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목소리와 정치적 힘
이 강좌는 시와 페미니즘, 정치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여성의 목소리’와 ‘정치적 힘’에 주목한다. 여성 시인들이 생각하고 발화하는 과정이 모두 정치적이다. 여성 시인들은 자기표현으로서 목소리를 발전시켜갈 때 다양한 경험을 한다. 사적인 목소리가 공적인 언어와 괴리를 겪거나 충돌하기도 하고, 통합되고 만나기도 하며 확장된다. 목소리의 진화는 경험적인 언어, 이론적인 언어, 시적 언어들이 복잡하게 만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다. 직접적인 정치뿐 아니라 정치의 보다 넓은 스펙트럼 안에서 여성 시인의 목소리가 갖는 정치적 힘과 가능성을 보고자 하는 것이 이 강좌의 취지다.
여성시의 언어적 가능성
시라는 공통 지도 위에 페미니즘이라는 연결망을 놓고 읽되, 여성 시인들의 정치적이고 선언적 메시지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적 가능성이 드러나는 양상들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여성 시인들의 시에는 정치적 가능성 못지않게 당대의 언어적 관습으로부터 새로워지고 자유로워지려고 한 흔적들이 읽힌다. 이 강좌는 여성 시인들의 정치적 목소리뿐 아니라 시적인 언어와 형식, 문체, 리듬, 소리, 이미지 등에도 관심을 갖는다. 대시(-)의 잦은 사용, 실험적인 시행의 배열, 문법 파괴, 단어 사이의 여백과 같은 휴지 등 다양한 문체적 실험이 갖는 의미와 효과도 아울러 알아본다.
19-20세기 미국과 여성 시인들
연대순으로 에밀리 디킨슨, 뮤리얼 루카이저, 에이드리언 리치, 앤 섹스턴, 오드리 로드의 삶과 시 세계를 살피는 이 강좌는 시인들이 살았던 시대의 사회정치적 상황과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을 함께 볼 수 있게 돕는다. 후대 시인들의 선배 시인들에 대한 탐독도 흥미롭다. 가령, 에이드리언 리치는 뉴잉글랜드의 수녀나 하얀 옷의 처녀로 신화화된 에밀리 디킨슨을 ‘집 안의 활화산’이라고 표현하며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전통을 뛰어넘은 창조적이고 독립적인 시인으로 평가한다. 또한 여성 시인들 각각의 정치적 목소리가 몸, 젠더, 인종, 폭력 등 여러 문제들 중에서 어디에 더 집중되는지는 살피는 것 또한 흥미롭다. 예컨대 뮤리얼 루카이저는 전쟁이나 폭력의 현장에서, 오드리 로드는 교차성 문제나 퀴어 운동에서 정치적 목소리가 더욱 두드러진다.
내 안의 목소리와 힘으로
이 강좌는 매 강의 전반부에서는 시인의 일생과 시인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 정치적 상황에 대해 개괄적으로 알아보고, 국내에 번역된 시인의 시집과 산문집에 대해 정리해준다. 특히 해당 시인의 작품에 나타나는 주요 쟁점들을 살피고, 함께 읽으면 좋을 이론서나 참고 도서들을 풍부하게 제안한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시인의 대표 시들을 찬찬히 읽는다. 2020년대 이후 미국 여성 시인들의 시집이 국내에서 좋은 번역으로 출간되고 있기에, 이 강좌가 추후 다른 시집들을 읽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여성 시인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들어보는 이 시간들이 자기 안의 내적인 에너지, 억압의 실체 등을 발견하고 넘어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희덕(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창과 교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2001년~2018년)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2019~)로 재직 중이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파일명 서정시』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반통의 물』, 『저 불빛들을 기억해』,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예술의 주름들』 등이 있다.
또한 시론집으로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 접시의 시』 등과 편저로 『아침의 노래 저녁의 시』, 『유리병 편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