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철학사 대장정, 그 일곱 번째 시간은 근대적 주체의 탄생을 다룬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17~18세기는 사회를 주도하는 세력이 교체되며 이들이 새로운 철학적 사유의 주체로 부각된다. 따라서 근대적 사유의 핵심적인 과제는 인간이 스스로를 주체로서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었다. 동북아의 실학과 서구의 계몽사상을 통해 그 과정을 따라가 보자.
왜 세계철학사인가?
지금까지 저술된 철학사들은 대개 세계철학사가 아니라 일정한 지역적 테두리를 전제한 철학사들이었다. 철학사의 대부분이 ‘서양철학사’이거나 ‘중국철학사’, ‘한국철학사’, ‘일본철학사’, ‘인도철학사’ 등이었던 것이다. 특정한 지역이나 언어권을 다룬 철학사가 대부분이며, 세계철학사는 드물었다. 설령 ‘세계철학사’라는 제목을 달고서 나온 저작이 있다 해도, 그들은 비서구 지역의 철학 전통을 서구 철학사의 한갓 전사(前事) 정도로 배치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철학사’라고 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여기, 이정우 교수의 세계 철학사는 역사와 문명의 거대한 흐름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입체적이고도 균형감 있는 시각으로 철학사의 역사를 새로 쓰려 한다. 이번 일곱 번째 목적지는 근대적 주체가 탄생하는 철학적 전환의 시대이다.
전환의 시대
전환의 시대란 기존의 사회 구조가 변화하며 새로운 사회 주도 세력이 탄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봉건적인 중세의 시기를 지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자각하면서 근대적 사유가 대두한다. 따라서 근대적 사유란 근대적 주체의 자각과 성찰의 다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결로 묶어내기는 쉽지 않지만, 정통 성리학의 주류 아래서 고증학과 더불어 시작된 동북아 사유의 새로운 균열, 계몽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서구 사상의 발전과 전개는 근대적 주체의 자기 발견이라는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 길을 통해 동서양을 넘나들며 17~18세기에 이르는 철학적 전환의 거대한 흐름을 관통하는 통찰을 얻어보자.
동북아의 실학과 서구의 계몽사상
상업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 새로운 사회주도 세력의 대두, 사회적 구조 개편에 따른 정치적 긴장의 고조는 전지구적인 현상이었다. 동북아에서는 실학이라는 새로운 사유가 이 변화에 대응하고자 하였다. 이정우 교수는 실학의 세 갈래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고증학을 중심으로 한 원전 비판의 경학과 실사구시의 경세학의 발전이며, 둘은 기학, 셋은 민중 및 민족사상이다. 이것은 성리학적 인간 이해를 극복한 새로운 근대적 주체의 자각과 정치적인 것의 발견을 통해 이루어진 변화였다.
동북아의 다양하고 거대한 사상적 변화를 ‘실학’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볼 수 있다면, 서구에서 근대적 주체의 자각은 계몽이라는 거대한 흐름으로 대두되었다. 계몽의 시대에 이루어진 근대적 주체의 논의는 인식론에서 시작되어 경험적 주체와 선험적 주체의 분리와 논쟁을 중심으로 한다. 영국 경험주의 철학의 문제제기와 회의를 거쳐 칸트의 철학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는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두 번에 걸쳐 다루어진다. 이번 강의는 영국의 경험주의와 프랑스의 계몽사상까지 다루며 독일의 계몽사상은 다음 강의에서 다루게 된다.
근대성의 전개를 따라가며
이번 강의에서도 이정우 교수는 변화에 대응하여 새로운 철학을 전개하는 사유의 역동적인 운동을 통시적으로 따라가며 전체를 조망해 보여준다. 근대적 주체의 자각이 각 지역의 철학적 흐름 속에서 각각의 결들을 만들어 내지만, 그 다양한 결들이 커다란 그림을 만들어낸다는 것 역시 드러난다. 세계철학사 연속 강좌의 다섯 번째 대목에서부터 시작된 근대 철학의 지도그리기는 이제 후반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근대성의 형성과 변화를 추적하는 이 여정은 이제 칸트를 중심으로 하는 독일 철학에서 마무리가 되고, 탈근대 사유의 새로운 여정이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