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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철학이란?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미투(Me Too) 운동’과 ‘타임즈 업(Time's up) 운동’이 페미니즘의 확장으로 이어지며, 이제는 페미니즘이 일 년 내내 우리 사회의 화두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페미니즘에서 나아가 페미니즘 철학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철학의 역사에서 여성은 결핍과 부정, 비본질적이며 비인간적인 것이자, 필연적 남성에 비해 우연적 존재로 설명되어 왔다. 페미니즘 철학은 보편 인간이라고 칭해지는 개념 뒤에 숨은 전제인 비대칭적인 성차의 논리를 드러내고, 타자로 위치지워진 여성의 상황을 설명한다. 페미니즘 철학은 단순히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이론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관점을 요구하는 지적 담론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철학이 문제시하는 세계는 여성보다는 남성이 중심인 성(性)영역에 국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감정보다 이성, 유색인보다 백인, 동성애보다 이성애가 우선시되는 세계. 즉, 어느 하나가 ‘사회문화적 타자’라고 치부되는 모든 세계들로 확장될 수 있다.
이성(理性)에도 성별이 있는가!
‘영혼에는 성별이 없다.’ ( 『여권의 옹호』 中)
즉, 이성에는 여남이 없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는 남성에게만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할까?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며 계몽의 빛이 여성들에게도 나눠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여성에게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음을 강력히 피력하며, 나아가 여성도 경제력을 가진다면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여성의 이성에 대해 묵과하는 근대적 계몽주의자의 위선을 비판했던 울스턴크래프트는 그 누구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믿고 이성과 계몽, 평등을 설파했던 인물이다.
이제 그녀의 주장은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21세기에 접어든 우리 사회, 과연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공동체 발전을 위한 여성 해방
‘여성 해방’은 단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한 실천적 활동으로 볼 수 있다. 19세기의 대표적 철학자이자 공리주의자인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은 공동체의 존속 및 발전을 저해하는 비이성적이고 비문명적인 행태라고 비판하며, 자유론과 정의론에 위배되는 여성 종속의 부당함을 문제로 제기한 바 있다.
특히 밀은 사회의 시민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평등의 자유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되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규탄했다.
그 무엇보다 인간의 독립성과 자유를 중시한 밀에게 여성의 종속은 개인의 독립성과 행복 추구권에 부합하지 못하는 부조리한 사회적 모순이었다.
‘사회구조는 변화하는데 왜 우리는 여성에게 과거와 똑같은 역할만을 강요하는가?’ 밀의 이러한 의문은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금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성서’로 불리는『제2의 성』을 쓴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역사적으로 ‘인간’은 언제나 남성이었다는 점, 다시 말해 여성은 늘 ‘타자’였고 언제나 ‘제2의 성’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존 철학에서 타자성의 위치는 비(非)자유의 위치와 같다. 지금까지 남성은 주체가 되기 위해 ‘타자로서의 여성’을 필요로 한 것이다.
또한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핵심적인 구절을 남김으로써 생물학적 결정론을 비판하는 데 일조했다.
보부아르의 논의는 가부장제 안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구체적인 면모를 다루고 있으며, 여성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모든 ‘타자’를 위한 페미니즘 철학
페미니즘 철학은 ‘남성’과 ‘남성이 아닌’ 부류로만 구분했던 이분법적 철학과 세계관에 반기를 든다.
그래서 본 강좌는 여성과 페미니스트만을 위한 이론이 아닌, 기존의 철학과 세계를 보는 관점에 대해 타자의 입장에서 사유할 준비가 된 우리 모두를 위한 이론을 다룬다.
페미니즘 철학은 삶과 사회, 세계를 바라보는 일종의 새로운 인식이므로, 우리는 본 강좌를 통해 이 인식의 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페미니즘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은주(철학자)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에서 『여성주의와 긍정의 윤리학(affirmative ethics): 들뢰즈의 행동학(éthologie)을 기반으로』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트랜스포지션』(2011, 문화과학사), 『페미니즘을 퀴어링!』(2018, 봄알람) 을 공역, 『공간에 대한 사회인문학적 이해』(2017, 라움)을 공저했고, 최근에는 여성 철학자의 삶과 사유를 다룬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2017, 봄알람)』을 썼다. 논문으로는 「에토스(ethos)로서의 윤리학과 정동」, 「들뢰즈와 가타리의 되기 개념과 여성주의적 의미: 새로운 신체 생산과 여성주의 정치」, 「'여성혐오'이후의 여성주의(feminism)의 주체화 전략:혐오의 모방과 혼종적(hybrid)주체성」 등이 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