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하지 않았던, 그러나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이야기 – 한국 공산주의 인물사
식민지 시기와 해방 직후는 사상의 계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풍요로운 시대였다. 극좌에서 극우까지의 넓은 스펙트럼 안에, 전모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흐름의 사상적 운동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공산주의의 역사는 오랜 동안 금기 아래서 망각된 역사였다.
물론 김준엽, 김창순의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5권이 있었지만 이젠 찾아볼 수가 없고, 최근 개정, 완역된 스칼라피노와 이정식의 기념비적인 저서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는 불온도서로 지정된 이력이 무색하게도 시대적 한계와 반공주의적 색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이 두 책 모두 개설서를 의도한 연구서라는 점에서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로부터 벗어나 있다.
살아있는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 역사의 주역들이 살아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결여와 공백을 채울 수 있는 강의를 들고 박노자가 오슬로에서 찾아왔다. 매년 상하반기 2강 씩, 2년에 걸친 강좌다.
중앙과 주변 사이, 연구자와 활동가 사이
러시아의 가난한 원호 2세대(최성우)와 거제도의 중간층 부농의 자제(양명) 사이에는 공통점이 적어 보인다. 그러나 연해주를 배경으로 소련 공산당과 고려인들 사이의 중재를 맡던 최성우가 자치구 설립에 실패한 후 향한 곳이나, 공산주의 운동에 뛰어든 북경 유학생 양명이 좁혀드는 입지로 인해 몸을 옮긴 곳은 결국 모스크바였다. 그들은 처음에는 대학 등에 적을 두었지만, 1930년대 코민테른에 참여해 조선의 정세와 사회상에 대한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보고서를 남겼다. 그것은 활동가의 시각에서 급진적이었지만, 연구자의 시각에서 객관적이기도 했다. 그들은 스탈린의 집권과 함께 숙청되어 비극적으로 생애를 마치지만, 소수 민족 출신으로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대의를 위해 중앙에서 활동했던 그들의 흔적은 1930년대 조선 사회에 대한 분석 자료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리고 그 자료는 이론가적 분석과 운동가적 지향을 모두 담아내려 한 것으로서 현재적인 울림을 갖고 있다. 박노자가 아니었으면 잊힌 사실이었을 그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본다.
역사의 복원과 기억의 정치학
한국의 공산주의 문화사와 그 인물들을 돌아본다는 것은 좌파의 입장에서 신자유주의적 파시즘과 대결하려는 사람들에게만 유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금기시되고 억압된 역사를 되살리는 작업은 결국 우리 자신의 온전한 정체성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의 문제와 대결하는 것은 어느 세대에나 공통된 과제이기에, 앞선 세대의 사유와 실천은 다음 세대의 출발점이자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강좌는 단지 지워진 반쪽의 초상을 복원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현재를 다시 보게 해 줄 새로운 영감과 자양분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박노자(인문학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교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출신으로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이다. 영화 「춘향전」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쳐, 한국에서 학생과 강사의 신분으로 대학 생활을 보내던 중 2001년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하였다. 여러 책이나 기고문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한국인보다 더욱 날카롭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진단해 온 진보적 학자이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