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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하지 않았던, 그러나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이야기 – 한국 공산주의 인물사
식민지 시기와 해방 직후는 사상의 계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풍요로운 시대였다. 극좌에서 극우까지의 넓은 스펙트럼 안에, 전모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흐름의 사상적 운동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공산주의의 역사는 오랜 동안 금기 아래서 망각된 역사였다.
물론 김준엽, 김창순의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5권이 있었지만 이젠 찾아볼 수가 없고, 최근 개정, 완역된 스칼라피노와 이정식의 기념비적인 저서『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는 불온도서로 지정된 이력이 무색하게도 시대적 한계와 반공주의적 색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이 두 책 모두 개설서를 의도한 연구서라는 점에서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로부터 벗어나 있다.
살아 있는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 역사의 주역들이 살아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결여와 공백을 채울 수 있는 강의를 들고 박노자가 오슬로에서 찾아왔다. 매년 상하반기 2강 씩, 2년에 걸친 강좌다.
일제 강점기의 가장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조선의 콜론타이 허정숙은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일제 치하의 명망가인 변호사 허헌의 딸로 태어나 복잡한 남성 편력으로 경성 시대 언론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던 허정숙은 조선 최초의 여성기자이자 저명한 여성운동 지도자로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주장을 널리 펼치다 망명, 여전사로서 훈련받고 항일유격활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였고 해방 후에는 월북한 후 북한 사법재판소장을 역임하는 등 최고의 여성 권력자 중 한 명으로서 북한 정권의 핵심에서 오래 활동하다 1991년 긴 생애를 마쳤다. 북한 정권은 그의 가는 길을 국장으로 우대하였다.
서구의 신사상을 교육받은 여성주의자들은 많았으나 허정숙은 자본주의 자체가 여성을 구속한다며 자본주의 자체의 타파까지 부르짖은 사회주의적 여성주의의 선구자였다. 저명한 여성 사회주의자 콜론타이의 사상을 일찍이 소개한 그는 콜론타이의 구호에 따른 자유연애로 가부장적인 조선 사회에서 조롱과 뒷담화의 대상이 되었지만 신간회, 근우회 등에 참여한 적극적인 활동가로서, 급진적인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구습과 타협하는 유연한 태도를 갖출 줄 알았던 현실적인 운동가로서 독보적인 여성지도자였다. 가부장적인 김일성 체제와 타협한 생애의 후반부조차도 북한이 진보적인 여성정책을 펼치게 만든 주역으로서 새롭게 재평가 되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박노자(인문학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교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출신으로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이다. 영화 「춘향전」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쳐, 한국에서 학생과 강사의 신분으로 대학 생활을 보내던 중 2001년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하였다. 여러 책이나 기고문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한국인보다 더욱 날카롭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진단해 온 진보적 학자이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