이라는 미의 존재에 대한 객관주의적 입장을 점검하게 될 것이다. 또 허치슨, 흄, 칸트 등의 미에 대한 정의를 검토해 봄으로써 미가 주관 속에서 찾아져야만 할 주관적 속성이라는 미의 존재에 대한 주관주의적 입장을 해명하려 시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제3강의 후반부에 우리는 예술을 정의하려는 시도가 성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을 것이다. 예술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에 의하면 예술은 모방(mimesis)이다. 하지만 모방을 통한 예술의 정의는 특히 모더니즘 미술의 탈-모방적 시도들에 의해서 그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 외에도 우리는 예술을 성공적으로 정의하는 데에 있어서 실패한 다양한 시도들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제4강과 제5강은 예술의 종말이라는 문제를 헤겔, 단토, 보드리야르의 관점에서 다룬다. 또 5강에서 우리는 예술적 모방 혹은 재현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될 것인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예술적 재현이 모방하는 실재 자체에 대한 물음과 만나게 될 것이다.
제6강은 예술적 재현 방식의 상대성이라는 문제를 통해서 닮음 이론을 토대로 하는 예술 모방론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닮음 이론을 극복하려 시도 했던 환영이론, 관습론, 자연적 기호론을 설명하는 것에 할애된다.
제7강에서 우리는 미적 가상 개념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게 될 것이며, 이를 위해 에이콘과 판타스마에 대한 플라톤의 구분, 성상파괴 논쟁, 가상과 실재 간의 관계, 예술의 허구성 등의 문제들을 논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8강에서 우리는 예술과 도덕 간의 관계에 대해 물음을 던질 것이며, 강의 후반부에서 미와 예술에 대한 물음을 총괄하려는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장의준(철학박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대학에서 철학 전공으로 철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동 대학에서 「Survivre. Autrement que la vie du sujet ou au-delà de la mort du Dasein(살아남기: 주체의 삶과는 다르게 또는 현존재의 죽음 저편)」이라는 논문을 제출하여 최우수 등급(félicitations du jury)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레비나스의 철학적 방법론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L’origine perdue et l’événement chez Lévinas」, 「Survivre. Autrement que la vie du sujet ou au-delà de la mort du Dasein」, 「La passivité du temps et le rapport à l’autre chez Lévinas」, 「기독교의 배타적 절대성으로부터 빠져나가기. 변선환의 종교해방신학적 과제는 여전히 유효한가?」가 있고, 저서로는 『좌파는 어디 있었는가? 메르스와 탈-이데올로기적 좌파의 가능성』, 공저로는 『종교 속의 철학, 철학 속의 종교』,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