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의록다운
|
■ 강의개요
예술은 가짜다. 모방이고, 허구이고, 가상이다. 그런데 이 가짜가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이 강의는 바로 이 역설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 예술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가 아니다. 예술은 변혁과 해방의 철학에서 진리를 실천하는 핵심적 방법이다. 하이데거가 예술을 진리가 드러나는 사건으로 보았다면, 현대 프랑스 철학은 한발 더 나아가 예술을 현실을 인식하고 변화시키는 저항의 사건으로 본다.
이 강의는 플라톤의 원본과 모방 관계에서 시작해 칸트의 무관심적 즐거움, 뒤샹의 레디메이드, 러시아 아방가르드, 루카치의 미적 미메시스까지 종횡무진 넘나든다. 단순히 미학사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으로 관통한다. 가상으로서의 예술이 어떻게 허위와 진리가 공존하는 현실을 폭로하고 변혁할 수 있는가.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실제 슈퍼마켓의 브릴로 박스와 눈으로 구별할 수 없다. 뒤샹의 변기는 그냥 변기다. 더 이상 예술 같지 않은 예술, 현실과의 경계가 무너진 예술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 낡은 질문은 사실 가장 새로운 질문이다. 예술이 스스로를 문제 삼은 것은 현대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현대는 이데올로기의 시대다. 허위와 진리가 뒤섞인 혼돈의 시대이며, 인간 주체를 소외시키는 거대한 구조가 작동하는 시대다. 만일 예술이 이 분열과 혼돈의 진실을 드러낼 뿐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 실천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강의는 그 답을 찾아가는 16시간의 지적 여정이다.
■ 강의특징
이 강의의 가장 큰 강점은 추상적인 미학 이론을 풍부한 현대 예술 작품의 구체적 사례로 풀어낸다는 점이다. 미니멀리즘, 뒤샹의 샘, 워홀의 팝아트, 재스퍼 존스, 러시아 구축주의, 다다와 초현실주의의 콜라주 기법까지 수많은 작품 사례가 등장한다. 이 작품들은 단순한 예시가 아니라 철학적 논의를 촉발하는 핵심 텍스트다.
강의는 하나의 질문으로 일관되게 관통한다. 하이데거가 말했듯 모든 철학자는 한 가지 질문만을 갖고 있다. 장의준 교수의 이 강의 역시 가상으로서의 예술이 현실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한 가지 질문을 깊이 파고든다. 이 일관된 문제의식 덕분에 칸트에서 루카치까지, 독일 낭만주의에서 러시아 아방가르드까지 광범위한 논의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특히 7강과 8강에서 다루는 루카치의 미학론은 압권이다. 미적 미메시스를 통해 개별성과 보편성을 결합하고, 물화되고 소외된 현실을 넘어 참된 현실을 반영하는 예술의 가능성을 논한다. 루카치가 던진 예술의 자율성과 사회참여라는 딜레마는 오늘날 예술가들이 여전히 고민하는 문제다.
강의는 또한 예술사와 철학사를 입체적으로 교차시킨다. 칸트의 미의 주관화가 어떻게 예술의 자율성을 확립했는지, 그것이 다시 뒤샹의 레디메이드와 현대 미술의 무한한 확장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정치적 좌절은 예술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한다. 이론과 역사가 서로를 밝히며 앞으로 나아간다.
벤야민의 집단적 신화적 꿈에서 깨어나기, 아도르노의 자기의식적 가상, 블로흐의 저항 가능성 논의는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 비판과 직결된다. SNS의 가짜뉴스, 미디어의 조작된 이미지, 상품물신주의에 포획된 일상 속에서 예술이 각성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통찰은 지금 여기의 문제다.
■ 추천대상
무엇보다 현대 예술을 보면서 이게 왜 예술인지 의문을 가져본 사람에게 이 강의를 권한다. 변기나 브릴로 박스가 왜 미술관에 걸려 있는지, 검은 사각형 하나 그린 게 왜 위대한 작품인지 궁금했다면 이 강의가 명쾌한 답을 준다. 예술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통해 현대 미술의 변모 과정을 이해하게 된다.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 특히 현대 프랑스 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필수적이다. 들뢰즈, 데리다, 랑시에르로 이어지는 현대 프랑스 미학을 공부하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토대를 다진다. 칸트 미학, 독일 낭만주의, 헤겔과 셸링의 관념론, 루카치의 마르크스주의 미학까지 현대 미학의 주요 흐름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예술가나 미술 관련 종사자들에게도 의미 있다. 자신이 하는 예술 활동의 철학적 의미를 성찰하고,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 예술을 단순히 미를 추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현실에 저항하고 진리를 실천하는 행위로 볼 수 있는 관점을 얻게 된다.
사회 변혁과 인간 해방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을 만하다. 예술이 왜 좌파 정치철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지, 아방가르드 운동이 왜 정치적 실천과 결합하려 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딜레마를 겪었는지를 이해하면 변혁의 철학 전반에 대한 통찰을 얻는다.
■ 수강팁
이 강의는 만만하지 않다. 회차당 평균 2시간이 넘고, 8강은 무려 151분이다. 한 번에 몰아서 듣기보다는 여러 번에 나눠서 듣는 것을 권한다. 특히 루카치를 다룬 7-8강은 헤겔과 셸링의 관념론 철학까지 동원되므로 집중력이 필요하다. 한 교시씩 끊어서 듣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게 좋다.
강의록이 제공되므로 적극 활용하라. 복잡한 철학 개념과 용어들을 강의록을 보며 따라가면 이해가 훨씬 쉽다. 강의를 들으면서 강의록에 메모하고, 나중에 다시 정리하면 내용이 오래 남는다.
언급되는 예술 작품들을 직접 찾아보면 좋다. 뒤샹의 샘,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 워홀의 브릴로 박스, 재스퍼 존스의 국기 등을 이미지 검색으로 보면서 강의를 들으면 훨씬 생생하다. 가능하다면 관련 전시가 있을 때 직접 가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철학 배경지식이 있으면 도움이 되지만 필수는 아니다. 강의에서 충분히 설명해주므로 차근차근 따라가면 된다. 다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판단력비판을 읽어봤거나,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대한 기초 지식이 있으면 7-8강을 이해하는 데 유리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의의 핵심 질문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이 모든 논의가 결국 가상으로서의 예술이 어떻게 현실을 변혁하는 무기가 될 수 있는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 수강후기에서
"뒤샹의 레디메이드부터 러시아 아방가르드까지 풍부한 예술 사례를 통해 어려운 철학 개념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됐다. 특히 마르크스의 세계 변화 테제에 대한 뒤샹의 비판적 변주 - 다르게 해석하는 행위가 곧 변혁이라는 해석이 충격적이었다."
"작가인데 이 강의를 듣고 내가 하는 작업의 본질적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단순히 미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현실에 저항하고 진리를 실천하는 행위라는 관점이 큰 동기부여가 됐다."
"루카치의 미적 미메시스 논의가 압권이었다. 예술이 물화된 소외를 극복하고 분열된 주체를 통일된 전체로 이끌 수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 있었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솔직히 강의 시간이 너무 길어서 힘들었다. 한 회차가 2시간 넘으니 집중력 유지가 어려웠고, 직장인에게는 부담이 컸다. 내용은 최고인데 분량 조절이 아쉽다."
"철학 초심자에게는 난이도가 높다. 칸트부터 루카치까지 쏟아지는 철학 개념들이 버거웠다. 하지만 끝까지 듣고 나니 현대 미학의 전체 지형이 보였다.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
■ 마치며
예술은 쓸모없다. 먹고사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런데 바로 그 쓸모없음 때문에 예술은 강력하다.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지 않고, 도구적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율성이 예술에게는 있다. 그 자율성이야말로 현실을 다르게 볼 수 있게 하고,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저항의 근거다.
이 강의는 예술을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대상으로 만든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고 예쁘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을 듣게 만든다. 예술이 현실과 맺는 복잡한 관계, 그 가상성이야말로 현실의 가상을 폭로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역설을 이해하게 된다.
칸트가 열어놓은 미의 주관화, 뒤샹이 실천한 미적 대상의 무한한 확장,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꿈꿨던 예술과 정치의 결합, 루카치가 제시한 미적 미메시스를 통한 소외의 극복. 이 모든 논의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예술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이 강의는 쉬운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바로 그 질문들이 우리를 사유하게 만든다. 예술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현실을 보는 시각이 바뀐다. 허위와 진리가 뒤섞인 이 혼돈의 시대에 예술이 던지는 질문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저항의 시작이다. 이 강의가 그 저항의 무기를 날카롭게 벼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장의준(철학박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대학에서 철학 전공으로 철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동 대학에서 「Survivre. Autrement que la vie du sujet ou au-delà de la mort du Dasein(살아남기: 주체의 삶과는 다르게 또는 현존재의 죽음 저편)」이라는 논문을 제출하여 최우수 등급(félicitations du jury)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레비나스의 철학적 방법론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L’origine perdue et l’événement chez Lévinas」, 「Survivre. Autrement que la vie du sujet ou au-delà de la mort du Dasein」, 「La passivité du temps et le rapport à l’autre chez Lévinas」, 「기독교의 배타적 절대성으로부터 빠져나가기. 변선환의 종교해방신학적 과제는 여전히 유효한가?」가 있고, 저서로는 『좌파는 어디 있었는가? 메르스와 탈-이데올로기적 좌파의 가능성』, 공저로는 『종교 속의 철학, 철학 속의 종교』,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