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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하지 않았던, 그러나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이야기 – 한국 공산주의 인물사
식민지 시기와 해방 직후는 사상의 계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풍요로운 시대였다. 극좌에서 극우까지의 넓은 스펙트럼 안에, 전모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흐름의 사상적 운동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공산주의의 역사는 오랜 동안 금기 아래서 망각된 역사였다.
물론 김준엽, 김창순의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5권이 있었지만 이젠 찾아볼 수가 없고, 최근 개정, 완역된 스칼라피노와 이정식의 기념비적인 저서『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는 불온도서로 지정된 이력이 무색하게도 시대적 한계와 반공주의적 색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이 두 책 모두 개설서를 의도한 연구서라는 점에서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로부터 벗어나 있다.
살아있는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 역사의 주역들이 살아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결여와 공백을 채울 수 있는 강의를 들고 박노자가 오슬로에서 찾아왔다.
식민지의 모순으로부터 우리의 현재로
보편적 이성, 보편적 역사의 존재를 믿으면서도 철학은 당대의 구체적인 상황에 개입하는 ‘입장’이어야 한다고 요구했던 신남철.
근대주의적 태도를 끝까지 밀고 나가 부르주아적 철학을 극복하려 하며 민족주의의 모순과 파시즘의 문제를 냉철하게 해부했던 박치우.
소비에트 러시아 내에서 초좌파적 급진주의 노선을 추구하며, 러시아에서 소수민족 대표자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남만춘과 김만겸.
16세에 문단에 데뷔하고 수려한 외모로 영화배우로도 활동하며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예술가를 꿈꾸었지만, 문학가 동맹 ‘카프’의 서기장으로 당대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예술을 이끄는 작가이자 평론가의 삶을 살았던 임화.
1930년대 코민테른에 참여해 활발히 활동했지만, 스탈린의 집권으로 숙청되어 비극적으로 생애를 마감했던 최성우와 양명.
1920~30년대 ‘조선 최고의 글쟁이’라는 평가까지 받을 정도로 생산적인 논객이었으나 좌우 양쪽에서도 잊힌 독특한 위치에 있는 인물, 김명식.
일제 치하의 명망가인 변호사 허헌의 딸로 태어나 조선 최초의 여성기자이자 저명한 여성운동 지도자로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주장을 널리 펼치다 월북, 이후 북한 사법재판소장을 역임하는 등 북한 정권의 핵심에서 오래 활동하다 생을 마감한 허정숙.
박노자의 강의를 통해 이들의 삶과 사상이 박제된 역사의 유물로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을 거는 현재적인 사유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역사의 복원과 기억의 정치학
한국의 공산주의 문화사와 그 인물들을 돌아본다는 것은 좌파의 입장에서 신자유주의적 파시즘과 대결하려는 사람들에게만 유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금기시되고 억압된 역사를 되살리는 작업은 결국 우리 자신의 온전한 정체성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의 문제와 대결하는 것은 어느 세대에나 공통된 과제이기에, 앞선 세대의 사유와 실천은 다음 세대의 출발점이자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강좌는 단지 지워진 반쪽의 초상을 복원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현재를 다시 보게 해 줄 새로운 영감과 자양분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박노자(인문학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교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출신으로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이다. 영화 「춘향전」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쳐, 한국에서 학생과 강사의 신분으로 대학 생활을 보내던 중 2001년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하였다. 여러 책이나 기고문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한국인보다 더욱 날카롭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진단해 온 진보적 학자이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