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해석을 둘러싼 물음들
우리는 이해를 위해 텍스트를 읽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저자의 의도인가, 아니면 텍스트에 던지는 ‘나’의 물음에 대한 텍스트의 대답인가? 이처럼, 텍스트 읽기를 통해서 우리가 이해하려는 대상이 무엇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그렇다면, 이해의 대상 문제는 잠시 제쳐 놓고 다른 방식으로 물음을 던져보자. 이해를 위한 읽기를 일종의 대화라고 본다면, 내가 텍스트에 던지는 물음은 열린 물음인가 아니면 닫힌 물음인가?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보자. 도대체 이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객관적인가 또는 그것은 주관적인가? 그것은 이론적 앎인가 또는 그것은 읽는 이의 존재 방식에 변화를 초래하는 존재론적 사건인가? 텍스트를 읽을 때 내가 참여하는 시간은 과거인가, 아니면 현재 또는 미래인가? 나는, 우리는 왜 읽는가?
해석학 Hermeneutik 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해석을 둘러싼 물음들 속에서 피어난 해석학. 슐레이어마허와 딜타이, 하이데거, 가다머 등에 의해 발전된 해석학은 한 마디로 텍스트의 의미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로, 특히 성경의 문자주의에 갇혀 있던 서구 기독교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해석학은 텍스트의 의미를 묻는 사유에서 이해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으로까지 그 영역이 확장될 수 있다. 하이데거에게서 ‘이해’는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이 되고, 가다머에게서 우리는 텍스트를 읽음으로써, 또는 타인의 말을 들음으로써 다르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이 강좌는 타인의 글을 읽고, 타인의 말을 경청함으로써 바뀌는 우리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데에 진정한 목적이 있다.
해석학으로 첫걸음 내딛기
이 강좌는 우선 해석학에 대한 예비적 이해부터 다져나간다. ‘해석’의 넓은 의미를 규명하는 데에서 출발하여, ‘해석학(Hermeneutik)’이란 단어의 어원인 ‘hermêneuein헤르메네웨인’의 세 가지 기본적인 뜻을 고찰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석학의 선구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상가들의 사유들을 각기 살펴봄으로써 해석학의 기초 지식을 다질 것이다.
본격적으로 해석학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슐라이어마허의 ‘보편적 해석학’과 딜타이의 ‘이해심리학’부터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 해석학의 핵심개념인 ‘해석학적 순환’이라는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또한 해석학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현상학’을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상세히 살펴보게 될 것이다. 한편, 이러한 하이데거의 이론을 바탕으로 가다머가 어떻게 자신의 ‘철학적 해석학’을 정립하고 ‘지평융합’과 ‘영향사’ 등의 개념을 어떻게 제시했는지 차근차근 짚어본다. 리쾨르의 ‘자기 해석학(herméneutique du soi)’에서는 의식 주체 개념과 관련된 해석학의 의의를 다룰 예정이다.
마지막으로는 해석학적 대립을 보여주는 데리다와 에코의 입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텍스트의 의미가 고정될 수 있다고 보는 전통 해석학에 정면 도전하는 데리다의 주장과, 이에 대한 전통 해석학의 대응을 가장 현대적인 형태로 대변하는 에코의 주장을 흥미롭게 대조하며 강의는 마무리 된다. 장의준의 명쾌한 설명 가운데 유쾌한 논리적 위트를 듣다보면, 어느새 해석학의 윤곽이 또렷이 잡힐 것이다.
장의준(철학박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대학에서 철학 전공으로 철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동 대학에서 「Survivre. Autrement que la vie du sujet ou au-delà de la mort du Dasein(살아남기: 주체의 삶과는 다르게 또는 현존재의 죽음 저편)」이라는 논문을 제출하여 최우수 등급(félicitations du jury)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레비나스의 철학적 방법론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L’origine perdue et l’événement chez Lévinas」, 「Survivre. Autrement que la vie du sujet ou au-delà de la mort du Dasein」, 「La passivité du temps et le rapport à l’autre chez Lévinas」, 「기독교의 배타적 절대성으로부터 빠져나가기. 변선환의 종교해방신학적 과제는 여전히 유효한가?」가 있고, 저서로는 『좌파는 어디 있었는가? 메르스와 탈-이데올로기적 좌파의 가능성』, 공저로는 『종교 속의 철학, 철학 속의 종교』,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